지난해 여름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 만의 기록적인 강수량으로 스무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그 중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이모가 고립돼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됐던 반지하의 비극이 현실화된 것이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서울시의 지하, 반지하 주택은 20만 849가구로 추정된다. 이는 서울시 전체 398만 2290가구 중 5%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반지하 주택 유형으로는 다가구주택이 39.6%, 단독주택이 36.3%, 다세대주택이 20.8% 순으로 나타났다.
지하, 반지하 주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지상의 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고 지리적으로도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하지만 지하, 반지하 주택의 주요 거주자는 기초생활수급가구 29.4%, 소득하위가구 15.5%, 장애인이 있는 가구 15.5%, 청년가구 12.3% 순으로 정책배려 대상가구가 대부분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반지하의 비극을 끝내고자 '지하,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기존 주택에 대해서도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 반지하 건축물을 없애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터. 이에 서울시와 한국 해비타트 및 기타 건설업체들이 힘을 합쳐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에 참여했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인해 집에 발목까지 물이 차면서 마루가 썩어버린 신석찬 씨의 집. 침수 피해를 입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판과 벽지는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곰팡이로 뒤덮혀 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일을 못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장애인직업 재활시설을 다니지만 집수리는커녕 몇 달째 공과금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 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정용철 씨. 그의 아내는 거동이 불편해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는 평범한 일조차 버겁다. 대낮에도 채광이 되지 않아 집안은 매일 어두컴컴하고 화장실은 곰팡이투성이다.
이에 서울시 주택정책실, 주거환경관련 비영리단체, 기타 건설업체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그들을 돕기 위해 뭉쳤다. 현장 조사와 거주자 면담 등을 통해 선정된 신 씨와 정 씨의 집을 전면 수리 공사하기로 한 것. 특히 지체 장애를 앓아 거동이 불편한 정 씨의 아내가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 주택의 경우 실내에서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없애고 욕실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장애물 없는(Barrier Free)' 생활환경을 조성까지 약속했다.
반지하 주택의 실태를 재조명하고 주거 약자의 안전을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따뜻한 여정을 소개한다.
반지하 주택의 새로운 변신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는 약 한 달간의 리모델링 공사 기간과 민·관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진행됐다. 특히 가구별 맞춤형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투입됐다.
먼저 의뢰인들의 집을 그야말로 '환골탈태' 시켜주고 있는 화제의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도 출격해 힘을 보탰다. 이지영 대표는 인테리어, 정리수납 노하우를 비롯해 거주자들이 비움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치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이지영 대표와 더불어 사진관을 운영하는 한 이웃은 무료로 가족사진 촬영을 지원했다. 침수로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던 신 씨 가족에게 새로운 추억을 선물 한 것. 그리고 특허 기술로 제작된 장애인 맞춤 신발을 제작하는 업체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전동 휠체어에만 의존했던 정 씨의 아내에게 맞춤 신발을 제작해 지원했다. 그들은 작은 정성이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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