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판련 출신 보수 엘리트, 할 말은 하는 성향도…여소야대 국회 통과 험로 예상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정통 법관으로 분류된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 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6기로 1990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처음 임용됐다. 이후 두 차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역임했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 등을 맡은 바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법원의 보수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통 법관 타입인 이균용 후보자가 김명수 대법원장 지우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판 장기화·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을 손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변수다. 법률상 대법원장 임명에는 인사청문회는 필수고, 국회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이균용 후보자 앞에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대표적인 보수 엘리트 법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이균용 후보자는, 검사와 판사로 커리어가 나뉘었지만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다만, 검찰총장 지명 이후엔 특별한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2022년 현 정부 첫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윤 대통령은 오석준 대법관을 후보자로 낙점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균용 후보자 낙점 이유에 대해 “그동안 재판 경험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며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서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원장으로서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 초상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판결로 사회적 약자 보호와 인권 신장에 앞장서온 신망 있는 법관이고 주요 법원 기관장을 거쳐 행정능력이 검증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엘리트 법관으로 분류된다. 민사판례연구회(민판련) 회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민판련은 우리법연구회와 대척점에 있는 ‘보수 엘리트 단체’로 국내 민법학의 대가 서울대 곽윤직 교수의 제자 10여 명이 1977년에 만든 학계 모임이다. 처음에는 학계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회원들이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로 임용되면서 법원 안에서 ‘이너서클’ 조직으로 변화했다.
엘리트들에게만 가입 기회가 부여된 곳이기도 했다. 초창기부터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2~3명만 뽑았는데 판사 임용성적이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소수만 추천 형식으로 가입이 가능했다. 법원 내에선 민판련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비밀 엘리트 조직으로 불렸다. 특히 명문가 집안 자제들이 다수 포진하면서, 집안까지 좋아야 가입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법연수원 2기), 이용훈 전 대법원장(고등고시 15회) 등 다수의 대법원장들이 민판련 출신이었다. 이번에 함께 대법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된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민판련 출신이다.
#‘보수’로만 봐서는 안 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균용 후보자의 주요 사건 처리를 볼 때 ‘보수’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선거비용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형사보상금을 지급토록 한 판단 △백남기 사망사건으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판단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판단 △사법농단 수사기밀을 누설한 판사들에게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한 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특정 성향’에 얽매이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이균용 후보자를 잘 아는 판사는 “주로 민사와 행정 재판을 주로 해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형사 사건에 많이 이름이 등장한 판사는 아니”라면서도 “민사에 있으면서도 연예인의 초상권 등 당시 시대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법리적 해석’을 많이 던졌고 대부분 받아들여졌던 실력 있는 판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배우 신은경 씨와 병원의 민사 분쟁에서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초상사용권)을 인정하는 실무상 기준을 제시했다. 투레트증후군(틱장애)을 앓는 장애인의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행정처분이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를 취소한 판결은 2016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기도 했다.
‘할 말은 하는 편’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앞서의 판사는 “보통 판사들이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말을 하거나 참는 편이라면 이균용 후보자는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설명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균용 후보자는 대전고등법원장 시절 ‘화천대유 사태’에 연루된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해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국민께서 (권 전 대법관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걸로 볼 여지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 대해 거짓 해명을 해 사법부 신뢰를 훼손했다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의 탄핵 추진을 이유로 임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녹취 파일을 통해 드러난 것에 대해 ‘할 말은 한 셈’이다.
이 같은 발언들 때문에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거꾸로 윤석열 대통령은 ‘믿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균용 후보자를 낙점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대법원장 후보자 관련 추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앞선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추천 명단에 왜 이균용이 없냐고 뭐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법원 내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신’ 있는 이균용 후보자를 오래 전부터 눈여겨 봐온 것 아니겠냐”고 평가했다.
#국회 문턱 넘을 수 있을까
다만 현직 대법관이 아닌 점은 다소 부담스럽다. 전·현직 대법관이 아닌 인사가 대법원장으로 바로 임명된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나름 파격인 셈이다.
대법원장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뒤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오석준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 차례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은 적이 있는 오 대법관에 비해 이균용 후보자는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면 속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통 법관을 낙점한 것은 적절한 판단 같지만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공세가 상당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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