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원에서 1300여 명이 연루된 보험 사기극이 적발됐다. 병원과 브로커, 가짜 환자들이 100억대 규모의 보험금을 타내 나눠먹었다. |
지난 5월 17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경남지역의 병원이 연루된 대규모 보험사기 행각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보험사기 혐의자는 모두 1361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에 달할 것으로 금감원은 내다보고 있다. 보험사기 혐의자들은 단기간에 다수 보험에 집중 가입한 뒤 지정병원에 입원하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타냈다. 통원치료가 가능한 간단한 병에도 입원하는 ‘피해과장형’에서부터 부부가 함께 입원하는 ‘동반입원형’까지 그 행태도 다양했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도 수사당국은 금감원과의 공조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 ‘브로커’의 소재조차 파악 못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보험사기 행태 및 보험사기가 좀처럼 끊이질 않는 이유를 추적해 봤다.
경남 창원지역의 한 요양병원에는 입원 환자가 끊이질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방의 중소 규모 병원치고는 소위 장사가 잘되는 축에 들었다. 특이한 것은 외지에서 오는 환자도 꽤 있었다는 점이었다. 병원 진료에 대한 명성이나 의료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병원에 환자들이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환자들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허위 입원으로 보험금을 타 내는 것이었다. 해당 병원이 브로커를 끼고 ‘나일론 환자’를 입원시켜 준다는 소문이 그들 사이에 퍼졌다. 경남 창원 지역 거주자뿐만 아니라 서울·부산·경기 등에 거주하는 보험 사기꾼 116명까지 모두 1300명 넘는 보험사기꾼들이 소문을 듣고 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금감원 조사에서 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병원은 모두 3곳으로 드러났다. 보험사기 혐의자들은 단기간에 걸쳐 여러 보험에 집중 가입한 뒤 병원 3곳을 옮겨가며 입원 보험금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8년 5월 손 아무개 씨(여·53)는 당뇨로 창원의 A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 뒤 퇴원한 손 씨는 이번엔 천식으로 이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손 씨는 3일 만에 다시 퇴원했다. 2009년 손 씨는 B 병원에 다시 당뇨로 입원했다. 한 달여간 입원한 손 씨는 퇴원 뒤 요추염으로 같은 병원에 또 입원했다. 보험사의 입원료 보장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손 씨의 입원 행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0년~2011년 7월까지 손 씨는 C 병원에서도 당뇨와 낙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허위입원 행태를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3개 병원을 돌며 총 18회에 걸쳐 564일간 입원한 손 씨는 입원 보험금으로 9500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손 씨처럼 당뇨나 간염 등 통원 치료가 가능한 질병에도 병원과 병명을 바꿔가며 입원한 ‘피해과장형’ 보험사기 혐의자들은 모두 1099명으로 가장 높은 분포를 나타냈다.
심지어 부부가 함께 입원해 보험금을 타낸 사례도 적발됐다. 지난 2009년 3월~2010년 10월까지 최 아무개 씨(63) 부부는 고혈압 등으로 6차례 걸쳐 107일 동안 한 병원에 동시 입·퇴원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씨 부부는 입원 보험금으로 2400만 원을 편취했다.
이처럼 보험사기 혐의자들이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입원보험금이었다. 이번 사건의 보험사기 피해액 95억여 원 중에서 입원보험금이 86억여 원으로 91.2%를 차지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보험사기 혐의자들은 입원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정액 실손 보험보다는 특약보장성보험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보험에 가입할수록 더 많은 보험금을 타낼 수 있어서 단기간 내에 여러 보험을 집중적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보험사기 혐의자들 중 63명은 3개월 이내에 평균 6.7건의 보장성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보험사기 사건에 보험설계사들도 가짜 환자 노릇을 하며 보험금을 타간 것으로 밝혀졌다. 보험설계사들은 주로 허위입원을 한 뒤 정상출근을 하다 덜미가 잡혔다. 보험설계사 노 아무개 씨(여·44)는 지난 2009년 2월~ 2011년 4월까지 9회에 걸쳐 병원에 입원했다. 노 씨는 입원하는 동안 5400만 원의 입원보험료를 지급받았다. 하지만 노 씨는 입원기간에도 45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등 정상적인 출근을 한 것으로 드러나 허위입원 의혹을 받고있다.
금감원 자체 조사결과에서 적발된 보험사기 혐의자는 총 1361명이다. 모두 혐의가 인정될 경우 역대 최대 규모의 보험사기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대형 보험사기극이 좀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관계기관의 어긋난 공조수사도 한몫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병원과 환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브로커’를 잡아야만 사기행각의 근본 원인을 차단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은 공조수사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 3월 금감원은 경남지역 병원이 환자 한 명당 10만~20만 원을 브로커들에게 지급하고, 환자는 브로커에게 보험금의 10%를 지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경찰과의 공조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은 자체 조사를 한 뒤 지난 5월 17일 수사당국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수사의뢰에 앞서 사건은 언론을 통해 먼저 보도됐다.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기도 전에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경찰은 금감원으로부터 병원 및 허위 입원한 보험사기 혐의자들에 대한 정보는 제공받았지만 브로커에 대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했다. 브로커의 체포는 병원과 환자 간의 검은 커넥션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키포인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에 먼저 공개되면서 현재 경찰은 브로커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계자는 “수사가 들어가기 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언론에 공개하고 나면 브로커는 어떻게 잡으라는 것인가. 이미 도망가고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소리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조사 초기 당시 금감원과 경찰의 공조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5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인력문제로 공조수사를 의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금감원 조사 초기부터 공조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브로커를 잡거나 앞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관련 자료를 제공했으니 계좌거래내역 등을 통해 (추적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