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아는 세계랭킹이 21위로 추락했을 당시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이 쏟아져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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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은퇴하려고 했지만
‘아줌마’라는 단어는 다양한 색깔을 갖게 하는 것 같다. 훈련 중일 때의 김경아는 무척 예민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풍기지만 라켓을 내려놓고 휴식 중일 때의 그는 마냥 편하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이웃집 아줌마 스타일로 변한다. 그동안 인터뷰 때마다 이번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말한 김경아는 그래서인지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더 열심히, 더 간절히, 더 정성스럽게 훈련에 임해왔다고 말한다.
“사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과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내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서른 살 넘어서 맞이하는 4년 후의 베이징올림픽을 기약할 수 없었다. 대부분 서른 살 넘어서 선수 생활도 은퇴하는 마당에 4년 후의 올림픽을 어떻게 생각조차 할 수 있었겠나. 그런데 서른두 살에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고 서른여섯 살인 올해 런던올림픽에 나간다. 솔직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곱씹어 봤을 때,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김경아는 당연히(?)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은퇴를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엔 체력적인 부분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에 더 이상 훈련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래서 베이징올림픽 이후 3년 동안 극심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며 생애 세 번째 올림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중국행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김경아는 2009년 5월 중국 충칭팀과 3개월 임대계약을 맺고 중국 프로무대인 슈퍼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김경아의 중국행은 탁구선수로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한다.
“탁구를 해오면서 항상 벽처럼 다가왔던 팀이 중국이었다. 중국을 꺾지 못하면 진정한 위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지피지기’의 심정으로 중국의 프로무대를 노크한 것이다. 처음 입단한 충칭팀은 하위권에 있다가 조금씩 상승세를 타는 팀이라 내가 주전으로 뛸 기회가 많았다. 그 다음 해인 2010년에는 슈퍼리그 우승팀인 중국 산둥의 누능팀에서 3개월 계약으로 2년간을 용병 선수 신분으로 생활했다. 그때 중국선수들을 상대하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라면 그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연습량이 없으면 경기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고 강한 선수를 만나면 한없이 약해지는,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었다. 중국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벽’으로 생각했던 내가 우스워보였다. 세상에 못 넘을 벽은 없는 거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넘을 수 있기도, 없기도 하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누능팀에는 이번 올림픽에서 2번 시드를 배정받은 금메달 후보 리사오샤가 속해 있었다. 김경아는 내심 리사오샤랑 친해지거나 자주 연습 게임을 치르며 그가 갖고 있는 기술의 노하우를 파악해내고 싶었지만 리사오샤는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자 경쟁자인 김경아에게 어떤 노출도 하지 않은 채 김경아와 일정한 선을 긋고 살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게임을 치르면 많은 관중들의 열띤 응원에 순간 당황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 게임의 승패에 반응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다. 그런 데서 오는 피드백을 체험하며 긴장감을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중국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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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는 지난해 2월 세계 랭킹이 4위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생애 최초였고 보람을 느낄 만한 순위였기 때문에 김경아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런데 그 후로 그는 3개월 동안 21위까지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세계 랭킹 4위를 찍고 그 후론 계속 불운이 겹쳤다. 수비는 수비대로 안 되고 공격은 공격대로 먹히질 않았다. 한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탁구가 되었고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탁구대 앞에 서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선 올림픽 출전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든 대회의 출전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공격 연습만 했다. 진짜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렸다. 중국에선 성적을 내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연습하면서 수비하다가 공격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을 잘 잡으려고 숱한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카타르 쿠웨이트 대회에 출전했고, 거기서 2등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 선수촌 체력의 비밀
30대 중반을 넘어선 김경아의 체력은 선수촌 내에서도 유명하다. 그러나 선수 자신은 체력왕이 아닌 저질 체력을 갖고 있다며 고개를 숙인다.
“밖에선 나를 강철 체력의 소유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최대한 아끼고 분배해서 체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즉 이전에는 필요없는 힘을 많이 썼다면 지금은 필요한 부분에서만 힘을 사용한다. 이렇게 힘들게 훈련하다가 숙소로 돌아가면 거의 ‘시체 모드’다.”
# ‘은퇴하라’ 비난도
세계랭킹이 21위로 곤두박질쳤을 때 탁구 팬들이 가만 있질 않았다. ‘언제까지 김경아를 데리고 가느냐’ ‘수비는 너무 지겹다. 공격적으로 탁구 해라’ ‘김경아는 은퇴해라’ 등등 김경아를 향한 날선 비난들이 그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스포츠에선 ‘퇴물’이란 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성적에 따라 대표팀 생활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비난과 댓글들을 접하면서 큰 상처가 생겼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을 정도로 한때 미움과 원망이 커진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말한 사람조차 이해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한때 퇴물 취급받았던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든다면 더 이상 김경아한테는 올림픽이 ‘한’으로 남게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김경아한테 런던올림픽이란?’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토해 놓는다.
“마지막이자 시작이기도 한 국제대회다. ‘마지막’이란 의미는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걸, 그리고 ‘시작’은 지도자 생활을 포함해서 또 다른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선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런던올림픽이 끝나면 2007년 9월 결혼 후 독수공방하다시피한 남편 박명규 씨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을 닮은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젠 여자로, 엄마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그다. 탁구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을 위해 런던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하루 6시간 이상의 맹훈련을 소화해 내고 있는 김경아. 과연 그에게 ‘행운의 여신’은 미소를 보내게 될까.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