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유지 위한 보증금대출이 가장 큰 원인…양질의 일자리 제공보다 청년 대상 금융대출 늘린 탓도 커
“20대 중반이고 휴학 중이에요. 집 형편도 어렵고 빚이 700만 원 정도 있어요.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가 있었는데 100만 원 정도 벌어요. 코로나 때문에 한 달간 일을 못해서 카드, 핸드폰비 연체가 되게 생겼는데 신용도에 큰 문제가 갈까요?”
2030세대가 빚에 허덕이고 있다. 개인회생까지 고민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반면 청년층 취업자 수는 8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빚은 늘고 일자리는 줄어든 양상을 보이고 있어 청년들이 출구 없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다중채무자(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 수는 141만 9000명으로 이들의 대출 잔액은 157조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양정숙(무소속)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근로자햇살론‧햇살론유스 등 7개 주요 서민금융 대출 신청자 291만 5555명 중 30세 미만 신청자는 102만 9234명(35.3%)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비율도 20대에서 가장 높았다.
2030 청년들의 빚이 늘면서 개인회생 접수 건수도 늘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올해 1~5월 20대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6993건이었다. 지난해 20대는 1만 3868건의 개인회생을 신청,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6월이 되기도 전에 지난해의 절반을 넘어섰다. 1~5월 30대의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1만 3846건으로 지난해(2만 6626건)의 52% 수준이었다.
반면 청년 취업자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881만 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만 3000명 늘면서 28개월째 증가세를 유지한 반면 청년층은 11만 7000명 줄어 8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청년층 취업자 수의 지속적 감소는 인구감소 영향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구조의 변화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상태가 좋지 않고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탓에 청년 취업자 수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빚은 가파르게 늘어난 반면 취업자 수는 줄어든 상황을 청년들의 ‘영끌’이나 ‘빚투(빚내서 투자)’ 때문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들의 가계부채는 ‘영끌’로 집을 사서라기보다 보증금대출로 인한 가계 부채 증가가 가장 큰 요인”이라며 “임금 인상 수준에 비해 주거비 인상률이 워낙 가팔랐고, 생활유지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 확보보다 청년 대상 금융대출을 앞다퉈 늘린 탓도 크다는 지적이 있다.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청년들은 정부가 장려한 대출 상품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영섭 세상을바꾸는금융연구소 소장은 “윤석열 정부는 금융 규제를 풀어 삶에 필요한 비용을 대출로 조달하게 한 정책을 펼쳤다”며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있는 청년들이 대출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청년 관련 정책 기조가 이어지지 못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에 대한 책무를 정하고 청년정책의 수립과 청년 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청년기본법이 2020년 8월 시행됐다. 이병훈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청년기본법 재정 후 국무총리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설립됐는데, 현 정부 들어서 유야무야됐다”며 “청년들을 위한 주거, 일자리, 부채 등을 모두 통합해 청년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힘 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출보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 공공주거 확대 등을 통해 청년들의 삶의 필수 요소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영섭 소장은 “교육, 의료, 돌봄 등 삶의 필수적 요소들을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해결해줘야 한다”며 “대출과 부채를 통해 청년들이 삶의 문제를 해소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수 위원장은 “청년들이 빚을 지지 않아도 적절한 주거권을 확보하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공공영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정숙 의원은 “2030세대 청년들의 금융‧경제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업과 협의해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 혁신적인 고용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주거 안정을 위해 대폭 확대된 임대주택 상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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