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정보유출 사건 후 개설된 인터넷 카페들. 조만간 동시다발적인 집단소송전이 예상되고 있다. |
경찰이 지난 7월 29일, KT 전산망을 해킹해 5개월간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내고 이를 불법 텔레마케팅(TM)사업에 활용한 혐의로 최 아무개 씨(42) 등 2명을 구속했다. 최 씨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개인정보를 구입한 또 다른 TM사업자 우 아무개 씨(36) 등 7명은 불구속 처리했다.
이번에 유출된 개인정보는 무려 870만 건. 이동통신 가입자 정보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더군다나 유출된 정보가 가입자 이름과 주민번호, 휴대전화번호는 물론, 기기모델명, 요금제, 합계액, 기기변경일 등 불법TM 영업에 용이한 세부 정보까지 포함돼 있다.
KT는 사건 직후 가입자들에게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보상 여부에 대해서는 범인을 즉각 체포했고 유출된 정보도 전량 회수됐다는 식으로 책임을 발뺌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더군다나 정보사고 특성상 한번 유출된 정보는 계속 거래되고 유통되기 때문에 KT의 전량 회수 해명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KT의 밋밋한 대응에 뿔난 피해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찰 발표 직후부터 피해자들의 카페가 우후죽순 개설됐다. 현재까지 개설된 피해자들의 크고 작은 카페만 수십 개이고 현재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사건 초기 개설된 일부 카페는 벌써 가입자 2만 명을 훌쩍 넘겼다.
피해자들의 집단화 움직임은 피해보상을 전제로 한 ‘집단소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정보유출 사고가 터지면서 나온 하나의 현상이다. 더군다나 지난해에는 네이트 정보유출 집단소송 1심에서 ‘피해자 1인당 100만 원 보상 판결’이라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KT 피해자들의 카페가 수십 개를 훌쩍 넘기면서 조만간 동시다발적인 집단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서초동 변호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동시다발적 집단소송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은 이들에게 있어서도 아주 매력적인 기회다. 벌써부터 수많은 변호사들이 피해자들과 접촉하며 소송을 타진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한 피해자 모임 카페 매니저 김 아무개 씨는 “카페 개설 이후 벌써 법무법인 4곳에서 제안이 왔다. 그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을 두고 소송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심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몇몇 유명 변호사들은 벌써부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네이트 정보유출 집단소송에서 승소를 이끈 유능종 변호사는 사건 발표 직후 직접 피해자 카페를 개설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승소 경력 덕에 많은 피해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이밖에도 법무법인 평강의 최득신 변호사는 ‘100원 소송’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최 변호사는 집단소송을 원하는 피해자들에게 1인당 수임료 100원(인지료 제외)씩만 받겠다는 방침이다. 그가 개설한 카페에는 2만 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가입러시를 하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최 변호사는 “정보유출사고는 KT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통신사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소송을 기회로 정보유출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또 수임료 100원 프로젝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많이 모여야 KT도 부담을 느끼지 않겠나. 집단소송에서 참여자가 적으면 법적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의 집단소송 전망은 어떠할까. 전문가들은 거대기업 KT를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에 대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정보유출 관련 소송 선례에서 네이트 사례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보상판결이 난 적은 없다.
기자와 만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보유출 사고의 관건은 역시 해당 기업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문제다. 상당수 기업은 내부 전산망에 관한 자료를 요청해도 ‘기밀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곤 한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또한 피해자들의 분산화 현상이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집단소송 특성상 피해자들의 응집력이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우후죽순 들어선 KT 소송카페들은 응집은커녕 제각기 별도로 변호사들과 접촉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각기 소송을 주도하고 선점하기 위해 상호비방과 음해를 통해 와해시키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집단소송을 위한 피해자들의 ‘응집’자체가 소송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김형석 변호사 |
▲KT과실 여부
기본적으로 KT가 보관 중이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상 과실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KT 측은 이에 대해 범죄에 이용된 높은 해킹기술 수준을 이유로 들어 과실이 없다고 맞설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KT가 지난 과거에도 수차례 비슷한 사고를 내왔다는 점’ ‘지난 12년 동안 노후 시스템을 사용한 점(사건 직전 교체)’ 등 KT의 문제점에 대해 강조해야 할 것이다.
▲금전적 피해입증 여부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이번 소송은 개인정보유출 손배소송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 청구 방식이기 때문에 금전적 피해 입증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방통위 조사결과 변수
KT의 감시기관 방통위의 조사결과가 승소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피감기관 KT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감독책임으로 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KT와 가까울 것이다. 소비자피해구제에 대해 소극적인 방통위의 태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차 유출 피해 발생 여부
만약 유출정보 전량을 회수했다는 KT의 주장과 달리 또 다른 TM업체로 정보가 유통된 사실이 드러나 추가피해가 발생한다면 KT의 불법성 정도가 중해질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피해의 범위나 그 위험성이 심각해지고 위자료 금액 산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