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정치권 언저리에는 권력욕을 좇다가 인생을 탕진한 ‘정치폐인’들이 수두룩하다. |
올해 서른한 살의 휴학생 김 아무개 씨. 김 씨는 현재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그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서울의 한 지역구 여권 후보자 캠프에 참여했다. 캠프에 참여하기 전에는 2년 동안 캠프의 전신 격인 후보자의 한 외곽단체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고 서무 일을 했다. 기간으로만 따지면 3년 동안 오로지 자신이 모신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셈이었다. 오로지 훗날 ‘한 자리’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 씨가 모신 후보자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모든 것을 걸었다는 김 씨는 “처음에는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거비용 보전을 위해 회계작성을 하면서 패배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더라”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무려 3년 동안 정치권에 ‘올인’을 한 김 씨의 처지는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반복되는 휴학에 대학은 아직 졸업도 못한 상황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 벌이도 변변치 않아 빚은 배로 늘어났다. 얼마 전에는 3년 넘게 사귀어온 애인과도 헤어졌다.
하지만 김 씨는 여전히 정치권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한 여권 인사가 대선캠프 지원을 위해 새롭게 조직한 모 외곽단체에 몸담고 있다. 그는 “적잖은 나이인 만큼 미래에 대해 고민도 많다. 내 주변에도 나처럼 캠프나 외곽조직, 국회 인턴비서만 몇 년째 전전하다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무척 암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나와도 막상 할 일이 없다. 더군다나 올해 대선이 있기 때문에 아직 기회가 남았다고 본다”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마레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여의도 정치권 바닥에는 매 선거기간마다 각종 캠프에 들락날락거리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공식캠프나 당직 이외에 이름만 내건 외곽조직의 경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많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삶이 변변치 못하다”라며 여의도 주변부의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이 대표가 전하는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고 오랜 기간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상위 1%에 불과하다. 이들은 그나마 ‘7급비서-6급비서관-5급보좌관-4급보좌관’의 정식 코스를 밟아 정기적으로 수익이 들어오는 경우다. 이 역시 모시는 의원의 선거 결과에 따라 낙선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한 자리다. 상황에 따라 1~2년의 공백기도 불가피하다. 그만큼 정치권에서 밥 벌어 먹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그럴싸한 ‘명함’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번듯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여의도 바닥에서는 이미 오래된 풍문이 있다. 별다른 경력도 없이 ‘명함’ 한 장 들고 여의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특정인 ‘비공식캠프’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 하에 ‘OOO연구소 대표’ ‘OOO포럼 위원’ ‘OOO위원회 고문’과 같은 명함을 파서 돌아다니는 인물 중 절반 이상은 정치권 주변부를 맴도는 ‘정치낭인’ 혹은 ‘정치폐인’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앞서 만난 김 씨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정이 있는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재작년 세상을 뜬 무명의 정치낭인 정 아무개 씨의 케이스는 섣부른 ‘정치중독’이 한 집안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 씨는 중앙무대의 정치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일찌감치 낙향했다. 그의 정치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벌써 14년 전, 민선 2기부터 지자체 의원 선거에 세 차례나 출마했지만 하늘은 그에게 배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잇따른 고배는 ‘정치는 곧 천운’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 씨 가문이 대대로 알아주는 부농으로 충분한 자본력이 뒷받침해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낭인 12년 만에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선거 때마다 들어가는 선거비용을 대느라 정 씨 가문은 한 순간에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그는 몇 년 전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다시 상경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떴고 아내와 두 자녀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현재 서울지역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꾀하고 있는 60대 박 아무개 씨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박 씨는 무려 수 십 년간 각종 외곽조직을 드나들었다. 한때는 주변의 권유로 몇 차례 지자체 의원에 출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초라한 월세 방에 홀로 살고 있다. 지난 정치인생에 대한 그의 소회는 ‘후회막심’이었다.
박 씨는 “지금은 그저 따로 사는 아들네가 쥐어주는 용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며 지역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정치에 사활을 걸었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 오히려 정치세계에서 속 시원히 발을 뺀 지금이 더 행복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여의도에 발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여의도 주변부에는 권력의 맛을 탐하는 수많은 불나방들이 불길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