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절차적 문제 강력하게 법적 대응…퇴임 후 휴식기 갖다가 국민이 부른다면 응할 것”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묵과할 수 없는 제보'로 촉발된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 결과를 확인한 전 위원장은 '묵과할 수 없는 감사보고서'라는 듯 다음 격돌을 예고했다. '자연인 전현희'의 각오와 소회는 어떨까. 퇴임을 꼭 일주일 앞둔 6월 20일 일요신문이 직접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 봤다. 인터뷰 내내 홀가분한 듯, 어떤 때는 마치 승자의 여유라는 듯한 미소를 내비쳤다.
―퇴임 소감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야 어두운 터널을 뚫고 저 멀리 빛을 보는 느낌이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뭐가 있을지 두려움도 있다. 시원섭섭하달까. 분명한 사실은 권익위는 제게 몹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많은 시민들과 호흡하고 권익 구제 업무를 수행하며 느낀 자긍심과 보람이 크다. 물론 아쉬움도 남지만 그냥 일 욕심 때문인 것 같다(웃음)."
―임기 중 기억에 남는 성과는.
"크고 작은 성과가 많다. 대표적인 게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인데 거의 8년 국회에서 표류해온 법이었다. 입법화를 위해 발로 뛰고, 많은 분들을 직접 설득하며 최선을 다해 얻은 결실이다. 또 전국 한센인 분들의 주거환경 개선과 강원 양구 펀치볼 마을의 숙원도 기억에 남는다. 펀치볼 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떠난 원주민이 돌아오지 못해 60여 년 무주지(주인 없는 땅)가 된 곳인데, 북한으로 피난 간 원주민에 토지소유권이 있어 정착민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권익위를 중심으로 8개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TF(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정착민들이 소유권을 갖도록 힘썼다. 이 밖에 급식카드 가맹점 확대 등도 의미가 크다. 마음 같아선 하루 종일 성과만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데 올해 권익위는 정부업무평가에서 최하위인 C등급을 받았다.
"업무평가에서 저희와 C등급을 받은 주요 기관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부다. 현 정부에서 기관장이 사퇴 압박을 받거나, 부처 폐지 등이 검토된 곳이다. 어떠한 의도가 개입됐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권익위의 경우 최하위의 주된 이유가 이해충돌방지법 전담 인력 부족이었다. 그러나 인력 배정은 행안부의 몫이다. 저희는 행안부 장관까지 직접 만나는 등 1년 이상 증원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런 앞뒤 사정을 배제하고 C등급을 받아 유감이다. 오히려 행안부가 C등급을 받아야 하지 않나."
―제도개선 권고 실적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자료도 최근 나왔는데.
"1년 정도를 멀쩡히 일할 수 없게끔 손발을 꽁꽁 묶은 정권 아닌가. 감사원 감사 협조에 모든 직원이 시달렸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단, 제도개선 의결 건수를 지적한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양보다 질을 봐야 한다. 이는 권익위의 위상이 올라간 데다, 일종의 사회 현상이기도 한데 이해관계가 복잡한 민원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당연히 갈등 조정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예컨대 저희가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인하했다. 국토부와 부동산 업계 및 소비자 단체 등 얽히고설킨 집단이 많다. 긴 논의 끝에 중개수수료를 낮췄다. 이로써 혜택을 보는 시민이 수백만 명이다. 이외에도 도서지역 택배비 인하, 음주운전 차량 시동잠금장치 도입 등 전부 장기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망치 '땅땅' 두드리는 식으로 제도개선 의결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숲을 봐야 한다."
―최근 나온 감사원 감사 결과, 비록 불문 사항이었지만 '근태 불량'이 담겼다.
"제 출근 시간을 정말 문제 삼으려면 모든 부처 장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제안하고 싶다. 저는 주말 포함 주 70시간가량을 일했다. 무엇보다 공무원의 오전 9시 출근 규정은 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권익위는 공익신고와 부패방지 기관으로서 보안 일정도 많다. 감사원은 단순히 세종 가는 기차표 등의 시간만 확인하고 결과 보고서에 담았다. 명백한 조작이다. 늦은 밤까지 일한 기록은 많고 걸어서 출근한 경우는 시간 자체를 알 수 없는데 전부 빠졌다. 어느 부처든 장관은 출근 기록 자체를 안 남긴다. 감사원마저 감사원장의 출근 기록을 안 갖고 있다. 제게 망신을 주려고 이런 결과 보고서를 냈겠지만, 단언컨대 다른 장관들보다 일은 더 했다. 표적 감사의 한 단면이다."
―갑질로 징계 받은 직원을 위해 탄원서를 써준 사항은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다.
