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번에 추가로 검거된 13명 중 현대차 현직 직원 3명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간 전 직원의 사기행각이라며 사측의 연루 의혹을 부인하던 현대차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던 피해자들은 소송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최종수사결과 발표 현장을 직접 찾았다.
지난 7월 5일, 용인동부경찰서는 각종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아 887억 원을 편취한 현대차 전 직원 정 아무개 씨(43)의 사기사건 수사를 최종 종료하고 수사 내용을 발표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4월 1039호 기사를 통해 정 씨의 사기행각에 대해 보도한 바 있는데, 본지 보도 이후 경찰에는 12건의 고소장과 진정서가 추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던 정 씨는 2009년 공문서위조로 해임되기 이전인 2007년부터 올해 2월까지 ‘매점사업권’, ‘고철처리 사업권’과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차를 살 수 있다는 ‘특별판매차량 사업권’ ‘특정 사업체 주식투자’ 등을 명목으로 887억 원을 편취했다. 정 씨는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현대차 본사와 연구소 사무실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가하면 공범들을 끌어 모아 현대차 임직원으로 분해 연극까지 시켰다. 이 밖에도 정 씨는 갖가지 공문서를 위조해 사기행각에 이용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3월 내연녀 장롱에서 숨어 있다 검거된 정 씨 이외에 공범 13명을 추가 검거했다고 밝혔다. 정 씨의 범죄행각에 적극 가담한 여 아무개 씨(55)는 구속처리 됐고 나머지 12명은 불구속처리 됐다. 이 밖에도 경찰은 정 씨 내연녀 집에서 현금 1억 원을 압수했으며 5개월간 주변 계좌 206개를 추적해 은닉자금으로 확인되는 28억 원 상당의 재산을 압수했다. 경찰조사 결과 정 씨는 주식투자 등을 명목으로 150억 원가량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격적인 것은 이번에 검거된 공범들 중 현대차 현직 직원이 다수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기자가 취재를 진행할 때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현대차 현직 직원이 가담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정 씨의 범죄는 불가능했다’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이번 수사 결과 피해자들의 추측이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사건에 연루돼 검거된 현대차 직원은 정 씨와 같은 연구소에 근무했던 남양기술연구소 엔지니어 송 아무개 씨(33)와 민 아무개 씨(45), 임 아무개 씨(40)등 3명으로 드러났다.
우선 송 씨는 문서 위조책이었다. 그는 주범 정 씨를 도와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현대차 대표이사 명의의 매점·자판기 사업권 위임장과 운영계약서류 등을 위조했다. 담당 수사관은 “송 씨의 하드를 뒤져 일부 문서위조 증거와 본인의 진술을 확보했지만 상당수 증거가 삭제됐다. 추가범행과 공범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대차 영업소 직원인 민 씨는 한마디로 ‘연기’ 담당이었다. 그는 현대차 대외협력부장인 양 일부 투자자들에게 “당신의 부동산을 현대차가 매입해 펜션 부지로 개발한다”라고 속여 투자를 부추겼다. 또 다른 영업소 직원 임 씨는 정 씨의 특판차 사기를 도와 주변인들에게 자동차 158대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차 현직 직원의 범죄 가담이 사실로 드러난 현재 불똥은 현대차로 튈 전망이다.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채권단과의 소송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채권단은 지난 4월부터 현대차에 ‘사용자책임’을 묻기 위한 민사소송을 준비해왔다.
기자와 만난 채권단 대표 고 아무개 씨는 “7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현대차가 공문서 위조행위를 발각해 정 씨를 해임한 것은 2009년 10월이다. 따라서 2007년부터 벌여온 정 씨의 사기행각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수사 결과 현대차 현직 직원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사용자인 현대차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기자와 통화한 채권단 측 변호인 역시 “경찰수사 결과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현대차 직원이 가담했다는 것은 소송을 진행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정 씨를 해임하면서 사원증을 회수하지 않은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정 씨는 해임 이후에도 이 사원증으로 일반인 통제구역인 연구소 곳곳을 누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로서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정 씨의 사기행각에 대해 사전에 인지했느냐’는 질문에 “정 씨가 당시 감사를 통해 공문서 위조로 해임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 씨의 범죄사실을 인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검거된 최근에서야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현대차 전·현직 직원의 범죄 가담에 대한 사측의 책임에 대한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채권단은 주범 정 씨 위에 또다른 회사 고위 간부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씨가 수년 동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사기행각을 벌여왔다는 점, 투자자들에게 고위급 간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급정보를 제공하며 이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현혹했다는 점 등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7월 9일부터 수원지검에 송치돼 검찰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