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3일 민주당 경선 주자들이 공명선거 실천 협약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정세균 김영환 김두관 김정길 박영준 문재인 조경태 손학규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아니, 이렇게까지…” “어떻게 김두관이 이럴 수 있나” “첫날부터 이렇게 세게 붙다니…” 등 놀라움과 분노, 탄식을 담은 반응들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지금까지 손학규·김두관 후보를 중심으로 제기됐던 이른바 ‘문재인 필패론’을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고, 더욱이 그 주체가 문재인 후보와 함께 친노그룹으로 분류돼 온 김두관 후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재등장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판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타격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안철수의 생각> 출간과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 원장의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간 반면 ‘민주당 1등’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했다. 미디어리서치의 23∼24일 조사에서 안 원장은 24.6%의 지지를 얻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37.1%)에 12.5%포인트차로 뒤졌다. 여전히 격차가 있지만 10%대 중반까지 떨어졌던 안 원장이 단숨에 10%포인트가량을 치고 올라간 것이다. 반면 문 후보는 11.2%를 얻는 데 그쳤다.
글로벌리서치의 24일 조사에서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박 후보가 40.9%, 안 원장이 36.3%로 박빙 접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문 후보는 11.3%의 지지를 얻는 데 머물렀다. 일간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리얼미터의 24∼25일 조사에서는 안 원장이 31.7%의 지지를 얻어 29.8%의 지지를 얻은 박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반면 문 후보는 10.0%에 그쳤다.
불과 10여 일 전까지만 해도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며 20%에 육박했던 문 후보의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위협받는 수준으로 폭락했다는 점에서는 모든 조사 결과가 일치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개시를 앞두고 당내에 확산됐던 ‘문재인 대세론’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손학규·김두관 후보 지지율이 안 원장의 재등장 이후에도 3∼5%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유동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25일 광주, 26일 부산, 27일 대전으로 이어진 3일간의 합동연설회 연설 내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김두관 후보의 홍보물에서 나타난 것처럼 ‘문재인 필패론’이 노골적으로 제기됐다. ‘후보 교체론’이 전면화된 것이다.
김 후보는 26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민주당이 위기에 처했다. 안철수 원장에게 대선후보를 양보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며 문 후보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김 후보는 “문 후보는 현재 당내에서 지지율 1등이지만 안 원장 등장으로 10%로 주저앉았다”며 “후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손학규 후보도 문 후보를 ‘민생 실패, 2007년 대선 패배, 2012년 총선 패배’ 등 ‘3패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3패 세력’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서 이번 대선에서 ‘4패’를 당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안풍’은 당장은 문재인 후보에게 가장 큰 타격으로 다가가는 양상이다. 문 후보가 당내 경쟁자들에 비해 20∼30대에서 강세를 보여 왔지만, ‘안풍’이 불자 그 지지층을 안 원장에게 상당부분 빼앗기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 후보와 손학규·김두관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5∼6%포인트 정도로 줄어들었다.
손학규 후보 경선캠프 관계자는 “‘문재인 대세론’이 꺼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일단 대세론이 꺼지면 판은 완전히 새롭게 짜여질 수밖에 없고, 이제부터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세론에 막혀 무슨 짓을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손 후보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김두관 후보 경선캠프 관계자도 “문재인으로는 박근혜도, 안철수도 못 이긴다는 게 분명해졌다”며 “민주당 지지층은 이제 새로운 대항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경선이 결선투표제로 치러진다는 점도 문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거 경험이 풍부한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 역시 현 상황을 ‘문재인의 위기’로 분석했다. 이 의원은 “문 후보 역시 넓게 보면 정치신인이기 때문에 한번 상승세가 꺾이면 다시 치고 올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문 후보가 콘텐츠 면에서도 탁월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이번에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 ‘참담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의 위기’는 동시에 ‘손학규·김두관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안풍’이 불어 닥치면서 또 다시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총합이 안 원장 지지율보다도 낮아졌다”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안 원장 옹립을 위한 ‘마이너리그’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악의적인 전망이 현실화될 우려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치면서 안철수 원장과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를 키우겠다던 민주당의 구상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안풍’의 지속성이다. 안 원장의 지지율 상승세가 민주당 본경선이 시작되는 8월말까지 계속 이어진다면 이 관계자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