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20억 걸고 친누나·조폭 출신 수용자 도움 받아…법원 출정일 ‘영화처럼’ 호송차량 탈취 꿈꿨지만 무산
구치소 밖이라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선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는 죄수들을 태운 호송 차량에 큰 트럭이 고의적으로 교통사고를 내면서 탈옥하는 방법이 등장한다.
현실에서도 탈옥이 가능할까.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많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형 탈옥 사건이 여러 번 벌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의 탈옥은 어떨까.
‘구치소 수용자들은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가거나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가는 일이 잦다. 이를 소위 출정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래도 구치소를 나와 법원이나 검찰청으로 출정 가는 과정은 경비가 다소 허술할 수 있다. 특히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피고인이 수갑을 차지 않는 데다 법정 안에는 경위가 한 명뿐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 방청객으로 위장한 외부 조력자가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고 그 틈을 타 도주한다. 법원 건물을 빠져나오면 인근에 미리 준비해 있던 차량을 타고 도주한다. 이 계획에는 소란을 피우는 방청객과 차량 준비 인력 등 외부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탈옥을 시도하는 수용자는 교도소에서 만난 다른 수용자에게 무려 20억 원의 성공 보수를 약속해 외부에서 도울 사람들을 모집한다.’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시도된 탈옥 시나리오다. ‘라임 몸통’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를 위해 김 전 회장의 친누나 김 아무개 씨가 탈옥을 돕기로 한 수용자의 지인 A 씨를 만나서 착수금 1000만 원을 건넸다. 친누나 김 씨는 A 씨에게 착수금 1000만 원을 건네며 “필요한 사람들을 모집하고 대포폰 등을 준비하는 데 쓰라”고 했다고 한다. 영화 같은 탈옥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A 씨가 이런 내용을 검찰에 제보하면서 탈옥 시나리오는 무산됐다. 한편 탈옥을 도운 수용자는 조직폭력배로 알려졌다. 역시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캐릭터 설정이다.
서울남부지검은 7월 3일 김 전 회장의 친누나 김 씨를 피구금자도주원조 혐의로 체포했고 5일 친누나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한 7월 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는 교도관 등 교정본부 직원 30명가량이 배치되는 등 행여 모를 김 전 회장의 탈옥 시도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도 돌입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탈옥 시나리오가 담긴 A4 용지 수십 장과 김 전 회장이 동료 수용자에게 건넨 편지 등을 확보했다. 탈옥 시나리오는 예상 외로 치밀했다. 탈옥 일정과 계획, 동선 등이 매우 세부적으로 작성돼 있었고 검찰과 법원 청사 도면까지 실려 있었다.
탈옥 시나리오는 앞서 언급된 법정에서 방청객으로 위장한 조력자가 소란을 피운 틈을 타 달아나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도주하는 방법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호송차량에 교통사고를 낸 뒤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도주하는 방법도 있고, 아예 호송차량을 탈취하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심지어 검찰 구치감 비밀번호를 교도관 옆에서 김 전 회장이 직접 파악한다는 등의 구체적 액션 플랜까지 담겨 있었다.
뉴스1은 7월 4일을 디데이로 탈옥 시도가 준비 중이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7월 4일은 김 전 회장이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서울고등법원으로 출정을 나가는 날이었다. 검찰은 이날 서울고등법원으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호송차량을 탈취해 도주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처럼 호송차량에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을 뛰어 넘어 아예 호송차량을 탈취하는 시나리오다.
이에 서울남부구치소는 경찰에 차량 호위 협조를 요청했고 서울 서초경찰서는 7월 4일 경찰기동대 1개 부대(60명)를 투입했다. 경찰은 7월 11일과 14일 등 향후 재판 일정에서도 경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서울남부구치소 역시 호송 과정에서 교도관 등 30여 명의 계호 인력을 동원했다. 호송차량 탈취 시도가 있을 경우 칼 등에 의한 공격이 있을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방검 장갑과 팔 보호대까지 착용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이창형) 재판부는 재판 시작에 앞서 “피고인이 탈주하려 한다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얘기가 있어 법정에서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어 특별한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은 수갑을 찬 채로 재판을 받는 등의 지시가 내려졌다.
실제 구치소와 교도소 수용자들의 속내는 알 수 없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선 탈옥을 꿈꾸고 시도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 바람에 그칠 뿐이다. 탈옥을 계획하고 시나리오를 짠다고 해서 모두 실행에 옮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검찰과 교정당국이 김봉현 전 회장의 탈옥 시나리오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만약 시나리오대로 김봉현 전 회장이 탈옥에 성공했다면 이번이 세 번째 도주다. 2019년에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김 전 회장은 영장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다가 5개월여 만인 2020년 4월 성북구의 한 빌라 앞에서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있었다.
2022년 11월 11일 오후 1시 30분 즈음에는 김 전 회장이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인근에서 위치 추적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했다. 두 번째 도주다. 김 전 회장은 회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리고 정치권과 검찰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2021년 7월 법원이 보증금 3억 원에 전자팔찌와 주거지 제한 등을 조건으로 한 보석을 결정해 1년 넘게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결심 공판을 1시간 30분 앞둔 시점에서 도주했다.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는 게 유력해지자 도주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공범들이 중형을 선고받아 (양형이) 무거울 것 같다. 도망쳐야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에도 검찰은 이런 분위기를 파악해 김 전 회장이 도주하기 15일 전부터 법원에 다시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지만 법원은 “도주 의사가 없다”는 김 전 회장의 입장을 반영해 불구속 상태를 유지했다.
11월 10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되자 하루 뒤인 11월 11일 김 전 회장은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했다. 이 전 부사장에게 징역 20년이 확정되면서 자신에게 더 무거운 징역형이 선고될 것이 두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김 전 회장은 48일 만인 2022년 12월 29일 검찰에 붙잡혔다.
이번 탈옥 시도로 검찰에 체포된 김 전 회장 친누나 김 씨는 2022년 11월 도주 당시에도 등장했었다.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친누나 김 씨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등으로 연예기획사 관계자 홍 아무개 씨, 자신의 애인 김 아무개 씨 등을 김 전 회장과 연결해줘 수사 상황을 전달하는 등 도피를 도왔다.
검찰은 2022년 11월 말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친누나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여 해외에 체류 중이던 친누나 김 씨의 자진 귀국을 유도했다. 결국 김 씨는 2023년 2∼3월께 귀국해 체포됐지만 석방된 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아왔다.
한편 김 전 회장은 2023년 1월 1심 선고 공판에서 1258억 원대 횡령·사기 혐의로 징역 30년에 추징금 769억 원을 선고받았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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