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간부 분신 상황서 ‘노조 현장 배제’ 옹호 발언…“기업은 노조와 협력 위해 앞장서야” 지적
지난 2월 정부는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노조가 건설현장에서 채용 강요 및 협박 등으로 노조전임비(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가 받는 임금)와 월례비(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지급하는 비공식적인 금품)를 받을시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게 골자다. 건설업계는 당시 ‘노조 갑질을 잡을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 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을 열어 건설현장 내 불법행위 규정 범위를 확대하고,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논의했다. 또 정부와 여당은 같은 날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건설현장 정상화 5대 법안’을 신속하게 개정하기로 했다. 개정 법안으로는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계관리법 △채용절차법 △사법경찰직무법 △노동조합법이다.
건설노동계는 정부가 건설노조를 겨냥했다며 반발했다. 특히 정부의 노조 탄압을 주장하며 분신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이 사망한 지 9일 만에 발표한 대책이어서 비난이 더 거셌다.
이날 토의 중에 특히 현대건설 임원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현대건설 임원 A 씨는 “노조(를)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일부 협력사들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업계에선 A 씨가 “노조를 고용하지 않아 공사 기간이 정상화되는 현장이 늘었다”고 언급했다는 내용이 전해진 바 있지만 전문에 따르면 A 씨는 “이 대책(건설 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으로 불법 부당행위, 파업 감소로 인해 적정 공사기간이 확보되고 있고 공기(공사기간)가 정상화되는 현장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를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협력사들이 나타났다’는 A 씨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경인건설지부 관계자는 “발언 자체가 예전처럼 (건설)노동자를 쥐어짜서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말 같다”며 “노조가 일을 안 한다는 프레임 때문에 저희도 노동시간에는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측에선 노조 조합원이 단체협약상 보호돼 있고 문제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나서기 때문에 쉽게 이용하지 못해 (노조가 아닌) 노동자를 쓰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는 “건설노동자 사망률이 높으니까 노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이사는 “노조를 통해 건설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고용 환경을 개선하자고 하는데 (노조에) 가입됐다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평등하지 못한 행위”라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국내 1위 현대건설을 대표해 나온 사람이 부끄러운 발언을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A 씨 발언에 대해 “정부의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으로 파업이 감소해 적정 공사기간 확보로 정상화되는 현장이 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22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서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업종은 건설업(46.0%)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644명 중 341명이 건설업 종사자라고 밝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OECD 회원국 건설산업 사고 사망인율(2016-2017)’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건설노동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25.45명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9.03명, 일본은 6.49명으로 우리나라 건설노동자 사망자 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을 시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대표인 권두섭 변호사는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안 한다면 이는 반헌법적 행위”라며 “노조법에선 노조 가입과 조합원 간 단결을 보장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노동3권은 다른 기본권과 달리 하위 법령 없이 그 자체로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임원의 노조 관련 발언 파문 이전 현대건설에선 노동자 보호 관련 잡음이 꾸준히 발생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가 발표한 ‘2022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현대건설은 2007년, 2012년, 2015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꼽힌 바 있다. 이뿐 아니다. 현대건설은 안전교육 미실시로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과태료를 가장 많이 납부한 기업으로 꼽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안전교육 미실시로 3억 3395만 6000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도 그간 노조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윤영준 대표가 현대건설 노동자 보호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노조 조합원의 불법 행위에만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영준 대표는 지난 2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참석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관련 원도급사 간담회’에서 노조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응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노조가) 인력 채용 강요나 금품요구 등을 하면 노조 설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퇴출방안 등이 필요하다”며 “현장 불법행위만 줄어들어도 작업효율이 30%는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노조를 적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노조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이에 앞장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평소 노조의 투쟁과 파업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노조와 관계는 (기업과 노조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라며 “비록 정부가 노조 대응에 강경하게 나온다 하더라도 기업은 이 같은 정부 기조에 발맞출 게 아니라 노사관계를 좋게 풀어갈 수 있도록 앞장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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