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김정은은 이 법과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물고 있는 담배는 그의 기호이기도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의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면서 “김정은이라면 어디서 무얼 해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라고 했다.
4월 18일 김정은은 둘째 딸 김주애를 대동하고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현지지도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포착된 사진에 따르면 김정은은 당국자와 대화하며 오른손에 담배를 쥐고 있다. 둘째 딸 김주애는 두 손으로 연두색 성냥갑을 들고 있다. 초등학생 딸이 아버지 담배에 불을 붙일 준비를 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간 김정은은 김주애를 대동한 행사에서 거침없이 흡연했다. 2월 17일 김정은은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기념 체육행사를 관람하며 김주애를 오른쪽에 앉힌 뒤 왼손으로 담배를 피웠다. 4월 18일 국가우주개발국 현지지도 중에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포착됐다.

최고지도자가 애연가인 북한에서 인기가 있었던 외제 담배가 있었다. 바로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의 히트작 던힐이었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본인은 외제 담배를 피울지언정, 외국 담배를 수입하는 데 의존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던 것 같다”면서 “2014년 김정은이 국산 담배를 질 좋게 만들라는 지시사항을 하달했고, 북한 내부서 담배 국산화 바람이 불었다”고 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담배 제조 및 수출·판매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담배 산업을 고부가가치로 만든 방식은 이색적이다.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한 뒤 이를 가공해 담배 완제품을 생산한다. 북한산 담배는 내수용과 밀수용으로 구분돼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경지대에선 북한산 담배가 질 좋고 값싼 양품으로 평가받는다. ‘1년에 북한이 담배 밀수로만 수천만 달러를 챙긴다’는 소문까지 돈다.
내수용과 밀수용뿐 아니라 수출용 담배도 존재한다. 다만 수출용 담배는 내수용 밀수용과 다른 특성을 지녔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 상표를 달고 동남아와 아프리카로 수출되는 까닭이다. 말보로나 던힐 등 유명 상표가 찍힌 ‘짝퉁 담배’가 북한에서 제조되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이 담배를 은밀히 수입해 이윤을 남기는 구조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현지 담배제조업체는 대부분 중국 자본이 투자된 합자회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는 BAT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잎담배가 ‘북한 담배’로 판매돼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줄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BAT는 2007년 북한 담배 판매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막후에서 BAT는 싱가포르 소재 제3의 회사 BAT마케팅싱가포르(BATMS)를 통해 북한과 거래를 지속했다.

브라이언 넬슨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BAT가 수년 동안 북한 담배 제조사업 운영에 협력했다”면서 “북한 대량 살상무기 개발 금융 세력과 사업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잭 보울스 BAT 최고경영자는 “BAT를 대표해 과거 사업활동에서 발생한 위법 행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과오를 인정했다.

미국 법무부가 글로벌 담배기업에 ‘제재 망치’를 휘두른 건 대북제재 포위망을 좁히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북 소식통은 “대북제재 감시망이 촘촘해지면 촘촘해질수록 북한은 자금줄의 위협을 받아 위축될 수 있다”면서 “내부적으론 위축될 수 있지만 대외적으론 더욱 강도 높은 어휘를 구사하면서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판 선전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담배업체로부터 잎담배를 수입해 북한산 담배를 제조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던힐 잎담배를 사서 ‘짝퉁 던힐’을 만든 뒤 그것을 진짜 던힐처럼 수출한 셈이다. 이런 수입·제조·수출 경로를 살펴보면 BAT가 만든 던힐과 북한이 만든 ‘짝퉁 던힐’의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지도부가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통치 자금을 마련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