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 된 것 같다” 호소…사회 시스템 개선해 부정적 인식 해소해야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건을 일으킨 최원종(22)은 경찰 체포 후 “나를 해치려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해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 “피해자 중에 스토킹 집단 조직원이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최원종은 2015년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2020년까지 치료를 받았지만 3년 전 치료를 스스로 중단했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9년 4월 경남 진주 방화·흉기난동 사건의 가해자인 안인득은 조현병으로 수십 차례 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정신의학계에 따르면 조현성 인격장애, 조현병 등 일부 정신질환은 제때 치료를 받지 않을 시 타인을 해칠 수 있는 공격성이 드러난다. 환상, 망상, 환청 등의 증상 때문이다.
정신질환 환자의 범행이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힌다. 실제 최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포털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정신병도 범죄다’(mist****) ‘정신병자들은 제3자의 동의하에 간호사들이 몽둥이 들고 XX 패서 잡아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ghks****) ‘정신병자들은 살려놓으면 세상이 도움이 안 됨’(lane****) 등의 반응이 많았다. 지난 5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서 발표한 정신건강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4%였다.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6%, ‘받아들일 수 없다’는 43.8%로 파악됐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치료 받으러 가는 것조차 두렵다고 하소연한다. 조현병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는 50대 여성 김 아무개 씨는 “정신질환 환자가 일으킨 중범죄 사건이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면서 어느 곳에도, 심지어 고등학교 동창들에게도 ‘정신질환 때문에 병원 치료 받는다’고 이야기하지 못한다”며 “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할까봐 두렵다”고 토로했다. 조현병 환자인 40대 남성 박 아무개 씨도 “병을 낫고 싶어 병원 다니고 취미생활을 하며 (회복에) 노력 중인데 정신질환 환자의 범행이 발생할 때마다 괜히 나도 범죄자로 보일까봐 걱정되고 (치료 과정에서) 힘이 빠질 때가 있다”고 호소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면 ‘왜 그 범죄가 발생했는가’보다 ‘어떤 분류의 사람이 범죄자인가’에 시선이 쏠려 있다”면서 “무직인 20대 남성이 범죄를 저지르면 무직, 20대, 남성이 범죄자로 분류된다. ‘무직인 남성, 20대 남성은 위험해’라는 낙인이 찍힌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질환 환자도 마찬가지”라며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가 범행을 저지르면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것’에 시선이 쏠려 모든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혐오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신의학계와 정신질환 관련 단체 등에선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 애초 정신질환 환자의 범행을 막아 정신질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자연스레 해소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시스템 개선 방안 중 하나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폐지와 ‘사법입원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환자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입원시키는 것을 말한다. 세계에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영국, 호주 등은 사법입원제를 운영 중이다. 정신질환자의 입원치료 여부를 정신건강심판원이라는 법원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은 지난 6일 성명서를 내고 “핵가족 혹은 1인 가구 중심 사회로 변화한 상황에 중증정신질환의 부담은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 여부를 판단할 판사 수도 늘어야 한다”며 “보건의료 계통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정신질환 환자 관련한 제도에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국민 대상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정신질환으로 확진된 경우 의료비의 9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가에서 진행하는 정신건강검진은 10년에 한 번씩 20세 이상을 대상으로 우울증 검사를 하는 게 전부다.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전 국민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시행한다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며 “검진 후 당사자에게 ‘우울증입니다’ ‘조현병 초기입니다’라고 통보만 하면 정신질환 환자라고 낙인 찍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검진에서 정신질환 판정을 받으면 당사자가 속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치권에서도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국가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신질환 관련 범죄가 얼마나 흉포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기보다 왜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는지 짚어야 한다”며 “정신질환 환자 조기 발견, 조기 치료, 입원치료, 재활과 사회 복귀까지 일련의 과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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