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
지난 9일 KT는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웅진코웨이 지분 인수 추진 여부를 검토하였으나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고 밝혔다.
KT의 이 같은 결정을 예견한 사람은 적지 않다. 내로라하는 유통업체 중에서도 웅진코웨이 인수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업체가 있는 터에 ‘통신공룡’ KT가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M&A(인수·합병) 업계 한 전문가는 “설사 인수한다 해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텐데 그럴 경우 KT로서는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것도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웅진코웨이만의 독특한 영업망인 ‘방문판매망’을 KT의 고객 유치와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지 자신할 수 없었던 듯하다. 이처럼 싱겁게 끝나기는 했지만 유통업체들이 노리는 웅진코웨이를 KT가 인수하기 위해 검토했다는 사실은 KT와 이석채 회장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선 주력사업이자 기업의 근간인 통신 분야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지난 7일 발표한 KT의 실적을 들여다보면 유·무선 통신 분야에서 매출과 수익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574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 20.3% 하락한 수치다. 그나마 BC카드, KT렌탈 등 비통신 분야 8개 신규사의 영업이익이 늘어났기에 통신 분야의 실적 악화를 만회할 수 있었다.
통신 기본료 인하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석채 회장은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을 못 마땅해 하는 행보를 여러 차례 보였다. 이 회장은 통신요금이 비싼 이유를 단말기가 비싼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지난 4월 19일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의 통신요금 인하 주문에는 “손자들 이발비도 3만 원”이라는 말로 난색을 표했다. 이 회장의 이 말은 서민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비판까지 야기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통신시장이 한계에 부딪쳤다”고 말한다. 가입자 수가 눈에 띌 만큼 늘어나지 않는 마당에 다른 회사 고객을 유치하느라 마케팅 비용이 증가해 통신요금을 줄이지 못한다는 것. 게다가 이석채 회장이 비싼 단말기를 탓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이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비싼 최신 단말기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는 통신사가 정작 비싼 단말기를 탓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M&A 전문가는 “KT가 통신사업에 어려움을 겪자 부동산, 카드, 렌탈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T의 어려움은 통신분야 사업에만 있지 않다. 온갖 구설에 오르내린다는 것도 아픈 부분이다. 직원들의 잇단 전환배치와 죽음, 유휴 부동산이 아닌 업무용 부동산을 부동산개발회사에 매각하고 이를 다시 빌려 쓰는 방식 등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말이 오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를 세계 7대 경관으로 선정하는 데 사용한 투표 전화에 대해 국제전화요금을 받으며 폭리를 취했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게다가 이를 폭로한 ‘KT새노조’의 이해관 위원장을 가평으로 발령 낸 것도 보복인사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 위원장은 회사로부터 “1인 사택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곳을 출퇴근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이런 탓인지 지난 3월 1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부 주주들은 이석채 회장을 향해 “물러가라”며 맹공을 가했다. 이 자리에서 어렵사리 연임에 성공한 이석채 회장은 ‘3년간 주당 2000원 배당’을 공언했다. 또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3만 원이 깨진 KT 주가는 지난 11일까지도 3만 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주총에서 이춘호 EBS 이사장을 사외이사에 재선임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이 이사장은 지난 2008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여성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인물이다. 이석채 회장은 “이춘호 후보는 고결한 인물”이라는 말로 사외이사에 재선임했다. 석호익, 김은혜, 오세현 등 현 정치권과 닿아 있는 인사들을 중용한 것과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연임한 지 얼마 안 된 이석채 회장이 정권과 마찬가지로 레임덕에 빠져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임직원들의 불신과 신규사업에 대한 회피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래저래 이석채 회장으로서는 불편한 일이 많아 보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