"역시 억지스러운 조치다. 갑질 사건 자체는 제 취임 초에 벌어졌는데 제가 직접 감사실에 감사를 지시했고 중앙인사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이후 일선 직원과 간부들이 '다른 부처에선 경징계'라고 설득하며 선처 요청이 많았다. 문제가 된 직원은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는데 이후 불복 절차를 밟았다. 그때도 권익위 내부에서 탄원서 제출 등 선처 요구가 잇따랐다. 여러 명이 탄원서에 서명했는데, 제 이름도 같이 들어갔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한 직원의 동참 요구에 제가 응한 것으로 안다. 실제 갑질의 피해자마저 그 탄원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 해당 간부는 1개월 감경됐고 그마저 심하다며 행정소송까지 갔다. 판사가 '권익위원장이 조정에 동의해달라'고 했으나 하지 않았다. 단호히 대응했는데 탄원서 서명한 것으로 감사원이 2차 가해라는 식으로 몰아가니 황당하다."
―감사의 절차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많았다.
"탄원서 관련해선 감사원이 실은 일찍이 제출을 요구했었다. 우리 직원들이 개인정보에 관한 사안이라 내놓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여당 국회의원실 약 10군데에서 탄원서 자료제출 요구가 날아왔다. 감사원과 여당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또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감사보고서 최종 검수 과정에서 주심 감사위원이 배제되기도 했다. 판사를 배제한 판결문이 나온 셈이다. 이 부분은 강력하게 법적 대응할 계획이다."
―이미 감사원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건이 있다. 현재 검토 중인 법적 대응과 차이는.
"기존 고발은 감사원장 등의 직권남용에 따른 조작, 표적 감사를 지적한 게 핵심이다. 곧 고발할 사안은 감사위원회 의결과 감사 결과의 공개 절차 위법성이다. 이번 감사에서 저의 비위 행위가 드러난 바 없으므로 앞서 직권남용 등을 주장한 고발 건도 위법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상 맹탕감사였지만, 이런 결과가 공개되는 과정에서도 하자가 많았다. 주심 감사위원 배제는 당연히 문제고 절차를 어긴 결과물은 법적 효력도 없다. 이를 마치 권한 있는 자들이 만든 감사 결과보고서인 양 작성한 점은 공문서 위조에 해당한다. 특히 감사원은 최근 '권익위가 2023년 5월 9일 감사원장은 회피·제척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유관기관 회의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이후 감사원에 전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우리는 그런 취지를 전달한 적 없다. 이 보도자료 역시 허위 공문서와 다름없다. 수사기관이 엄정하게 조치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저도 빠른 시일 안에 조치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공개적인 사퇴 압박을 받았다. 대외에 알려지지 않은 사퇴 압박은 없었는지.
"정권의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을 받았다고만 말씀드리겠다. 그게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 등을 말씀드리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번 정부에서 임명된 부위원장들과의 관계는 괜찮았나. '감사원장 관사 호화 개보수' 여부 조사를 착수하는 과정에서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이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잘 지냈다. 특정 사안에서 간혹 견해가 다를 수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가끔 식사도 하고 차도 같이 마신다. 원만했다."
―감사원장 관사, 선관위 채용비리, 국회의원 가상자산 등 굵직한 조사가 많이 남았다. 이를 지켜보지 못하고 떠나게 됐는데 기대나 우려는 없는지.
"제가 우리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게 있다. 권익위는 기관장이 정무직이더라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 만큼 선관위나 가상자산 등 정치적 사안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내용일수록 중심을 단단히 잡고 공정성을 해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곧 퇴임이지만 남은 기간 이를 시스템화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어떤 정무직 인사가 오더라도 권익위가 공정성과 독립성의 상징이 되는 기관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
―다음 권익위원장에 남길 메시지는. 검찰 출신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많은데.
"어떤 분이 오실지 모르겠지만 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꼭 수호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검찰 출신은 조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권익위는 국민고충 민원과 권익 구제에 주력하는 곳인데 검찰 출신이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감 때문이다. 만약 정말 검찰 출신이 오더라도 국민 권익 구제 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퇴임 후 계획은. 총선 출마하나.
"당분간은 쉬고 싶다. 권익위원장을 맡으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마음도 편하게 다스리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명상 등에도 관심이 커졌다.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다. 우선 휴식기를 갖다가 국민들이 저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제가 쓰임이 있는 곳으로 불러주신다면 응하고자 한다."
―최근 국회에서 사퇴 압박의 과정을 '한 편의 영화'라고 비유한 의원도 있었다.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사필귀정. 정권의 사퇴 압박이나 감사원 감사를 겪으면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여러 번 되새겼다. 역사가 결국 진실을 증명할 거라고 믿는다. 곳곳에서 제게 씌우고자 했던 많은 누명들도 이미 전부 해명됐다고 생각한다."
―권익위 직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감사하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무척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여러분들은 흔들리지 않고 저를 믿고 지켜주셨다. 그 덕분에 저 역시 가장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존경한다. 사랑한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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