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간 도스 팀을 맡아 J1으로 승격시킨 윤정환 감독. 작은 사진은 윤 감독과 통역 김정훈 씨. 일본 언론은 그가 한국식 압박축구를 선수들에게 접목시켜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팀을 맡으면서 주전 선수들을 먼저 내 편으로 만드는 여우 같은 전법도 썼다. |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는 비행기로 고작 50분. 후쿠오카공항에서 하카타역으로 이동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사간 도스의 연고지인 도스역에 도착하니 조용한 시골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자가 찾은 날(5월 16일)은 마침 사간 도스와 주빌로 이와타의 J리그 나비스코컵대회가 열리는 터라 역 앞부터 사간 도스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간 도스는 지난해 팀 창단 후 15년 만에 J1으로 승격, 올 시즌 리그에 풍성한 화제를 쏟아내고 있는 팀이다. 5월 17일 현재 리그 4위를 달리는 주빌로 이와타는 J리그 명문팀. 이전 같으면 사간 도스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팀이었지만 이날 경기에서 사간 도스는 3-2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를 이어나갔다. 사간 도스는 리그 5위를 내달리다 현재 7위에 머물러 있다. 사간 도스의 기분 좋은 도약 배경에는 한국인 윤정환 감독(39)이 존재한다. 경기 후 만난 윤 감독은 “<일요신문>에서 찾아주셔서 승리한 것 같다”고 기분 좋은 소감을 전하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윤 감독과의 인터뷰는 다음날 회복 훈련이 끝난 후 진행되었다.
▲ 사진 제공=사간 도스 |
▲중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골을 먹긴 했지만 끝까지 선수들이 승리를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살랐다. 선수들이 이젠 이기는 법을 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부분들이 그라운드에서 나타나는 게 더욱 짜릿하다.
―어제 경기 끝나고 승리팀 감독의 신분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다. 일본 기자들을 상대하는 게 아직은 어렵다. 일본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는 항상 통역을 대동한다. 한국 기자가 계시니까 나도 모르게 좀 긴장됐다(웃음).
―사간 도스에 선수로 올 때만 해도 여기서 감독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진짜 그렇다. 전북 현대에 있다가 J1도 아닌 J2리그를, 그것도 이름조차 생소한 사간 도스란 팀의 유니폼을 입을 때는 선수 생활 15년을 채우자는 목표, 그 한 가지였다. 결국엔 그 숫자를 채우지 못하고 은퇴했지만 후회는 없다. 처음에 사간 도스에 들어왔을 때는 2부리그에서도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었다. 한국의 국가대표 출신의 선수가 이 팀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적 첫 해에 J2리그 4위에 올라섰다. 그때 사간 도스의 이가와 회장님이 나한테 “앞으로 지도자를 해도, 또 회사를 운영해도 잘할 것 같다”며 내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셨다. 결국 그 다음 시즌 회장님의 권유로 선수 생활을 그만뒀는데, 사실 나한테는 대단한 결단이었다. 다른 팀으로 옮겨 선수 생활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사간 도스를 떠나기 싫었다. 결국 팀에선 나를 위해 없는 보직을 만들었다. 기술자문위원이란 타이틀을 주고 유소년클럽을 돌보게 하면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하게끔 배려했다.
―정식 감독이 되기까지 제대로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너무 빠른 승진이었다. 2009년 코치, 2010년 수석코치, 그리고 지난해 정식 감독이 됐으니까 빛의 속도로 달려온 셈이다(웃음). 선수들과 계속 부딪치고 같이 훈련하면서 언어도 늘었고 스킨십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했다. 감독 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선수들한테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전 선수 4~5명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그 선수들한테 한 말이 재밌다. ‘내가 내년부터 감독이 될 텐데, 날 잘 따라와 줄 수 있느냐’란 내용이었다. 전임 감독이 들으면 굉장히 불쾌해할 내용이었지만, 이미 그분도 다 알고 있었고 그분은 구단에서 다른 직책을 맡기로 예정돼 있어 내 행동을 이해해 주셨다. 하지만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갑자기 늘어난 훈련량 때문에 한 선수가 나한테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선수한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그 선수가 두 손을 들었다. 도요타 요헤이 선수인데, 그 선수가 지난해 J2리그에서 득점왕에 올랐고 지금 제일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훈련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고 하더라. 사간 도스에 한국 선수 3명(김근환, 김민우, 여성해)이 있는데, 한국보다 이곳에서 더 ‘빡센’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이 팀을 맡고 나서 제일 먼저 내세운 목표가 J1리그 입성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실력을 키워야 했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선 많은 훈련을 통해 체력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즌 중에는 힘들고 주로 동계훈련 기간 동안 체력 보강 훈련을 했다. 아마 선수들은 산악훈련, 그중에서도 300개가 넘는 계단을 10번 정도 오르내리는 훈련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훈련 덕분에 우리가 J1에 입성할 수 있었다.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정신 자세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다. 우리 선수들한테는 한국 선수들의 근성 같은 게 필요했다. 그걸 키우기 위해선 훈련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 다음 가르친 게 포지션에 대한 이해였다. 축구선수라면 다 알고 있을 기본적인 부분인데도 잘 모르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움직임, 자기가 뛰고 싶은 대로 달리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상대를 막고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얘기하고 내가 직접 훈련에 동참해서 같이 움직이니까 쉽게 이해하고 잘 받아들였다.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마치 퍼즐 조각처럼 잘 맞아떨어진 듯한 모습이다. 그런 노력들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아주 오랫동안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의 의식을 깨우는 작업이었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한국 프로팀들이랑 연습경기를 치르며 몸으로 부딪치고 알아가게 했다. 거친 수비, 태클을 이겨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최근 사람들이 사간 도스의 상승세 비결이 무엇인지를 자주 묻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식 훈련방법이 통했다고 본다. 내가 가르친 건 유럽에서 배운 게 아니다. 바로 한국에서 선수 생활하며 보고 배운 방법들을 여기서 수정 보완한 것이다.
