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호중 버팀목 되어준 교사 풀스토리
- "뿌린 대로 거두니 믿고 기다려야"…교육계·학부모 일침도
[일요신문] 가수 김호중이 KBS2 '불후의 명곡' 왕중왕전에서 최종 우승하며 다시금 국민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팬카페 '트바로티'는 수해 피해 성금으로 3억 50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도 가수 김호중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김호중의 학창 시절은 쉽지만은 않았다. 난관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교육 사회 전체가 시끄러운 가운데 '본지'가 가수 김호중의 은사이자 참스승 '서수용 김천예술고 전 교장(62)'을 만나 그만의 교육 철학과 현 교육계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스승 서수용 "김호중, 나 자신 대신할 운명 같은 아이"
지난 2008년 늦은 봄 스승 서수용은 김호중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곡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E luce van le stelle)'.
"노래를 듣는 순간 '내가 야(이 아이)를 만나려고 그 많은 길을 돌아 돌아 여기에 왔구나'라는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유럽 정통 테너의 계보를 이어갈 가능성을 봤다. (내가) 연주가로서 실패한 테너로서, 한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아이라고도 생각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겪는 것처럼 당시 호중이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던 시기였다. 그때 서로 만난 것이다. 비록 어려운 시기였지만 근본적으로 장난기가 많은 어린이 같은 순수한 면이 있었고 선생님에 대한 언행만큼은 아주 공손하고 깍듯했던 학생이었다."
#"김호중 안 받으면 사표 쓰겠다"
김호중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그는 자신의 학교로 전학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많은 동료 교사가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호중은 이른바 '문제 학생'으로 지적받곤 했다. 그러나 스승 서수용은 전학의 뜻을 굳히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마음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 당시 나는 내 인생을 걸 수 있을 만큼 호중이에게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하게 밀어붙였고, 급기야 이 아이를 받아 주지 않으면 내가 학교에 사표를 쓰겠다는 강수를 두며 내 뜻을 관철했다. 물론 그 과정에 그 당시 교장 선생님이셨던 '이신화 교장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관심과 배려로 붙여준 또래 멘토 '이재명'
첫 전학 후 김호중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낯선 환경에 친구가 없었다. 환경마저 어려워 홀로 발버둥 치는 시기였다. '잘못하면 호중이가 학교에 적응 못 하고 자퇴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또래 멘토를 소개해 줬다.
"당시 테너로 성악과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던 '이재명'이란 학생을 불러 또래 멘토가 되어 주길 부탁했다. 당시 재명이는 두말 없이 '선생님 알았습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라며 내 뜻에 따라줬다. 나중에 둘이 친해졌고 호중이도 차츰 학교에 적응하며 잘 다닐 수 있었다. 둘은 지금도 끈끈한 친구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제자 재명이가 정말 고맙다."
#"베푼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제자에게 건넨 알바비
한때 그는 자신의 제자에게 아르바이트 비용 석 달 치를 건넨 적이 있었다. 당시 그 학생은 평소 아끼던 제자로 홀어머니가 3자녀를 키우는 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수능을 마치고 실기를 앞두고 있어 연습이 필요했지만, 생계를 위해 어머니를 도와야 할 처지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동안 장학금으로 조금씩 도와주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고3 대학 실기시험을 앞둔 유망주 학생인지라 수업 마치고 하루에 4~5시간씩 알바를 하게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서 교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너 이곳에서 알 바를 하면 한 달에 얼마를 버니? 앞으로 대학 실기시험을 칠 동안 3달의 알바비를 내가 줄 테니 너는 연습에만 죽자 살자 매달려라! 알겠니?"
그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으로 그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연습에만 전념하게 됐다. 이후 그는 한국 최고의 성악과에 당당하게 합격하게 된다. 이 사실은 그가 제자들이 전해 준 퇴임 축하 편지를 읽다가 기억하게 됐다고 한다.
"평소 나는 학생들에게 베푼 일들은 기억조차 안 하고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기억하면 기대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잊어버리고 그저 내 할 일만 하려고 노력한다. 교장으로 퇴임하던 날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우울감에 젖어 있을 때 제자들이 전해 준 퇴임 축하 편지를 읽게 됐다. 그중에 한 제자가 보낸 편지 속에 나도 기억 못 한 일들을 적어 놓고 감사하다는 편지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고 잊고 있었던 까마득한 옛일들이 생각나 '교사로 그래도 나름 잘 살았구나'라며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감동이 있었다."
#"가장 힘든 건 교권이 무너지는 현실"
"요즘 모든 학교에서 겪는 사례들처럼 교권이 무너지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서수용 김천예술고 전 교장은 동료 교사가 겪었던 사례를 털어놨다. 보통 예고에선 하나의 연습실을 두고 여러 명의 학생이 시간마다 나눠 사용한다. 그래서 개인 악기와 소지품 등을 연습실에 두지 못하는 규정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한 교사가 학생이 연습실에 두고 간 관악기를 치우던 중 미세한 흠집이 생기면서 불거졌다.
