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국회의원들이 친인척과 지인을 보좌관으로 등록하고 월급만 챙기는 경우가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국회의원 보좌진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생사 여부에 따라 명운이 갈리는 ‘불안정한’ 직업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배지를 다느냐, 못 다느냐에 따라 이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 능력 있고 경험 많은 보좌진들은 의원의 소개로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경력채용’의 형태로 살아남지만, 임기가 끝날 때마다 일자리를 잃게 되는 보좌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관련 법규를 살펴보면 국회의원이 임의대로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이들의 신분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보좌진 채용은 4급과 5급의 경우는 국회의장, 6급에서 9급은 국회 사무총장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임면권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다. 의원들이 자신이 채용하고자 하는 보좌관의 임명요청서만 국회의장에게 보내면 되는 것. 면직할 때도 국회의장에게 면직요청서 한 장만 보내면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보좌진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을 ‘악용’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은 친인척이나 지인을 보좌관으로 등록하고 월급만 챙겨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 적발된 민주통합당 서종표 전 의원의 경우 딸 서 씨는 당시 서 의원의 상임위원회였던 국방위원회 활동은 물론, 국회에 출근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책상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국회의원실에서 연봉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좌관·비서관 자리에 출근도 하지 않는 친인척을 등록해 놓고, 일은 시키지도 않으면서 월급만 타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에도 이러한 사례는 과거에도 수없이 발견됐다. 18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소속 A 초선의원은 정체불명의 인물 한 명을 보좌관에 등록했다가 문제가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새로운 보좌관을 신규 채용했다. 그러면서 4급에 등록시켰던 정체불명의 보좌관을 5급 비서관으로 다시 채용했다. 당시 이 5급 정체불명 비서관에 대해 ‘지역에서 근무한다’는 해명만 있었을 뿐, 명쾌한 근무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B 초선의원도 비슷한 경우로 적발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의원실에는 인턴을 포함한 8명의 보좌진이 등록돼 있었지만, 실제 이 중 한 명은 동료 보좌관들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유령 보좌관이었다. 한동안 실체 없는 보좌관을 데리고 있던 그 의원실은 논란이 일자 뒤늦게 ‘보좌관 채용공고’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회의원 임기 말이 되면 더 심해졌다. 18대 국회 임기를 불과 한 달 남기고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C 의원은 비서관을 면직시키고 자신의 조카를 그 자리에 앉혔다. 마지막 한 달은 국회 일정이 없어 할 일은 많지 않지만 300만~400만 원 정도의 보좌진 급여가 나오기 때문에, 그 돈을 친인척에게 챙겨주려고 임기 동안 자신을 모시던 비서관을 내보내는 ‘무개념’ 행태를 벌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D 의원의 조카는 비서관으로 신규 채용된 뒤에도 강남의 투자자문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보좌진 월급을 타가며 본업을 별도로 하는 ‘이중 돈벌이’를 한 셈이다. 국회사무처 인사명령을 확인한 결과,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른 지난 2~3월을 시작으로 4·11 총선이 끝난 뒤 많은 보좌진들이 면직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이정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동생과 동생의 처남, 시동생, 조카 등 친인척을 무려 4명이나 채용했다가 언론에 보도된 뒤 교체하는 ‘부도덕의 극치’를 과시했고, 구상찬 새누리당 전 의원의 조카와 백성운 전 의원의 아들도 보좌진에서 일하다 사직한 바 있다.
그런데 관련 법규를 만들어야 하는 당사자들의 ‘비리’와 연계된 문제이니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 2010년 당시 새누리당 강명순 의원이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을 보좌진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년 넘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가 18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된 상태다. 20년 가까이 보좌관 생활을 했던 L 씨는 “최근 들어 전문적 능력을 갖춘 보좌진들을 공개 채용하는 의원들도 많아지는 추세지만, 보좌관 채용을 사실상 의원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 채용의 경우에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오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민웅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