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싱의 남현희와 사이클 공효석 커플은 연애 시절 태릉선수촌을 데이트 장소로 즐겨 이용했다고 고백했다. |
# 몰래 데이트, 전화비만 200만 원-김택수&김조순
김택수 대우증권 토네이도 탁구단 감독(42)은 지금의 아내, 김조순(37)을 태릉선수촌에서 처음 봤다. 양궁 대표팀이었던 김조순의 빼어난 미모 때문에 당시 태릉선수촌에서는 그녀를 흠모하는 동료 선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아내를 모르면 선수촌에서는 간첩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남자 선수들이 서로 김조순 연락처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다가 양궁대표팀의 동갑내기 선수에게 부탁해서 아내의 삐삐 번호를 알아냈고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김택수 감독은 아내와 자신을 이어준 숨은 조력자가 있다고 공개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김조순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딴 동료 김경욱이다. 선수촌에서 김조순과 김경욱은 같은 방을 쓰고 있었고 김경욱이 김택수에 대한 얘기를 잘해주는 바람에 김조순이 김택수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김 감독은 연애할 당시에 생긴 또 다른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선수촌에서 불암산 등반 훈련을 하지 않는 팀 중 하나가 양궁대표팀이었다. 하루는 코치님께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양궁팀 도보 훈련을 따라가 아내와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프랑스 프로리그에서 활동할 때는 아내와 전화하느라 전화비만 200만 원 넘게 나온 적도 있다.”
김택수와 김조순이 결혼할 때 김조순은 선수 생활 은퇴를 결정했었고 탁구계에선 ‘김택수가 아깝다’, 양궁계는 ‘김조순이 아깝다’고 할 정도로 말이 많았다며 김 감독은 웃는다. 지금도 아내, 김조순이 집에서 기 싸움을 벌일 때면 올림픽 금메달이 없는 김택수의 약점(?)을 꼬집곤 한다고. 선수 때나 감독을 하는 지금이나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밝힌 김 감독은 아이들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호주에서 지내는 아내가 더 많이 보고 싶은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호주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이 인기가 높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가 올림픽메달리스트라고 학교에서 자랑했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가족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한다. 표현하지 않아도 아내와 우리 두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 자주 못 보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가족이 자랑스럽다.”
▲ 탁구의 김택수는 적극적인 구애 작전 끝에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양궁 얼짱 김조순과의 사랑에 성공했다고 한다. |
▲ 탁구의 김택수.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핸드볼 남녀국가대표 골키퍼들은 뛰어난 방어기술 말고도 남다른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바로 연상연하 커플의 전통이다. 강일구(36·인천도시개발공사)-오영란(40·인천시체육회) 부부가 1대,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박찬영(29·두산)-이민희(32)가 2대째다. 2002년 부부의 연을 맺은 강일구-오영란 커플이 처음 만난 곳은 태릉이 아니었다. 강일구가 남한중 2학년이고 오영란이 신갈여고 3학년일 때 처음 알게 되었다고 밝힌 강일구는 처음에는 그저 누나, 동생 사이였다고 말한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곳이 같은 경기도라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체육관이 별로 없어 여고 선수들과 남중 선수들이 같은 체육관에서 시합을 많이 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선수촌에서 처음 아내를 봤는데 아내가 ‘왜 알면서 인사도 안하고 말도 안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막내였기 때문에 선배들이 여자팀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곤 했고 그때 아내와 잠깐씩 얘기하는 누나, 동생 사이였다가 점차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자연스럽게 선수촌에 사귄다는 소문이 났고 대한핸드볼협회에서 비인기 종목 핸드볼을 살리려면 골키퍼 커플을 이슈화해야 한다는 말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커플 사이임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강일구-오영란 커플. 강일구는 결혼 뒤 곧바로 아내, 오영란이 노르웨이 2부 리그로 트레이드되어 아내와 떨어져 있는 1년이 길게만 느껴졌었다고 한다.
“아내가 노르웨이로 간다고 해서 ‘그럼 결혼은 왜 했나’라고 생각했는데 소중한 해외 진출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얼굴이라도 자주 볼 수 있었던 태릉선수촌 시절이 그립기도 했지만 나중에 아내가 잘해서 팀이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올라갔을 때는 정말 기뻤다. 아내가 돌아온 뒤에도 서로 팀 사정상 훈련지와 경기장이 달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강일구는 태릉선수촌은 물론이고 운동 선수 커플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충분히 환영해줄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런던에 가 있는 박찬영도 우연히 나와 같은 골키퍼 연상 아내를 얻어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결혼 전 찬영이에게 조언과 충고도 많이 해줬다. 같은 종목,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불편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단, 아내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고 있다는 게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웃음).”
강일구는 올 시즌 시작 전 선수 생활 은퇴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다행히 소속팀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어도 좋다는 제안을 했고 다음 달에 재계약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란다. 이제 길어야 2~3년 남은 선수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강일구는 바쁜 아빠, 엄마 탓에 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는 두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드러냈다.