▲ 그의 사진이 박힌 깃발에는 ‘정열’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는 8월이면 사간 도스만의 전용훈련장과 클럽하우스가 착공된다고. 윤 감독과 팀이 일궈낸 커다란 변화다. |
▲ 윤정환 감독이 선수들과 훈련하는 모습. |
▲그래서 사실은 나도 겁이 난다. 이게 정답은 아닌데, 내 입장에선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선수들이 목표 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다행히 오는 8월이면 우리도 전용훈련장과 클럽하우스가 착공될 예정이다. 성적을 내니까 시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게 되었다. 나도 훈련 끝나면 그 간이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다. 한국의 시민구단보다 못한 환경이다. 그래도 성적을 냈고 그로 인해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잠시 선수 때의 얘기를 꺼내보자.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린 선수 시절, 월드컵과는 큰 인연을 맺지 못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대표팀에 발탁됐음에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지 않았나.
▲그때의 아쉬움이 한으로 남았다.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1골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름 진가를 발휘했다고 생각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 보시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감독을 해보니까 당시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 모든 선수들을 다 뛰게 해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난 우리 선수 모두 다 한 경기 이상은 뛰게 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마음이 어떻다는 걸 알기 때문에 컵 대회에라도 출전시켰다.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선수들이 나처럼 ‘한’을 품게 하는 게 싫었다.
―외국인 지도자라서 받는 어려움, 한계 등을 느낀 적이 있었나.
▲오히려 J1으로 승격되고 나선 그런 걸 못 느꼈지만 J2리그에선 그런 부분이 있었다. 일본 감독이 어필하면 가만있어도 내가 뭐라고 항의하면 바로 퇴장 조치를 내렸다. 몇 차례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나선 방법을 바꿨다. 우리가 진 경기 때도 게임 끝나면 심판한테 다가가 악수 청하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항상 했다. 이기든 지든 심판한테 먼저 인사했다. 내가 달라지니까 심판들도 달라지더라(웃음).
―함께 뛰었던 선배들 중에서 현재 지도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특별히 궁금한 선배가 있나.
▲그런 것보다 지금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최강희 감독님과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선수들한테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직접 보고 싶다. 조광래 감독님이 대표팀을 맡고 계실 때 한 번 찾아뵙고 ‘견학’하려 했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와 지도자 생활을 할 계획이 있는 건가. 뜻대로 잘 안 풀릴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뭘 이뤄놨어야 돌아가지, 아직 성공을 해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가겠나. 지금 이런 상태로는 갈 수 없다. 난 한국 축구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연·고대 출신도 아니고 홍명보, 황선홍 선배처럼 엄청난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다. 오직 실력과 노력밖에는 내가 믿고 기댈 게 없다. 여기서 인정받고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번 올림픽을 보내고 다음 올림픽이 돌아올 때, 그때 내가 여기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졌다는 판단이 서면 올림픽대표팀을 맡고 싶다. 물론 그 기회가 나한테 주어질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프로팀보다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는 올림픽대표팀이 또 다른 도전과 목표를 갖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한편 일본 축구 기자들은 윤정환 감독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니시니폰신문의 토모아키 스에쯔구 기자는 “윤 감독은 한국의 강한 압박 축구를 일본 선수들에게 성공적으로 접목시켰고 좋은 방향의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선수 때 그가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기억하고 있는 터라 윤 감독의 J1 승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STS SAGA-TV의 카나 사코타 기자는 “굉장히 선수를 생각해주는 감독이다. 벤치에서는 선수를 강하게 몰아붙이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설 줄 알고 선수들한테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매력적인 감독”이라고 풀어냈다. 윤 감독의 팬을 자처하는 노부아키 타나베 축구 에이전트는 “무엇보다 사간 도스를 J1으로 승격시킨 것은 전적으로 윤 감독의 능력”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간 도스의 윤정환 감독은 이런 시선들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사간 도스가 단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을 희망하고 있었다.
일본 도스=riveroflym@ilyo.co.kr
▲ 사간 도스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3인방 여성해, 김민우, 김근환(왼쪽부터). 그들은 한국보다 ‘빡센’ 훈련을 이곳에서 소화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
A. 그래서 그 3인방이 나한테 더 많이 혼난다. 그들은 한국 선수 이전에 여기선 외국인 선수다. 성적이 안 좋으면 외국인 선수 탓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행이 다들 잘 따라오고 있는 편이다. (김)민우는 올림픽대표팀에도 발탁되는 선수라 더 집중하고 열심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