충분히 부분 수리가 가능했지만, 당시 학생의 학부모는 학생의 오래된 중고 악기를 똑같은 모델의 새 악기 교체를 요구했다. 교사가 이를 거부하고 중고 악기 가격만 변상해 주겠다고 하자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그 교사는 학부모의 요구대로 새 악기로 교체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는 교사에게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과 행동까지 모두 들춰내며 교사를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비애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나 자신도 호중이가 뜨고 난 다음에도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교육청에 고발이나 민원이 들어가 애를 먹은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교장이 되어서도 조카보다 한참 어린 학부모에게 '학교에서 등록금 받아서 뭐 하냐며 코로나로 자가 격리된 자기 딸에게 도시락 배달을 왜 안 해 주냐'라고 소리를 지르며 막말에 가까운 항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현재는 교사 권위가 상실된 시대"
스승 서수용은 현 교육계를 '교사에게 책임만 있고 권위는 상실된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일부 극소수 학부모의 이기심을 꼽았다.
과거 국민의 학력이 크게 높지 않았던 시대의 교사는 실력과 인품 등 모든 면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학부모 대부분이 고등 또는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서 학력은 높아졌지만, 과거처럼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교사보다 학력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부모일 경우 교사를 이른바 '종 부리듯' 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절대적이다. 지금 교사에게나 친구들에게 폭력을 쓰는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들이 서로 반성과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거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들이 과연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올바른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특히 가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내 자식만은 그렇지 않고 앞으로 잘 커가리라는 헛된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학부모 인내심 필요
현재 가수 김호중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교사에 대한 어머니의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중이에게 문제가 생겨서 어머니에게 연락드렸더니 호중이 어머니 말씀이 '저는 선생님을 믿고 100%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 선생님께 맡겼으니, 선생님이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거저 뒤에서 후원만 하겠습니다'였다. 이런다고 제자를 죽일 선생이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의 이 믿음의 말에 내가 호중이를 온전히 맡아 교육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그는 현 교육계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일부 학부모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조언했다.
"열매는 씨를 뿌린 대로 거둔다. 사람은 절대 금방 변하지 않는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학부모도 감당 못 하는 학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기다려 주면 좋겠다. 대학에 가면 누가 학생에게 일일이 간섭하고 신경을 써 교육하겠는가? 현대 한국의 교육에서는 학교와 교사나 학생이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비단 학부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자녀들마저 교사를 비난하며 깎아내릴 정도로 공교육의 권위는 무너진 상태다. 교사들을 향한 공격 무기는 대단히 전략적이다. 교사를 지적하는 투서는 학교장, 교육지원청, 도 교육청, 경찰청, 청와대 국민 신문고까지 향한다. 이를 포착한 언론 역시 교사와 학교를 향해 집요한 공격을 한다.
"시간을 좀 주자. 마치 단순한 접촉 사고에 무슨 큰 정면충돌 사고나 일어난 듯이 한다. 상대방의 경미한 약점을 잡아 뒷목 잡고 입원하며 보험비 타내듯이 교사의 사소한 실수를 마치 자기 아이의 영혼이 죽을 듯한 일을 당한 것처럼 과장해 선동하고 민원 넣고 고소하는 일은 교육계에서는 이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민원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하는 학교 측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학교 관리자들도 민원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원만하게 합의하거나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고만 한다. 그래도 문제가 커지면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이런데도 사회는 요즘 참교육자들이 없다고 한탄하며 비난한다. 이제 학교가 스스로 학생을 소신껏 바르게 키울 수 있는 시간을 좀 줬으면 한다."
#교육자로서의 철학은 "감동과 기다림"
"호구지책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엔) 딱히 교육철학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호중이를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게 됐고, 그 과정에서 '감동과 기다림'이라는 교육자로서의 철학을 느꼈다."
사실 그의 꿈은 교수 또는 연주가였다. 하지만 스스로의 실력과 재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절망감을 맛보게 된다. 그는 당시 김천예고 교장이었던 '이신화' 박사의 도움으로 김천예고에 성악과 감독이자 계약직 교사로 교육계에 입문했다. 그런 그에게 김호중과의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감동과 기다림'을 배우게 된 것.
"교사는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나가서 세상을 뜻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감동과 동기를 유발해 줘야 한다. 그리고 또 교사는 그것을 성취하기까지 학생에 대한 믿음의 지지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의 삶의 여정과 교육철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회고록 '고맙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퇴임 후 집필한 책이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면도 있지만 '왜 나만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갈까?'라며 힘들어하는 분들께 따뜻한 커피 한잔을 대접하는 여유와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은퇴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예술 분야의 관리직에서 일반인들과 전문예술가들이 서로 예술을 향유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도전해 보고 싶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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