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펑산산이 2월 22일 싱가포르 타나메라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대회에서 티오프를 하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
재미있는 것은 이런 펑샨샨의 소속사와 매니지먼트는 모두 ‘한국산’이라는 점이다. 펑샨샨을 발굴해 키운 HSMG(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의 장종환 사장(국제변호사)을 통해 펑산산 스토리를 들어봤다.
# 펑산산이 무서운 이유는 ‘만만디’
“기본적으로 평산산은 절대 큰 꿈을 갖고 달려드는 친구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현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한다. 예컨대 성적이 좀 좋아져도 자기가 그 성적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평가한다.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면서 서서히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국 투어에 데뷔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지금 세계 3위까지 올라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보니 메이저대회를 제패하고, 세계 정상급 선수가 돼 있는 것이다. 한국선수들이 단 번에 성공신화를 달성하는 것과 비교되는 중국식 만만디 성공스토리다. 중간에 안 될 때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올라서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국선수답다고 할 수 있다.”
장종환 사장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펑산산의 성공은 마치 중국이 경제, 정치, 과학 등의 분야에서 어느 날 보니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대국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172㎝, 65㎏으로 체격 조건이 좋은 펑산산은 중국 광저우 골프협회의 간부(공무원 신분)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5세에 일찌감치 골프에 입문했다. 아버지의 주 업무가 주니어 골프대회 개최 및 주니어 육성이니 펑산산에게는 제격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얼마 전만 해도 중국 골프는 보잘 것 없었다. 펑산산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2004~2006년 중국 여자 아마추어챔피언십을 3연패했다. 그리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중국대표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미국은 물론, 박세리를 필두로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간 한국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제 펑산산은 아마추어 시절 최나연 박희영 김인경 신지애 청야니 등과는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큰 기량차가 났다. 도하에서도 개인전 7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우승을 차지한 유소연, 동메달리스트 최혜용 등은 펑산산한테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펑산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에서 여자 프로 대회 개최를 추진하던 장종환 HSMG 사장이 중국국가대표 3명을 선발해 각각 한국, 일본, 미국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으로 간 다른 두 선수는 결국 실패했지만 가장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간 펑산산은 5년여 만에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주니어 시절 골프 후진국의 선수로 자신이 동경했던 수많은 톱랭커 중 이제 자신의 이름(세계 3위) 앞에 있는 선수는 청야니와 최나연밖에 없다.
▲ 청야니(왼쪽)와 펑산산. AP/연합뉴스 |
▲ 2월 26일 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대회에서 연장전을 펼친 펑산산, 최나연, 제니신, 스탠퍼드(왼쪽부터). 스탠퍼드가 우승을 차지했다.로이터/뉴시스 |
“도하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에 펑산산을 처음 봤다. 일단 체격조건이 좋았고, 중국 쪽에서도 최고의 기대주라고 했다. 실제 보니 골프기량도 제법 뛰어났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체격이나 실력보다는 성격이었다. 아주 적극적이었다. 여기에 아주 총명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IQ가 아주 높다는 얘기도 들었다. 똑똑한 사람이 뭔가에 꽂혀 배우려고 달려들면 무서운 법이다.”
장 사장은 펑산산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힐튼헤드 아일랜드에 위치한 IJGA 아카데미에 장학생으로 입학시켰다. 여기서 펑산산은 미셸 위 등을 가르친 세계적인 스윙 코치인 게리 길크리스트에게 사사받게 했다. 이 아카데미엔 당시 HSMG 소속이던 김인경과 김송희도 함께 있었다. 세계적인 지도자 및 선수와 한솥밥을 먹은 펑산산은 2007년 미LPGA투어 Q스쿨을 통과한 후 미국무대에 입성했다.
펑산산은 광저우에서 보낸 학창시절, 공부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골프 대신 공부를 시키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라고 한다. 센스가 있고, 눈치도 빨라 어디서든 적응을 잘했다. 언어능력도 뛰어나 영어도 아주 빨리 배웠고, 심지어 한류 팬으로 드라마 등을 통해 익힌 한국말도 제법 구사한다고 한다. 한국어 발음이 외국인 같지 않고, 한국 사람처럼 정확하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동방신기 등 한국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는 빠뜨리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당연히 펑산산은 대표적인 친한파다. 김인경, 김송희는 물론 최나연과 신지애 등과 가깝게 지낸다.
