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유행성 감염병 환자 급증에 병원 ‘오픈런’까지…코로나19 안정화 국면이지만 신규 확진자는 세계 1위
#엠폭스…9일 사이 무려 8명의 확진자
엠폭스(MPOX). 원래 원숭이두창(Monkeypox)으로 알려진 질병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특정 집단·인종·지역에 대한 차별 및 낙인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2022년 12월 질병 이름을 엠폭스로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엠폭스는 원둥이두창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발열 및 발진성 질환으로 1958년 코펜하겐 국립혈청연구소가 원숭이에서 처음으로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오랜 기간 중앙 및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이었다. 그런데 2022년 5월 이후 아프리카 지역이 아닌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해 7월 WHO가 원숭이두창 감염 사태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는 2022년 6월 첫 확진자가 보고되면서 관심이 높아졌지만 5번 확진자까지는 해외 또는 의료기관 내에서 감염된 사례로 국내 지역사회로 감염이 전파되진 않았다.
상황은 4월 7일 6번째 엠폭스 확진자가 나오면서 급격히 달라졌다. 12일에 7~8번째 확진자, 13일에 9번째 확진자, 14일에 10번째 확진자가 나왔고 17일에는 11~13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추정 환자 포함 엠폭스 누적 환자수가 모두 13명으로 늘었는데 6번째 확진자가 나온 뒤 9일 사이에 무려 8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게다가 4월 7일 이후 확진된 8명의 엠폭스 확진자들은 대부분 해외 여행력이 없는 데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엠폭스의 지역사회 감염 전파가 상당히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엠폭스는 주로 밀접접촉을 통해 전파가 이뤄져 전파위험도가 낮고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게 질병청의 입장으로 과도하게 불안해 할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잠복기가 21일로 길고 증상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위에 주로 발생해 자발적인 신고가 없으면 파악이 어렵다. 게다가 엠폭스가 동성 남성 간의 성 접촉, 피부병변 접촉 등으로 전파되는 사례가 많다고 알려진 부분이 감염 추정 환자의 자발적 신고 비율을 낮추고 있다. 결국 방역당국은 4월 12일 엠폭스 감염병 위기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높였다.
엠폭스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체액이나 피부·점막 병변(발진·딱지 등)에 주변 사람이 직접 접촉할 때 잘 전파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감염자와의 성관계나 피부 접촉 시 감염 위험이 가장 큰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엠폭스 발병 현황 역시 남성 동성애자 그룹에서 유행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낙인 효과 때문에 정부가 감염 경로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자제하는데 국민 건강을 위해 정보 전달은 명확해야 한다”면서 “양성애자가 엠폭스에 감염될 경우 감염 확산세는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적인 엠폭스 유행 양상을 보면 2022년 크게 유행했던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발생빈도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최근 일본과 대만 등에서는 발생빈도가 늘고 있으며 결국 한국에서도 갑자기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질병청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밀접접촉(피부접촉·성접촉)을 삼가고 피부병변은 긴팔 옷 등으로 감싸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 접촉이 없도록 하는 등 감염예방수칙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
#독감 급성호흡기감염 수두 수족구병…
원래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철에는 갖가지 전염병이 유행한다. 가장 대표적인 질환은 독감으로, 예년에는 개학 초기에 유행하다 3월부터 서서히 유행세가 감소했다. 그런데 올해는 오히려 3월 이후 유행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2022년 12월 다섯째 주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분율(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ILI’)이 60.7명까지 치솟은 뒤 하락세에 접어들어 3월 셋째 주 11.7명까지 내려갔지만 넷째 주 13.2명, 다섯째 주에는 14.5명으로 상승했다. 4월 첫 주에는 15.2명이다. 실외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유난히 일교차가 큰 날씨가 계속 이어지면서 독감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콧물과 기침 등 감기 증상을 보이는 급성호흡기감염증 환자도 증가 추세다. 최근 한 달 사이 급성호흡기감염증 환자가 2.2배가량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성 장관감염증, 수족구병, 유행성 각결막염과 급성 출혈성결막염 등도 유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두도 문제다. 요즘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 가운데에는 수두 관련 안내문을 학교 측으로부터 받은 경우가 많다. 수두 환자가 지속적으로 초등학생들에게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두가 비말 또는 수포병변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전파돼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등 개인 위생수칙을 준수해야 하며 수두 확진자와 접촉한 경우 2~3주의 잠복기 동안 권태감과 미열, 붉은 반점 또는 수포 발생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한 수두에 걸릴 경우 모든 수포에 가피가 형성될 때까지 등교를 중지한다.
이처럼 개학 이후 독감과 수두, 급성호흡기감염증, 수족구병 등이 동반 유행하면서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조기에 환자 접수가 마감되는 일이 빈번해 줄을 서서 대기하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접수를 하는 소위 ‘오픈런’이 일상화됐을 정도다. 꾸준히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줄어들면서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2023년 봄에 여러 유행성 감염병이 동반 유행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해외 여행 늘면서 뎅기열 환자도 급증
그런가 하면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에 맞춰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뎅기열 환자도 들고 있다. 2023년 3월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뎅기열 환자는 35명이다. 지카바이러스 1명, 치쿤구니야열 5명 등 모기매개 감염병 환자가 모두 41명으로 2022년 3월까지 발생한 환자가 단 2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스무 배 넘게 증가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제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뎅기열에 감염될 위험성도 존재한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모기는 주로 열대 지방인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아프리카 지역에 분포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차 북반구 지역에서도 뎅기열 매개 모기가 발견되고 있다. 이미 유럽 지역에서 관련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댕기열 매개 모기의 토착화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고 안전지대로 볼 수만도 없다. 국내에서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치쿤구니야열 등을 전파하는 매개모기 흰줄숲모기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칠보산, 경기상상캠퍼스공원 등 수원지역 6개 지점에서 흰줄숲모기를 매주 채집해 개체수 밀도와 바이러스 보유 여부 등을 조사하는 흰줄숲모기 감시사업을 4월부터 10월까지 시행하는 등 지자체 중심으로 흰줄숲모기에 대한 선제적 감시에 돌입했다.
#코로나19 유행 안정적이긴 하지만…
한편 이제 한국은 코로나19에선 안전지대일까. 한 주 가운데 가장 확진자 수가 적게 잡히는 일요일 기준으로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5000명 이하이며 가장 높은 화요일 기준으로도 1만 3000~1만 4000명 수준이다. 4월 16일 기준 일주일 평균 일일 신규 확진자 수도 1만 861명 수준이다. 어느 정도 완연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그렇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국가별 유행 규모의 비교가 가능한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의 ‘100만 명당 일일 신규 확진자 수’를 보면 한국은 4월 10일 기준 202.18명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2위는 호주로 143.9명이다. ‘백만 명당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을 넘는 국가는 한국, 호주, 카타르, 프랑스 등 4개국뿐이다. 200명을 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물론 한국 역시 안정적인 유행 규모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 대다수의 국가가 ‘100만 명당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이하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 등 상위 9개국을 제외하면 50명 이하로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을 졸업한 데 반해 아직 한국은 졸업장까지 받지는 못한 상황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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