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거론 의원들 “사실무근” 강력 반발…이재명이 띄운 혁신위도 진척 없이 퇴장 ‘책임론’ 고개
#돈봉투 수수 의혹 명단 공개
8월 4일 정당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윤관석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각각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소속 검사 8명을 4명씩 나눠 심사에 참석했다. 검찰은 윤 의원과 이 의원에 대해 각각 180장, 160장 분량의 PPT를 통해 구속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돈봉투 수수 의혹이 있는 민주당 현역 의원 19명을 법정에서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윤관석 의원은 “증거인멸 염려”를 이유로 구속된 반면, 이성만 의원 영장은 기각됐다. 윤 의원은 송영길 전 대표 당선을 위해 민주당 의원 20명에게 현금 300만 원씩 총 6000만 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 의원은 2021년 3월 송영길 선거 캠프 관계자들에게 현금 1100만 원을 제공하고, 2021년 4월 윤 의원으로부터 300만 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범죄 관련자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돈봉투 수수 의혹 의원 명단 등 범죄 사실을 모두 공개한다”며 “판사가 모든 기록을 검토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제3자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검찰, 변호사, 판사 이외에 제3자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8월 5일 조선일보가 검찰에서 특정한 의원 10명의 실명을 보도하면서 파장이 불거졌다. 윤관석 의원이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2021년 4월 28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송영길 후보 지지 국회의원 모임’에서 300만 원이 담긴 돈 봉투를 10명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보도된 명단에 포함된 이들은 김영호 민병덕 박성준 박영순 백혜련 이성만 임종성 전용기 허종식 황운하 의원이다.
나머지 9명은 2021년 4월 29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 등에서 윤관석 의원한테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검찰에서 파악했다고 알려졌다. 8월 7일 문화일보는 5명의 실명을 추가로 보도했다. 김회재 김승남 김윤덕 이용빈 민주당 의원과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다. 8월 10일까지 검찰에서 특정한 현역 의원 19명 중 15명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앞서 검찰은 송영길 전 대표 일정 관리 담당자, 국회사무처 등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 한 바 있다. 이때 확보한 자료 등을 토대로 의원들을 특정했다고 전해진다. ‘송영길 후보 지지 국회의원 모임’ 관련 참석자·불참자 명단을 정리한 엑셀 파일도 확보했다고 한다.
#민주당 의원들, 강력 반발
실명이 거론된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돈봉투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검찰과 언론의 횡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된 회의장에서 보좌진들이 배석해 있는데 돈 봉투를 주고받았다는 건 소설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김윤덕 의원의 경우 당시 전당대회 때 다른 캠프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송영길 캠프로부터 돈봉투를 왜 받냐며 항변했다. 김승남 의원은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으로 임명된 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회재 김승남 박성준 박영순 백혜련 황운하 의원 등은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들은 전당대회 돈봉투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소속 검사, 신원 미상의 검찰청 관계자 등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고발했다고 입장문을 배포했다.
김회재 박성준 박영순 황운하 의원 등은 관련 기사를 작성한 일부 언론사와 소속 기자들에 대해서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백혜련 의원은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청구를 했다고 전했다.
8월 10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 법적 조치에 대해 “본인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사팀이) 법정 밖에서 수수 의혹 국회의원 명단을 공개하거나 언론기관에 제공한 사실이 없음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수사팀을 고발하는 것은 방어권 행사를 넘어선 수사팀 흠집 내기”라고 말했다.
#이재명 책임론으로 번지나
윤관석 의원 구속으로 탄력을 받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윤 의원 구속 기간 20일 동안 돈봉투 수수 의혹을 최종 확인하고, 송영길 전 대표 지시 및 관여 여부를 집중해서 들여다볼 계획이다. 법조계에선 돈봉투 수수자로 지목된 의원들에 대해서 소환조사 등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 검찰은 소환조사를 연일 이어가는 중이다. 8월 9일 반부패수사2부는 송 전 대표의 외곽 후원조직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연구소’에 불법 후원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 아무개 전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한다. 8월 11일에는 송영길 캠프에 1000만 원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는 전 인천시 공무원 조 아무개 씨를 조사했다고 전해진다.
앞서의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윤관석 의원 구속 기간 중에는 돈봉투 수수 의혹이 있는 현역 의원들을 불러서 조사하기 쉽지 않다. 구속 기간이 끝나면 기소해야 하니까 윤 의원 범죄 사실에 집중하며 보강 수사를 진행할 것이다. 기소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환 조사할 것”이라며 “윤 의원 기소 이후엔 돈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현역 의원들이 소명되는지 확인한 뒤 별도로 소환 수사를 하거나 압수수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 책임론으로까지 번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4월 민주당은 돈봉투 의혹에 대해 자체적으로 진상 규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월 20일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도 돈봉투 사건 진상조사를 첫 과제로 선정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을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검찰에서 윤관석 의원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고, 혁신위는 논란만 남긴 채 조기 퇴진했다.
8월 7일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돈봉투 수수 의혹) 이 문제를 당에서 한번은 거를 수 있었던 사안인데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넘어갔다는 게 안타깝다”며 “자체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소명을 들었어야 한다. 이것 역시 리더십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비명계에선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에 둘러싸이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지적한다. 8월 17일 이 대표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검찰 소환 조사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올해만 총 4번의 검찰 조사를 받게 되는 셈이다. 앞서 그는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1월 10일)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1월 28일, 2월 10일)으로 세 차례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비명계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전당대회를 나올 때부터 이런 모습이 뻔히 예상됐고, 실제로 전개됐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국민 신임을 잃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대표가 없었다면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거래 논란 등을 단호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도 당에 부담만 주면서 내외부에서 안 좋은 평가만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당 분란을 조장하는 혁신안을 던지고선 떠났다. 문제만 더욱 악화됐다. 앞으로 내년 총선 등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대표가 총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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