장 사장은 2007년 말 펑산산을 한국의 대기업 코오롱과 연결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아무리 중국시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펑산산은 당시 겨우 미국 Q스쿨을 통과한 선수였다. 그런데 골프팬으로 유명한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7년 계약을 주문했다. 보통 골프선수들의 후원 계약은 2년. 이 회장은 펑산산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획기적으로 7년을 요구한 것이다. 장 사장도 펑산산도 놀랐다. 논의를 거쳐 5년으로 조정했는데 올해 계약 마지막 해에 펑산산이 대박을 터뜨렸고, 코오롱도 중국에서 큰 홍보효과를 보고 있다.
메이저 퀸이 된 펑산산은 내년 새로운 스폰서 계약을 앞두고 코오롱은 물론이고, 롯데 등 다수의 한국기업, 그리고 이미 3승을 거둔 일본, ‘녹색아편(골프)’ 열기가 높은 중국기업 등에서 펑산산과의 계약을 노리고 있다. 펑산산은 코오롱과의 의리를 중시하지만 워낙에 몸값이 높아진 까닭에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현재 펑산산과 청야니는 나란히 개리 길크리스트에 배우고 있다. 펑산산이 2007년부터 문하생이었는데 2년 전 청야니가 길크리스트에게 찾아왔다. 아무리 중국본토와 대만이라고 해도 같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둘은 가까운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교류를 시작한 한국선수들에 비하면 오히려 청야니는 좀 더 거리감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교롭게도 펑산산의 대박과 청야니의 갑작스런 몰락이 겹쳤다는 사실이다. 청야니는 시즌 초반 5개 대회에서 3승을 거두며 사실상 독주 체제를 갖췄는데 최근에는 컷탈락을 걱정하는 수준으로 망가졌다. 최근 3개 대회에서 컷탈락 1회 등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US여자오픈 3라운드 전반에서는 43타를 치고, 4라운드 후반에는 45타를 기록하는 등 아마추어 스코어까지 나오고 있다. <왼쪽 표 참조>
그런데 같은 기간 펑산산은 4개 대회에서 우승-7-19-4위를 차례로 기록했다. 기복없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청야니의 부진이 부상보다는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크다는 사실에서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게 만들고 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수 아래로 봐 왔던 펑산산의 급부상이 청야니를 ‘멘붕’ 상태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다. 실제로 장 사장은 길크리스트와 최근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이제 중화권을 대표하는 선수가 청야니에서 펑산산으로 이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청야니는 은퇴설까지 나오고 있는 반면 펑산산은 남자 톱랭커와 스킨스게임이 추진되는 등 연일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장 사장은 “아직 평산산의 뚜렷한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2, 3위권 선수들은 평산산과 기량차가 크다. 그리고 펑산산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워낙 중국의 골프시장이 크기 때문에 펑산산 등 중국골프에 대해서도 한국의 기업과 선수들이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 청야니 로이터/뉴시스 |
미국서 KLPGA 개최 추진
장종환 사장은 <일요신문>의 취재 때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머물고 있었다. 중국에서 KLPGA 대회를 개최하고, 올해 하와이에서 롯데챔피언십을 여는 등 어떤 일을 꾸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인터뷰 도중 슬쩍 들으니 지금도 ‘깜놀’ 이벤트를 추진 중이었다.
바로 KLPGA 대회를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여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선수를 대거 미국투어로 보냈는데 이번에는 아예 한국대회를 미국에서 여는 것이다. 이 지역에 한국교민이 많고, 한국골프에 관심이 있는 미국사람들도 많아 라스베이거스의 대형카지노 등 스폰서들이 관심을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추가로 장 사장은 이제는 한국이나 중국 선수가 아닌 서양선수를 매니지먼트 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한국이나 아시아 쪽에 관심이 있는 서양선수들이 많은데 이들을 한국 매니지먼트사가 직접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미녀골퍼로 유명한 산드라 갈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2010년 10월 중국의 한 기업가가 청야니에게 5년 동안 2500만 달러(약 290억 원)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국적을 중국으로 바꿀 것을 제의했다고 보도가 나왔다. 이를 청야니의 아버지 청마오신은 거절했다. 장 사장은 “정확히 설명하자면 중국의 기업가는 화빈그룹의 옌빈 회장이다. 화빈그룹은 베이징에 화빈 골프장을 갖고 있고. 에너지음료 레드불을 생산하는 중국 재계 4위 규모의 대기업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야니 아버지는 단순히 사업가가 아니라 대만의 정치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신 화빈그룹은 국적포기를 하지 않았어도 현재 서브스폰서로 청야니를 후원하고 있다. 가끔 미국에 와서 청야니를 후원하고 한다”고 설명했다. 청야니의 아버지가 대만 정치권에 깊이 개입돼 있다는 건 처음 나온 사실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