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20사단 61연대 작전장교(중위)로 활동할 당시 육사 후배들이 부대체험을 위해 방문해서 찍은 기념사진(당시 20사단은 지금 5사단 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인근 대광리에 있었다고 함). 가운데 대령은 직속상관이던 박문규 연대장으로 장군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백 당선자는 초급장교이던 이때 가장 힘들었던 군 생활을 보냈는데, 일은 ‘깨지면서도’ 제대로 배워 4성장군까지 오르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
“임금 군(君)자에 터 기(基)자를 쓰는데 조선시대 같으면 이름에 임금 자를 썼으니 처형 감이죠.”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백군기 국회의원 당선자. 그는 29기 육사생도대장(광주고 졸업)-1공수여단장-31사단장-특전사령관-3군사령관을 거친, 전형적인 야전군 출신이다. 39년 2개월 군 복무를 하면서 30여 년간 야전에서만 ‘굴렀다’.
1969년 육사에 입교한 그는 선배기수 27기까지 베트남에 파병된 것에 대해 “실전 경험의 기회를 놓쳐 천추의 한으로 남을 지경”이라고 말하는 강건 무골형이다. 광주고 시절 12명의 사관학교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4성 장군까지 올랐다. 그 비결이 뭐냐는 질문엔 “부하들과 아침마다 발가벗고 목욕을 제일 많이 한 지휘관 중의 한 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군 대부분의 경력을 야전으로만 돌았던 그가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의 한반도평화추진본부장을 맡았을 때 일각에서는 ‘안보전략분야에 문외한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오랜 야전경력이 안보에 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민주통합당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보완재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백 당선자의 설명대로 안보와 평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야전경력과 강한 안보의식이 평화를 제대로 견인해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백 당선자가 비례대표 8번에 올랐을 때 민주당 주변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육사 선배인 서종표 의원(육사 25기)의 추천이 큰 촉매제가 됐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권 시절의 초반과 후반에 야전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3군사령관을 각각 역임한 인연이 있다.
그는 자신의 비례대표 입성에 대해 “민주당 인사들과 별다른 인연이 없고 서종표 의원이 추천을 해서 면접을 봤고 내가 뽑힌 것 같다. 다른 장군 출신 예비역들도 같이 면접을 봤던 것 같은데, 그중에 내가 적임자였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특채가 아니라 면접의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된 최정예 공채 출신이라는 얘기다.
백 당선자의 경력을 보면 누가 봐도 ‘성공한 군인’으로 볼 수 있다. 국회의원 배지까지 단 것을 보면 관운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아닙니다. 실패한 인생이죠. 집사람이 지병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25년여를 같이 살면서 고생만 시키다가 중장 진급해서 좀 편해질 만했을 때 사별했죠.”
‘이 한 장의 사진’을 고르기 위해 앨범을 넘기던 그의 손이 아내와 찍은 사진 앞에서 멈춰졌다. 40여 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이사만 30번을 다닌 것이 아내에게 못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존경하는 선배 군인이 있느냐”는 ‘우문’을 던지니 “나를 거쳐 간 모든 상관을 다 존경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좋은 지휘관은 그대로 따라 배우면 되고, 나쁜 지휘관은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또 배우게 된다. 내게는 모두 훌륭한 선배이자 스승들이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