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둑들>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전지현. 사진제공=퍼스트 룩 |
이 말은 모두 배우 전지현(31)의 입에서 나왔다. 전지현이 변했다. 거침없는 화법으로 말을 이어갔고 자신감과 여유도 엿보였다. 인터뷰에서만 솔직한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전지현은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인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 시사회장에서는 더 ‘센’ 발언도 꺼냈다. 함께 출연한 김혜수와의 경쟁을 묻자 “가슴 크기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로, 동료 배우는 물론 행사장에 모인 취재진이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었다. 데뷔 15년째를 맞은 톱스타. 하지만 그 사이 출연한 영화가 단 8편뿐인 연기자.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엽기적인 그녀>로 기억되는 스타. 연기보다 CF스타로 친숙한 배우가 바로 전지현이다. 대중 노출이 적은 탓에 ‘신비주의 스타’로도 불렸다. 그랬던 전지현이 달라졌다. 시작은 25일 개봉하는 영화 <도둑들>부터다. 2008년 출연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달라진 게 없다는 투였지만 입만 열면 나오는 솔직한 발언들은 그가 좀 더 여유로워졌고, 이제는 세상의 눈에서 유연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후 10년. 전지현처럼 대중 노출이 적은 스타도 드물다. 전지현은 광고와 간혹 출연하는 영화를 빼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톱스타들도 간혹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근황을 알리지만 전지현은 달랐다. 이런 이유로 전지현은 10여 년간 ‘신비주의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러한 평가에 전지현은 신비주의라는 말이 좀 웃긴 것 같단다.
“배우가 작품을 통해 언론과 대중에게 노출되잖아요. 저는 중간 중간 해외활동이 섞이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가 짧았던 거죠. 그로 인해서 비롯된 편견이 아닐까요. CF만 하는 배우요? 그런 말 들어도 괜찮아요. CF도 제 일인데요. 잘하고, 잘됐으면 좋은 거잖아요. 그때 그 모습도 저인걸요.”
전지현이 짚어낸 ‘그때 그 모습’은 한편으론 청순미의 상징으로 통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 전지현의 데뷔 초 사진들이 온라인에 공개되며 누리꾼들은 ‘원조 첫사랑의 아이콘’이란 평가도 내렸다. 하지만 현재 첫사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배수지. 아쉬운 마음은 없을까.
“에이…. 그것까지 욕심내면 추악하지 않을까요? 하하. 청순하게 보였던 모습을 욕심내면서까지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첫사랑 이미지였다면, 그런 모습을 심어줄 수 있던 걸 다행이라고 여겨요. 그때의 제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 15년 만에 첫 키스신…지나친 자기관리?
<도둑들>은 전지현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연기, 대사, 액션 등으로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김수현과 나눈 키스신이 가장 화제다. 실제로 둘은 일곱 살 차이. 전지현은 데뷔하고 처음으로 키스신을 연기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15년 만에 키스신을 소화한 여배우는 찾기 어렵다. 이 상황을 두고 ‘의도였는지 우연이었는지’를 묻자, 전지현은 그 이유를 출연해온 영화 장르 탓으로 돌렸다.
“출연했던 영화가 대부분 판타지잖아요. 멜로는 <시월애> 정도였는데 두 남녀가 서로 다른 시간에 살았죠. 만약 <엽기적인 그녀>에 키스신이 있었다면 어울렸을까요? 없으니까 더 아련하지 않았을까요. 장르적인 탓이죠.”
첫 키스 연기였던 만큼 전지현은 당시의 현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김)수현에게 키스신이 처음이냐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한두 번 정도요’라고 말을 흐리더라고요. 흠…. 제가 손해 봤죠(웃음).”
전지현의 말처럼 그는 판타지 장르를 선호해왔지만 흥행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데이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여전히 전지현의 대표작은 10년 전에 출연한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은 잇단 흥행 실패에 대해 “그렇죠”라고 입을 뗐다.
“작품 선택할 때 마음가짐은 늘 같아요.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언제나 손이 벌벌 떨려요. 설마 제가 작품 결정하면서 ‘이건 실패하겠지’ 같은 생각을 했겠어요(웃음). 다만 대중은 4년의 시간(연기 공백)에 대한 갈증이 있을 테고 그걸 해소해주겠다는 각오는 있어요. 그 각오만 있으면 돼요.”
