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시대다. 대학생들이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꺼이 ‘마루타’가 되고 있다. 사진은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올해 법정 최저임금 4580원으로 하루 8시간 아르바이트를 해 한 학기 대학 등록금 500만 원을 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물론 휴일이나 주말은 없다. 게다가 오로지 등록금만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다. 이런 식으로 방학 동안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생들은 위험한 아르바이트라도 보수만 많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일명 ‘마루타 알바’로 알려진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참가도 그런 아르바이트 중 하나다.
생동성 시험은 원본약(오리지널)의 특허가 만료돼 국내 제약사가 복제약(제네릭)을 만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본약의 성분을 그대로 복제한 카피약이 사람에게 똑같은 유효성과 안전성을 가지는가를 증명하기 위한 임상시험이라 할 수 있다. 각 제약사는 생동성 시험을 신청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를 승인하면 시험을 진행한 후 시중에 복제약을 출시한다.
흔히 말하는 마루타 알바는 이 시험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건당 30만~4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12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신체검사와 1·2차 시험 등 총 5~7일간 숙식을 제공하고 특별히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돼 고학생들에게 매력적이다. 물론 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약물 복용 여부 등 시험에 적합한지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현재 각종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에는 생동성 시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 3~4개의 생동성 시험 구인 전문 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다. 이들 사이트에는 ‘아르바이트 없느냐’, ‘여성은 안 되느냐’는 등의 문의와 관심이 꾸준히 이어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편하고 돈 많이 주지만 멀쩡한 몸에 불필요한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일. 위험하지는 않을까. 일례로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생동성 시험에 참가했다는 사연 중 올라온 사진에서는 ‘펜타닐(패치)’이라는 실험 약물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약사는 “펜타닐은 마약성분 진통제로 암환자에게 처방하거나 출산 시 산통 때문에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 많이 다루는 약물은 아니다”면서 “패치로 적은 양을 실험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매우 강한 약이라는 점”이라고 밝혀 위험성이 없지 않음을 시사했다.
수년 전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1박 2일 과정의 시험에 1회만 참가하고 30만여 원을 받았다는 대학생 A 씨. 투여했던 약물의 이름이나 종류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약을 투여하고도 어떤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참여자 중 일부는 상당한 어지러움을 호소했다”고 회상했다. 앞서의 약사는 A 씨에게 투여된 것이 플래시보약(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보통 생동성 시험에선 시험 참가자들에게 모두 약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약 투여집단과 투여하지 않은 집단(가짜약 투여)을 비교분석하는데 A 씨의 경우 후자의 경우라는 것이다.
생동성 시험은 아무래도 관련 분야 예비 전문가인 의약계열 대학생들이 접하기 쉽다.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재직 중인 B 씨(29)는 “의약대 학생들은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과거 그 역시 그런 방식으로 종합병원에서 이뇨제, 향정신성 약물 등 합숙 생동성 시험에 참가했다. 당시 약의 증세는 바로 나타났고 시험기간 동안 약의 효능 때문에 고생했지만 이후 부작용은 없었다고 한다. 위험성 우려에 B 씨는 “시험 약물을 정확히 알고 가면 된다. 요즘엔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약물을 의약과 관련 없는 계열 대학생이 파악하기란 B 씨의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 생동성 시험에 참가하려 했던 C 씨(28)는 “시험약물 이름을 안다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야 많은 정보를 얻기 힘들다. 설사 얻는다고 해도 전문용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C 씨는 결국 “약사인 매형이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으니 절대 참가하지 말라’고 해 포기했다”고 밝혔다.
고액이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인기 아르바이트. 제약사들은 어떤 입장일까. 기자는 최근 식약청에서 생동성 시험 허가를 받은 몇몇 제약사에 문의해봤지만 명확한 답을 하는 곳은 없었다. 다만 몇 해 전까지 생동성 시험 관련 업무를 맡아봤다는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위험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카피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생동성 시험은 필수적이다.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지원자에게 충분히 고지하고 약물에 적합한 사람만 선발해서 시험한다. 보험 역시 필수적으로 든다”고 밝혔다.
김민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