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희호가 5월 31일 스페인전을 시작으로 A매치 3경기를 연이어 치른다. 최 감독이 과연 어떤 색깔의 축구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진정한 색채는 무엇?
작년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키워드는 단연 ‘닥공(닥치고 공격)’이었다. 최 감독은 K리그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 쉴 새 없이 상대 진영을 몰아치는 과감한 공격 전술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스코어가 뒤지고 있을 때는 물론 앞서고 있을 때조차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상대 문전을 노크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연상될 정도였다.
올해 초 조광래 전 감독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최 감독에게 거는 기대감이 증폭된 건 당연지사. ‘닥공 축구’가 과연 대표팀에서도 먹힐 수 있을지를 놓고 축구계와 팬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대표팀의 모습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은 경기 성격 탓인지 주로 조심스러운 플레이 패턴으로 전개됐다. 일각에선 “내용이 아쉽다”는 박한 평가도 했다.
하지만 최 감독도 할 말이 있다. 당시만 해도 최 감독의 스트레스는 대단했다. 말 잘하고 유쾌한 인터뷰이로 정평이 난 그였으나 이례적으로 전라남도 영암에서 진행된 풀 트레이닝 기간 중에는 공식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북 시절, 최 감독이 인터뷰를 거절한 건 정말 민감한 시기를 제외하면 전무했다. 최 감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전북에서 충분히 행복해 하시던 (최강희) 감독님께 괜히 큰 부담을 드린 것 같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그런 면에서 이번 A매치 3연전에 쏠리는 관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최강희식 대표팀 축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쿠웨이트전처럼 단판에 승부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최강희 감독만의 축구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북 시절의 ‘닥공’은 나오기 어려울지 모르나 어느 정도 공격적인 색채는 입혀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카타르전은 원정 경기인 데다 월드컵 최종예선 첫 판이라는 점에서 다소 조심스럽게 경기 운영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한 번 만난 레바논과의 경기에선 화력을 앞세운 과감한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병역 논란을 일으키고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마지막 구애마저 저버린 박주영(아스널)이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공격 자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량 확인의 장이 될 공산이 크다.
최 감독은 “최종예선에서는 만만한 상대도 없지만, 어려운 상대도 없다. 단판 승부는 결승전처럼 준비해야 한다. 좋은 내용 못지않게 한 골 승부라는 점도 염두에 뒀다”며 나름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해외파 마지막 실험 무대
당초 최강희호 2기는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연전을 앞두고 사상 초유의 스쿼드 분리 운용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스페인 평가전은 그야말로 ‘평가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세웠다. 비록 카타르 원정과 레바논 홈경기의 간격이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불과 사흘여 남짓이라는 게 고민이었지만 집중력이라는 변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페인 평가전이 열리는 시각은 현지를 기준으로 30일이다. 그런데 K리그 14라운드가 26일부터 28일까지 나눠 치러진다. 29일과 30일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이 열린다. 대표팀 핵심 자원들이 국내 무대에서 뛰고 있어 선수들을 불러들이기 어렵다.
여기서 집중력이 언급됐다. 코칭스태프는 고심 끝에 대표팀의 일원화를 결정했다. 선수들뿐 아니라 코치들 중 일부가 한국에 남아야 하는 등의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이원화가 이뤄지고 선수단이 분리 운용되면 훈련과 전술 등에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음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있다. 스페인전에 한해 해외파가 주축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던 선수들을 최대한 기용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직접 현장에서 기량을 점검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바젤)가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한 가운데 크게 13명 선에서 엔트리가 결정된다. 스페인 평가전은 ‘해외파’ 타이틀을 단 선수들 중 일부는 마지막 생존무대라고 할 수 있다.
#박지성-이영표 빈자리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과도기에 놓인 대표팀이다. 세대교체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떠난 영웅들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조광래 전 감독은 작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이 끝난 뒤 대표팀이 처한 가장 큰 고민으로 박지성(맨유)과 이영표(밴쿠버)의 공백을 꼽았다. 둘은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특히 이영표는 플레잉코치 제의까지 받았지만 “완전히 떠나겠다”는 본인의 뜻은 워낙 확고해 붙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박지성 자리는 섀도 공격수부터 측면과 중앙까지 다양한 미드필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구자철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이영표가 맡았던 왼쪽 풀백은 심각하다. 2000년대 이후 이영표 자리는 김동진(항저우) 외에는 딱히 적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영표는 ‘언터처블’이었다.
여러 선수들이 이영표의 포지션에 투입됐으나 누구도 완벽한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올림픽팀을 오가는 홍철(성남)도 그랬고, 심지어 홍정호(제주)와 이용래(수원) 등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까지 투입됐다. 최강희호가 출범한 이후에는 박원재(전북)가 이 자리를 책임졌고, 이제는 박주호가 출전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최 감독은 박주호에 대해 “팀 내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고 있고 기량도 출중하다. 충분히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본다”고 기대를 드러냈지만 아직 대표팀에서의 모습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볼거리가 풍부한 제2기 최강희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