말이 나온 김에 전지현에게 최근 10년 동안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이유도 물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그래도 <시월애>는 여전히 좋아해주는 마니아 팬들이 있어요. 하긴(웃음). 이제 마니아 말고 많은 관객을 원한답니다. 이 순간에만 배우로 일하고 말 건 아니잖아요. 오래 연기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연기 공백을 보내더라도 촬영장에 얼마나 익숙한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젠 현장과 떨어진 공백은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 해외진출…“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 <도둑들>에서 전지현은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을 연기했다. |
전지현은 해외 활동을 통해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이야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잃은 건… 흥행? 어찌 보면 여러 면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어요. 그중 하나가 ‘작품 안 한다’는 오해죠. <블러드> 찍고 난 뒤에는 ‘다시 해외 나가서 작품 하나 봐’란 생각도 했어요. 제가 액션배우도 아니고. 영어 대사에 능숙한 것도 아닌데 두세 배의 노력, 특히 감정이 필요했어요. 감독과의 소통도 감질났어요.”
얻은 것도 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폭스(미국 유명 배급사) 작품이에요. 제가 언제 휴 잭맨과 연기해보겠어요. 하하. 지금도 가끔 휴 잭맨과 이메일을 주고받아요. 그 영화 덕분에 지난해에 칸 영화제도 다녀왔죠. 폭스니까 대우 자체가 달라요. 굉장한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건 해외활동을 했기에 가능했어요.”
전지현은 앞으로도 해외 활동 제안이 온다면, 그 기회가 좋다면 언제든 참여할 생각이란다. 최근에도 해외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거절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결혼…“남편은 워낙 시크한 사람”
전지현은 올해 4월, 동갑내기인 외국계 은행원 최 아무개 씨와 결혼했다. 둘은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 남편 최 씨는 유명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외손자다. 전지현의 한껏 여유로워진 이유 가운데 결혼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나 됐다고요. 저는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요? 기본에 충실한 거죠. 결혼 전에는 안정된 기반을 갖추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결혼해보니 확실히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연기에만 집중하는 게 가능해요. 아직은 연애하는 기분이에요. 크게 달라진 건 없고요. 결혼한 다른 분들도 다 저처럼 말하던데요? 우리만 특별할 건 없죠.”
전지현에게 결혼한 사실을 실감했을 때를 재차 물었다.
“얼마 전 영화 <베를린>을 찍는데 남편으로 나오는 하정우 씨에게 하는 대사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색했을 수 있었어요. 결혼하고 대사를 하니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어요.”
CF 속에서 사는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전지현의 결혼생활은 엄연한 ‘일상’이다.
“집에서 요리도 자주 해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여의치 않아요. 대신 책과 인터넷을 뒤져 요리법을 찾고 있는데 실력은 괜찮은 편이에요.”
음식을 맛본 남편의 반응을 묻자 “워낙 시크한 사람이라서…”라며 웃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 ‘반전’ 전지현…영화 <도둑들> 속 도발적인 대사
<도둑들>에서 전지현은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을 연기했다. 마카오 카지노에 있는 300억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려고 모인 도둑들의 두뇌싸움을 그린 이 영화에는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김수현 오달수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모였다.
전지현은 연출자인 최동훈 감독이 작정하고 쓴 발칙한 대사들 대부분을 소화했다. 김혜수를 보곤 “어~마어마한 쌍년”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성형의혹을 제기하는 오달수에게는 “이렇게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라고 소리친다. 기습 키스를 하던 김수현에게는 “야! (키스할 때) 입술에 힘 좀 빼”라고 외친다. 입만 열면 육두문자가 나오고 상대를 유혹하는 노골적인 몸짓도 서슴지 않는다. 전지현은 영화 제의를 받고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최동훈 감독이니 믿었고 감독님이니까 가능한 게 많았어요. 그동안 제가 했던 역할은 땅에 발을 딛지 않은 게 많았죠. 이번엔 쌍욕을 해도, 아무리 추한 모습을 보여줘도 믿고 할 수 있었어요.”
전지현은 8월 말까지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을 촬영한다.
“<베를린>을 끝내고 좀 쉬고 싶었는데 이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쉬지 않고 연기할래요.”
그러면서 전지현은 20대 시절을 돌이켰다.
“어릴 때부터 대형 기획사에 소속됐었고 ‘전지현은 시키는 것만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땐 의미를 몰랐어요. 회사에서 보여주는 몇 개의 시나리오가 전부인 줄 알았고 그 가운데 골랐어요. 어디 가서 작품 이야기하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죠.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한 걸 알아 가고 있어요. 자연스럽게요.”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