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올해 5월부터 진행한 재외국민 특별전형 대학입시 비리조사와 관련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은 전국 40여 개 주요대학의 최근 5년간 재외국민 특별전형 합격자들이었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실로 충격적이다. 특례입학자 상당수가 입학자격 관련 서류를 위조 혹은 변조했거나 허위 발급받은 사실이 부지기수로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부정입학 학생은 무려 77명에 달한다.
검찰은 돈을 주고 허위서류를 꾸며 자녀들을 부정입학시킨 학부모 61명을 무더기로 입건했으며 이를 알선한 브로커 일당 6명도 함께 입건했다. 이들 중 죄가 중한 학부모와 브로커 6명은 구속 처리했다. 현재 브로커 일당 중 2명은 귀국을 거부해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태다.
학부모들에게 부정입학을 알선한 전 아무개 씨 등 입시브로커 일당은 중국 청도에서 입시학원과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사업자들이었다. 이들은 학원장 형제와 부원장 남매 등 가족기업 형태로 수년간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왔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고 학생의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위조해주고 학부모들에게는 상사주재원 자격을 인증해주는 각종 재직증명서를 위조 혹은 허위 발급해줬다. 학력미달인 학생들은 순식간에 우등생으로 둔갑됐고 지원 자격이 없는 학부모들은 상사주재원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학부모들 중에서는 2명 이상 복수의 자녀를 국내 대학에 부정입학시킨 사례도 14건이나 됐다. 한 학부모는 친구가 운영하는 중국 현지 회사에 장기간 근무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를 꾸며 자녀 3명을 서울 소재 명문대학에 특례 입학시켰다. 이 밖에도 자신이 퇴사한 회사의 재직증명서를 위조하거나 근무기간을 허위로 꾸며 자녀를 부정입학시킨 사례도 있었다.
무척 충격적인 수사결과지만 중국 현지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번 수사결과에 대해 대체로 시큰둥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언젠가 한 번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서류위조는 만연한 현상이었다.
7년간 중국 유학을 마치고 올해 귀국한 이 아무개 씨는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그리 놀랍지 않다.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문서위조는 일반화된 사실이다. 이번 사례처럼 굳이 입시브로커를 거치지 않더라도 중국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는 학교 근처나 중심지 부근에 문서를 출력하거나 복사하는 인쇄소가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인쇄소 안에는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포토샵 기술자들이 하나씩은 다 있다. 돈만 있으면 졸업증명서건 성적증명서건 모두 위조 가능하다. 실제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로 문서위조를 꾀한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입학서류 위조 외에도 학교 등록금 영수증을 위조해 아버지 회사에 제출하면서 부당 수익을 챙기기까지 했다”라고 밝혔다.
기자와 만난 또 다른 한 유학생은 “중국에서 한국 돈 20만 원을 주고 중국어능력시험인 한어수평고사(HSK) 급수자격증을 위조한 적이 있다. 대부분 별다른 검증 없이 서류를 통과시키기 때문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밝혔다. 한어수평고사 급수자격증은 국내 대학 특례입학의 첨부자료로 흔히 쓰이며 다양한 기업입사전형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음지에 자리 잡고 있는 입시브로커 혹은 문서위조전문가 외에도 중국 현지의 중·고등학교들도 특례입학에 필요한 학력위조에 가담한다는 사실이다.
이 씨는 이에 대해 “조금만 돈을 더 들인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음지에서 문서를 위조하지 않아도 된다. 더 안전한 방법이 있다. 바로 학교에 뇌물을 먹이는 방법이다. 학교 졸업에 필요한 일정 기준의 성적에 미달되거나 출석일수가 부족한 학생들 중 일부는 학교에 뇌물을 주고 졸업장과 성적증명서를 발급받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뇌물이 쉽게 통하는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문제가 심각하지만 국내 대학의 검증 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5년간 무려 77명의 학생들이 각종 재외국민 특례입학 제도를 통해 무사히 대학에 입성했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증거다. 이번에 적발된 77명 외에도 용케 수사망을 피한 학생들도 더 있었을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서울소재 모 사립대 관계자는 “입학시즌이 되면 수많은 국가의 체류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로부터 입학원서를 받는다. 우리도 나름대로 검증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현재도 다양한 방법들을 논의 중이다”라며 검증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재외국민특별전형제도는 1977년에 처음 등장한 일종의 특례입학제도다. 이 제도는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에 대해 국내 교육의 기회를 보장해주고 해외근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보통 입학정원의 최대 2%까지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하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제도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 가장 많이 악용된 제도는 ‘12년 특례입학제도’와 ‘상사주재원 자녀 특례입학제도’다. 전자는 초·중·고 12년 과정을 모두 해외에서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되며 후자는 해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 2년 이상을 상사주재원인 보호자와 함께 체류한 학생들에게 입학기회가 주어진다.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