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사장(왼쪽)의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 참여도보다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경영 참여도가 더 넓고 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요신문 DB |
창업주와 2세까지가 대한민국 간판을 놓고 벌인 승부라면, 2세 후반기부터 시작된 3세 경쟁은 글로벌 간판기업 도약 여부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시장, 즉 증시에서 두 재벌가문 간 기업가치 대결로 가늠해볼 수 있다. 물론 주가가 오로지 그룹의 후계 최고경영자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절대금액 면이나, 글로벌 순위 면에서는 아직 삼성이 다소 우위에 있는 듯 보이지만, 최근 성장하는 속도나 내용 면에서 보면 사뭇 다르다.
이재용 사장이 ‘e삼성’ 등의 실험을 거쳐 최고고객총괄책임자(CCO·전무)로 삼성전자 경영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1월이다. 당시 62만 원으로 시작한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5월 최고가인 141만 8000원까지, 129%나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438.89에서 최고 2001.11(월간 최고가 기준)로 39% 올랐으니, 시장보다 삼성전자가 4배가 더 오른 셈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 사장처럼 외부 계열사에서의 실험 없이 바로 경영 핵심에 뛰어든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로 데뷔한 것은 2005년 3월 기아차 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취임 당월 기아차 주가(시초가)는 7510원에서 2009년 8월 퇴임할 때 1만 6900원으로 올랐다. 125%의 상승률. 이 기간 코스피는 1015.16에서 1591.85로 56.8% 올랐다. 시장수익률을 초과한 정도가 이 사장보다는 적다.
정 부회장은 2010년 3월부터 현대자동차 등기임원을 맡는다. 등기임원은 주요한 경영사항을 의결하는 이사회 멤버. 사실상 경영의 핵이다. 2010년 3월 11만 6500원에서 출발한 현대차 주가는 올 5월 최고 27만 2500원까지 오른다. 무려 134%의 상승률이다. 이 기간 코스피는 1612.43에서 2001.11로 불과 24% 오르는 데 그쳤으니 무려 5배 넘는 초과 상승폭이다. 기아차로만 보면 정 부회장이 이 사장보다 못한 듯 보이지만 현대차까지 놓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셈이다.
이번엔 총액으로 따져보자. 이재용 사장의 전무 취임 이후 지난 5월 24일 종가까지 늘어난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90조 2073억 원. 정의선 부회장의 사장 재직 기간 동안 기아차 시가총액은 3조 8064억 원 불어난다. 정 부회장이 CEO를 맡은 이후 현대차 시가총액은 25조 7724억 원으로 팽창한다. 현대·기아차를 합쳐도 29조 5780억 원으로 이 사장의 삼성전자 시총 증가액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두 후계 CEO의 경영성과 차이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둘의 경영 참여도도 다르다. 이 사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 참여도보다 정 부회장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경영 참여도가 더 넓고 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삼성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 주요한 경영은 주로 전문경영인들의 몫이다. 그리고 회사의 큰 방향에 대해서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챙긴다”며 “이 사장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아직 주도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귀띔했다.
반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최고 의사결정권자이기는 하지만 아주 큰 부분을 제외하면 정 부회장의 경영판단이 경영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특히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 당시 디자인 혁명을 일으키며 ‘K시리즈’ 탄생을 주도했다. ‘K5, K7’에 이어 ‘K9’까지 출시되면서 K시리즈는 기아차의 간판이 됐다.
정 부회장이 사장 취임 이후 지금까지 늘어난 기아차와 현대차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53조 3490억 원. 절대금액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 비해 37조 원가량 적지만, 증가율로 따지면 85.95%로, 이 사장의 97.58%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 이부진 사장과 정태영 사장. |
먼저 이부진 사장의 경우 2004년 경영전략담당 상무보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호텔신라 경영에 참여한다. 당시에도 이미 대표이사가 이 상무와 경영을 협의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2004년 1월 5510원으로 출발했던 호텔신라 주가는 최근 5만 5900원까지 올랐다. 10배가 넘는 상승폭이다.
특히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기 전인 2010년 말 2만 7750원이던 주가가 대표이사 사장 취임 후 불과 2년 새 다시 두 배 넘게 오른 점이 눈에 띈다. 경영을 전담하면서 기업가치가 더 급등한 셈이다. 호텔신라 사정에 밝은 한 삼성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은 회장의 딸이란 점을 제외하고도, 업무 추진력이나 기획력, 조직 장악력 등에서 발군이다. 완벽하게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카드를 업계 2위권으로 도약시킨 정태영 사장이 정 부회장을 제외하면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총수 일가 경영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 사장 관계 회사 중 상장회사가 없어 주가를 통한 평가는 어렵다. 다만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사장이 경영을 잘하는 것은 맞지만, 역시 사위는 사위일 뿐이다. 금융부문에서 앞으로 일정부분 떼어갈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후계구도와는 관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CJ 이재현 ‘횡보’ 신세계 정용진 ‘내리막’
▲ 이재현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1998년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CEO에 데뷔한다. 1998년 6160원으로 출발한 CJ 주가는 2007년 11만 500원까지 오르지만 이후 횡보하며 현재 7만 8000원선에 머물고 있다. 15년간 13배 정도 주가가 오른 셈이다. 분명 코스피보다 월등한 수익률이지만 ‘탁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3만 5000원에서 120만 원으로 33배가 넘게 올랐다.
물론 이 회장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로 그룹 영역을 확장하고 최근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부분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그룹 주력 변화와 인수·합병(M&A)이 기업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금융그룹 사모투자펀드(PEF) 고위 관계자는 “CJ의 대한통운 인수, 사업다각화 관련 기업분할과 합병 등의 과정에서 재미를 본 일반 주주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우도 주식 투자자에게 그리 반가운 인물은 아니다. 그의 본격적인 CEO 데뷔는 2006년 11월 경영지원실담당 부회장이 되면서부터. 정 부회장 취임 당시 35만 6000원이었던 주가는 2007년 50만 8748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내리막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지난 2009년 말 대표이사 직을 맡은 이후 주가는 더 부진했다.
2010년 말 44만 원대까지 회복한 주가는 이후 다시 내리막이다. 2011년 5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분리되면서 이전 주가와의 직접비교가 어렵지만 이마트가 중국 사업에 실패하면서 시장에서 신세계에 대한 투자시선은 곱지 않다.
한 증권사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내수주인 유통주가 재평가 받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넘어 중국 등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영역을 넓혀야 하는데 정용진 부회장은 이 부분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투자매력을 갉아먹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