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범죄 늘어나면서 FIU 거래내역 조회 급증…관련 이해도 높은 전문 수사인력 필요성 제기
하지만 수사당국에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사기 사건부터 불법 송금 등 각종 사건들이 잇따라 경찰과 검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경찰과 검찰의 요청도 자연스레 급증했다는 후문이다.
#암호화폐 둘러싼 사건 잇따라 수면 위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4월 24일 신현성 전 총괄대표를 권도형 씨와 공모 관계로 보고 불구속 기소했다. 테라와 루나가 장점으로 내세운 가격 고정 알고리즘은 실제로 실현 불가능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앞세워 허위 홍보 및 거래를 일으켜 대규모 손실을 초래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신 전 대표가 코인 가격이 99% 이상 폭락하기 직전, 보유 코인을 팔아 치워 4629억 원의 부당이득까지 챙겼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신 씨에게 자본시장법상 사기와 배임, 횡령 등 10개의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겉으로 드러난 몇 안 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지난 4년 동안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건은 급증했다. 경찰이 집계한 지난해 가상자산 불법행위 피해액은 1조 192억 원에 달할 정도다.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강남 납치·살인 사건도 재작년, 코인 급등 흐름과 맞물려 벌어졌다. 납치 사건의 주범 이경우 씨는 투자했던 퓨리에버코인이 폭락하자, 이 코인 홍보 업무를 맡았던 유상원 씨 부부와 손잡고 투자 실패 책임을 놓고 갈등을 빚던 40대 재력가 여성을 살해했다. 이 사건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전 직원이 뒷돈을 받고 퓨리에버코인을 상장시켜준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당국 안팎에서는 암호화폐 관련 사기 사건이 너무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식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에는 그동안 마땅한 규제가 없어 서로 코인을 사고팔다 고점을 찍고 매도하는 자전거래 등의 사기 행위가 성행했다. 이 과정에서 ‘세력’들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거액의 투자를 받은 뒤 유용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암호화폐로 돈이 쏠리자 유사 수신 성격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투자를 받은 뒤 해외로 도망친다거나, 대신 투자를 해주겠다며 거액을 받은 뒤 몇 달 후 먹튀한 경우들이 정말 많다”며 “사건마다 확인된 피해금액만 100억 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피해가 큰 사건은 1000억 원에 육박하기도 하는데 코인 투자 방법을 잘 모르는 50대 이상들이 피해자 중 다수”라고 설명했다.
#불법 환거래 사건도 급증 “수사 불가피”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외환거래 관련 불법 사건이 급증하는 부분을 지적한다. 금융감독원이 4월 4일 밝힌 바에 따르면 암호화폐 차익거래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융권의 이상 해외송금 적발 규모는 122억 6000만 달러(약 16조 원)에 달한다. 이는 금감원이 국내 은행 12곳과 NH선물 등 13개 금융사를 검사한 결과인데, 금융권을 거치지 않고 암호화폐 국내외 거래소를 통해 이뤄진 불법 송금 규모는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FIU 관계자는 “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들처럼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너무 많거나 수상한 암호화폐 거래 및 송금 등이 이뤄지면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며 “암호화폐를 통해 범죄 수익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국내외 자금을 들여오거나 빼나가는 등 암호화폐를 활용한 범죄들이 늘어나면서 FIU에 관련 기록들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어 “3~4년 전만 해도 암호화폐 관련 금융당국의 규제가 전혀 없다보니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뭉칫돈이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오간 것들이 꽤 있다”며 “거래소에 입금된 돈, 거래가 이뤄진 뒤 출금된 돈이 모두 소명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암호화폐를 개인지갑을 통해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등 한쪽의 기록만 존재하는 경우 금융당국이 들여다보는 상황이고 그러다 보니 관련 기록을 조회하려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인천지검에서 수사했던 940억 원 상당의 불법 외환거래(환치기)가 대표적이다. 리비아인 A 씨 등 6명은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리비아인들의 의뢰를 받고 수천 회에 걸쳐 해외 거래소에서 940억 원 규모 암호화폐를 사들인 뒤 국내 거래소로 전송해 매각했다.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가 더 비싸게 거래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것으로 금융당국은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족한 수사 인력 및 장비 문제 해결해야
자연스레 수사당국 안팎에서는 ‘전문 수사인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 다른 수사 방법이 필요하고, 사기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의 자문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고발 사건 등이 많아 경찰을 찾아가 설명을 해야 하는데 경찰은 물론, 검사와 수사관들도 암호화폐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해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암호화폐 관련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경찰과 검찰에 수사전문 인력을 갖추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찰과 경찰 역시 2022년 11월까지 암호화폐 추적기를 구매하고 교육하는데 31억 원이 넘는 돈을 집행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는 상황. 2021년 8억 5200만 원을 집행한 것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암호화폐 추적기가 있으면 암호화폐를 보관한 전자지갑의 주소를 기반으로 IP 주소를 추출하고 이동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내역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거래 간 연관관계 정보 추출, 지갑·거래소 간 거래내역 확보, 송금 전·후 자금 출처 정보 확보 등이 가능하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1~2년마다 인사가 나서 검사와 경찰 담당이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 게 암호화폐 사건의 특징인데, 그러다 보니 암호화폐 피해자들의 피해도 해결되지 못하고 관련 기업들 역시 계속 발목이 잡혀 있는 게 문제”라며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경찰청이나 검찰청에는 암호화폐 관련 전문 수사인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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