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대부업체 양손에 떡 쥐고 영업
실제로 지난 4일 ‘지방흡입 1세대 전문병원’으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병원에서 사무장 김 아무개 씨(52)가 소득세 15 억여 원을 탈루한 혐의로 적발됐다. 김 씨는 이른바 ‘상근사무장’이다. 비의료인의 신분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떼어가는 것은 ‘외근사무장’과 동일하지만 김 씨의 경우 병원에 상주하며 수익체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병원 사무장의 세계,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강남 A 성형외과 원장 오 아무개 씨는 최근 사무장 영입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 시절부터 동료들 사이에서 ‘솜씨’ 좋기로 유명했던 그도 사무장 없는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데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오 씨는 “의사가 수술만 잘하면 되지, 환자를 끌어 모아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강남 일대 성형외과 10곳 중 9곳은 사무장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의사 박 아무개 씨는 “상근사무장일 경우 병원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김 씨처럼 거액의 세금 탈루 등을 저지른 사례는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외근사무장을 많이 두는 추세다. 그런데 외근사무장들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라고 털어놨다.
사무장은 두 종류로 나뉜다. 병원 내 상주하며 월급을 받으면서 환자를 유치할 때마다 20~30% 정도의 커미션을 추가로 받는 ‘상근사무장’이 그 중 하나다. 환자를 알선한 후 돈을 받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아예 병원 직원으로 일하며 좀 더 교묘한 수법으로 환자의 지갑을 열게 한다. ‘광고대행업체’를 통해 환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미용 카페 등에서 이벤트를 벌여 미끼상품을 내걸기도 한다.
이런 루트를 통해 모은 환자들을 상대로 전문상담을 하는 것도 사무장이다. 일부는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는 환자에게 코와 턱 등의 다른 부위 수술을 추천해주고 “패키지로 하면 할인해주겠다”고 권유하는 식으로 ‘장사’를 한다. 250만 원짜리 쌍꺼풀 수술이 어느새 1000만 원대 패키지 수술로 둔갑하게 되는 과정에는 사무장의 뛰어난 장사수완이 자리하고 있다.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것도 사무장들의 흔한 수법이다. 평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비용이지만 세금문제 등을 고려해 현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현금으로 하면 추가 할인해주겠다”는 사무장의 말에 일부 환자들이 근처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을 출금해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무장의 ‘혀 놀림’에 피해를 입는 것은 환자들이다. 500만 원짜리 수술을 “원래 700만 원인데 550만 원으로 깎아 주겠다”는 꼼수를 부리는 일도 있다.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심한 성형수술의 특성상 환자로서는 사무장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술과 관련된 모든 상담이 사무장과 이뤄지다보니 환자들은 수술실에 가서야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데아성형외과 권장덕 원장은 “수술 전 상담부터 수술까지 의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옳다”면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사무장이 환자를 상담하고 수술 부위를 추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월급을 받지 않고 외부에서 환자를 공급하는 ‘외근사무장’의 실상은 더욱 심각하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분포한 다수의 성형외과가 외근사무장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규모도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무려 40여 명의 외근사무장을 두고 있는 개인병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 해외에까지 진출한 B 성형외과의 경우 100여 명의 외근사무장을 두고 있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면서 알바 형식으로 알선 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현직 기자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성형외과 원장 이 아무개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지상파 방송기자에게 놀라운 제안을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이 씨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모 기자가 내게 사업가를 소개시켜주면서 ‘이 사람이 술집을 잘 안다. 형님이 친하게 지내시면 환자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 사업가는 내게 수수료를 요구했다. 말로만 듣던 브로커였던 것이다. 그 기자는 신분 때문에 직접 브로커로 뛰지는 못해도 브로커를 알선해주고 중간에서 돈을 챙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근사무장은 술집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이들은 술집여성에게 계약금 대신 성형수술을 제공한다. 이밖에 웨딩업체 사장, 헤어디자이너, 연예기획사 매니저 등이 외근사무장으로 뛴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을 원하는 여성고객들이나 ‘손 큰’ 고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외근사무장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뷰티론’을 이용해 환자를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사실이다. 뷰티론은 성형을 하고 싶지만 돈이 부족한 이들에게 대부업체와 성형외과를 동시에 소개시켜주는 신종대출수법이다. 외근사무장 출신 김 아무개 씨는 “성형외과 영업은 유흥업소 종사자, 대형 유흥업소, 대부업체, 외근사무장, 이렇게 네 박자가 맞아야 돌아간다. 경찰이 이들 간 검은 커넥션을 제대로 추적하면 강남 일대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사실일까. 외근사무장 김 아무개 씨는 “사무장의 1차 타깃은 술집여성이다. 자신이 관리했던 룸살롱 여종업원들에게 성형수술과 대부업체를 알선한다. 이때 병원장과 조율해서 수술비 300만 원 중에 100만 원을 받는 식이다. 또 대부업체가 술집여성에게 300만 원을 빌려주면 그 중 일부가 또 수수료로 들어온다. 양쪽에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압수수색으로 물의를 빚은 룸살롱 ‘어제오늘내일’은 물론 한때 스님 폭로전으로 도마에 올랐던 ‘신밧드’ ‘초원의집’ 등에도 사무장들이 개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종업원들에게는 “수술 받고 예뻐지면 더 좋은 룸살롱으로 연결해주겠다”며 성형을 권한다는 것이다. 일부 종업원들은 사무장과 연결된 대부업체에 돈을 빌렸다가 고리에 허덕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무장으로 인한 폐해가 커지자 일부 의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개업 당시 형편이 어려워서 외근사무장을 끌어들였는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들이 데리고 오는 환자들을 받고 있다. 이들이 유흥가 건달들과 연결돼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행패를 부릴까 겁도 난다”고 하소연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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