“나이 먹고 훈련 소홀히 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선수 생활 통틀어서 가장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팀 사정이 좋은 건 아니지만 리그에서 우승도 해보고 싶다. 아내에게 결혼 10주년이 되었을 때 좋은 곳으로 여행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켜주지 못했다. 둘째 딸이 어려서 아빠, 엄마 운동 가면 울곤 하는데 정말 미안하고 안쓰럽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운동을 더 해보겠다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좀 더 컸을 때 아빠, 엄마가 한국을 대표하는 핸드볼 선수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성취하고 싶다. 앞으로 가족을 더 아껴주고 사랑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 강일구 오영란은 핸드볼 골키퍼 연상연하 커플의 전통을 이었다. |
강일구-오영란 커플이 같은 종목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면 남현희(31·성남시청)-공효석(26·금산군청) 커플은 펜싱과 사이클이란 다른 종목에서 부부로 이어졌다. 강-오 커플과 공통점을 찾는다면 남-공 커플도 아내가 다섯 살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사실. 또한 두 사람 역시 서울시청 소속이던 시절 워크샵을 갔다가 누나 동생 사이로 인연을 잇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한 케이스다.
“당시 150여 명의 선수들이 워크샵에 참여했는데 마침 펜싱 감독님과 사이클 감독님이 친하시다보니 선수들도 서로 허물없이 지내며 저녁에 술도 같이 마시는 등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와이프랑 친해질 수 있었다.”
공효석은 사이클 대표팀에 있을 때 한 달여 정도 남현희와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해서 한창 열애 중일 때라 다른 사람들 눈에 발각될까봐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촌에서의 만남을 이어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 때 식당에서 마주치게 되면 눈인사만 나누다가 저녁에 선수촌 내의 당구장이나 노래방에서 우리 사이를 알고 있는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데이트를 즐겼다. 난 선수촌 밖보다 안에서 데이트하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그 안에서는 우리 둘을 친한 누나 동생이라고 생각했고 선수촌이 넓다 보니 여기저기 데이트할 장소가 많았다. 주차장 차 안도 썩 괜찮은 데이트 장소였다(웃음).”
공효석은 남현희와의 열애 사실이 공개되면서 잠시 혼란스런 감정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이클 부문에선 독보적인 존재였고 국가대표로 발탁돼 좋은 성적을 낸 이력이 있기 때문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사귀다보니 자신의 이름보다는 ‘남현희의 남자친구 공효석’으로 인식되는 일이 잦았던 것.
“결혼 전에는 조금 섭섭했지만 결혼한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워낙 커리어가 화려한 아내를 만나다보니 내 운동 생활에도 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자주 못보고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내 편이 돼주고, 날 위해 기도해주며 응원해주는 아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만 하다.”
공효석은 남현희한테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 후 소속팀에만 전념하면서 미뤄뒀던 2세 갖기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현재 금산군청 소속인 공효석은 충남 금산에서 팀 훈련을 소화하며 문자와 전화로 런던에 있는 아내를 응원하고 있다.
▲ 시드니올림픽 당시 나란히 TV 해설가로 나섰던 김미정 김병주 커플. 연합뉴스 |
▲ 김미정. 임준선 기자 |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남편이 날 꼬인 게 아니라 내가 남편을 먼저 유혹했다(웃음).”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미정 교수(41·용인대)는 바르셀로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던 남편 김병주 교수(44·공군사관학교)와의 만남이 결혼까지 이뤄진 데에는 자신의 적극적인 구애가 한몫했다고 말한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할 때 주로 남자 선수들을 상대로 대련을 벌였고, 그때마다 남자들이 김 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유일하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남편 김 교수였다는 것.
“우리는 선수촌에선 서로를 철저히 모른 체했었고 대신 극장에서 007작전을 구사하며 영화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엔 나도 꽤 유명인이라 극장 들어갈 때는 영화 시작하고 조명이 꺼진 뒤에, 그리고 나올 때는 영화가 채 끝나기 전에 미리 빠져나오는 식으로 사람들 눈을 피해 다녔다. 1년 넘게 비밀 연애를 하는 바람에 나중에 열애설이 흘러나왔을 때는 동료 선수들이 나서서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극구 부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웃음).”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 교수로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김 교수는 1994년 현역에서 은퇴 후 27세에 ‘엘리트 선수 출신 여성들의 삶’이란 주제로 박사 논문에 통과한 다음, 29세의 나이에 모교인 용인대 정식 교수로 임용되었다.
또 다른 메달리스트 커플인 양궁의 박성현(29·전북도청 감독)-박성모(37·공주시청 감독)는 2008년 12월 웨딩마치를 올린 후 현재 두 살배기 딸을 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두 사람은 올림픽 동안에 열애설이 터지는 바람에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열애를 인정하고 결혼을 발표하며 공인 커플로 인정받기도 했다. 선수이자 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 감독은 소속팀 이성진이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어 모든 관심이 런던을 향해 쏠려있다며 제자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차인태 기자 cit02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