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도 세계랭킹 1, 2위의 왕기춘(왼쪽)과 김재범은 4년전 올림픽 결승전 패배의 악몽을 떨쳐내고 ‘금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 전지훈련장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
런던행에 오르기 전 일본 오사카 유도 명문 대학인 텐리대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한창인 유도대표팀을 찾아가 사연 많은 두 은메달리스트의 금메달 스토리를 취재했다.
▲ 왕기춘. |
왕기춘은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올림픽 D-30일에 치른 미디어데이 행사를 끝으로 언론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불쑥 일본까지 찾아와서 인터뷰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솔직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절대 안 하지만 일본에 오셨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그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얼마나 솔직하고 순수한 청년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왕기춘에게 금메달 유력 후보라는 타이틀에 대해 부담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목 받는 삶을 살다 보니 누구의 시선이나 관심이 부담스런 시기는 지났다고 대답한다.
“부담을 즐긴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오히려 기분이 좋을 정도다. 만약 부담을 느낀다면 그 부담을 훈련으로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전지훈련 오자마자 다리를 다쳐 조금 속상하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솔직히 버겁다.”
유도대표팀은 숙소와 훈련장을 오갈 때 렌트한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했다.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은 왕기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왼쪽 발로만 페달을 구르고 오른쪽 다리는 거의 뻗은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왕기춘은 4년 전 베이징올릭픽 결승전에서 갈비뼈 부상으로 경기 시작하자마자 힘 한 번 못 써보고 13초 만에 한 판패를 당했던 아픔을 잊지 못한다. 그는 “그 올림픽 이후가 내 인생 최악의 시간들이었다”라며 이런 얘기를 풀어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운동할 엄두가 안 났다. 운동을 시작한다는 게 겁이 날 정도였다. 또 다시 그 지옥같은 훈련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 마음들을 추스르고 도복을 입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왕기춘은 당시 기자들이 베이징올림픽에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금메달’이라고 말했었다. 기자의 유도 질문이든, 솔직한 표현이든,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결승전의 패배는 씻지 못할 상처로 남게 된 것이다.
“지금은 누가 나한테 올림픽 금메달을 자신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그런 큰 무대에서 부담을 안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선수가 누가 있겠나. 대신 부담을 내려 놓고 운동하는 건 나한테 또 다른 도전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즐기려 하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왕기춘은 이원희의 훈련 파트너로 대표팀 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큰 성장을 이뤘다. 결국엔 2008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 선배 이원희를 꺾고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왕기춘은 아직도 이원희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한다.
“내가 이원희 선배를 진정으로 이기는 것은 직접 상대해서 승부를 내는 게 아니라 그 체급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즉 실력이 아닌 메달로 보여줘야 원희 형을 넘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면 난 또 다시 이원희 선배를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왕기춘은 이원희 여자대표팀 코치의 팁이라면서 명상을 통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보며 욕심과 생각을 내려 놓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훈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왕기춘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스카우트해서 용인대로 데려간 현 유도대표팀 정훈 감독에 대해 굉장한 신뢰와 감사함을 담고 있었다. 젊은 혈기에 감독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지르며 뉴스의 인물도 됐지만 그 또한 인생 공부였다고 말한다.
“감독님이 계셨기 때문에 왕기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방황하는 날 잡아주셨고 2009년에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을 때도 날 도와주셨다. 감독님은 나의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다.”
올림픽 금메달도 목표지만, 남자 왕기춘은 결혼을 일찍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망도 갖고 있다. 2년 6개월 전에 여자친구가 있었고 지금까지 이성과의 만남 없이 운동만 해왔다는 그는 “올림픽 끝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연애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빨리 결혼하고 싶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 김재범. |
김재범을 인터뷰하기가 왕기춘보다 더 힘들었다. 워낙 힘든 훈련을 소화하다보니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였다. 기자를 보면 피하기 일쑤고 새벽 훈련을 마치고 나선 급기야 자신을 인터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꺼내 보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진 선수들을 찾아가 뭔가 얘기를 끄집어낸다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해 기자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해왔다. 새벽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 아침 식사하기 전에 김재범이 기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김재범은 독실한 신앙인답게 하루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내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하고 얼마 전에는 왼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손가락이 굽어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는 모든 훈련을 소화해냈고 텐리대 유도선수들과의 합동훈련에 빠지지 않았다.
“올림픽은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부상이 많아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놨고 신께 맡기기로 했다.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어깨와 팔꿈치는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도 내 왼팔이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더욱이 왼쪽 무릎까지 다쳐서 기술을 걸지도 못한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참고 훈련하는 것이다. 요즘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훈련을 해야 하고 올림픽에 나가야 하고 메달을 따야 한다.”
김재범은 이러한 고통과 고난도 하나의 축복이라는 성경 구절을 끄집어낸다.
“남들처럼 잘 안 돼서 진짜 열 받거나 화가 날 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편이다. 주위에선 나의 이런 모습에 ‘제가 지금 할 마음이 있나?’ ‘혹시 올림픽을 포기한 거 아니야?’하고 걱정을 하시는데 내려놓음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김재범은 담담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다가 지난 4년간의 시간들을 추억해봤다. 진심을 담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 순간마다 내가 누군지를 모를 때 사고도 쳐봤고 건방진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건방져 있거나 우쭐대고 있으면 나한테 고난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런 아픔을 통해 더 성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베이징올림픽 때 은메달을 따서 아쉽지 않느냐,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나한테는 그 결과가 최선이었다. 이길 수 있는 게임에서 진 게 아니었고 내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내가 금메달을 땄더라면 난 망나니가 돼 있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시려고 나한테 4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김재범한테 런던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그는 자신한테 올림픽은 목표가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기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는 휴식 시간을 기도와 독서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이에 비해 그가 경험하고 쌓아온 내공이 결코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밖에선(심지어 기자조차도) 올림픽 금메달에 환호하고 금메달에만 초점을 맞추며 1등주의를 쫓고 표방한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금메달 후보 영순위로 꼽히는 김재범은 세상의 기대와 시선과 판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D-데이가 다가올수록 그는 더욱 냉정히 자신을 돌아보며 부상과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세계 랭킹 1, 2위라고 해서 금메달을 확신할 수는 없다. 특히 올림픽처럼 큰 국제대회에서는 경기 당일 온갖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라 왕기춘, 김재범도 경기가 끝날 때까진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두 선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들은 이미 4년 전의 왕기춘, 김재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사카 텐리=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