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등장 후 재판 지지부진, 검찰 백 씨 수사 총력전…“이 전지사 부부, 각자의 이해관계 따라 선택한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건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쌍방울이 북한으로 보낸 돈과 경기도 간 연관성 여부다. 검찰에서도 이 부분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에서 대북사업 전반을 통솔했던 ‘키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입이 주목받아 온 이유이기도 하다.
쌍방울 대북송금 재판은 7월 초 요동쳤다. 이 전 부지사가 검찰 진술 과정에서 그간 유지해왔던 입장을 번복한 까닭이다. 줄곧 쌍방울 대북송금과 경기도 사이 연관성을 부인해오던 이 전 부지사였다. 7월 초 그는 쌍방울이 ‘이재명 방북비’ 명목으로 북한 측에 돈을 대납한 사실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구두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전 부지사가 본인의 진술을 뒤집은 셈이다.
이 전 부지사가 진술을 번복한 뒤 그의 아내 백 아무개 씨가 등장했다. 7월 18일 민주당에 A4용지 두 장 분량 탄원서를 제출한 백 씨는 7월 25일 이 전 부지사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날 변호인 없이 법정에 출석한 이 전 부지사는 “변호사 해임은 제 의사가 아니”라면서 “판사님께 죄송하다. (기존 변론을 맡던) 해광 변호인단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백 씨는 “자신이 얼마나 검찰에 회유되고 있는지 잘 모른다”면서 “답답하다. 정신 차리라”고 일갈했다. 백 씨는 “만약 당신이 그런 판단을 한다면 가족으로 해줄 수 있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법정에서 피고인 의사와 무관하게 피고인 가족이 변호사 교체 의사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이 전 부지사 변론을 담당했던 법무법인 해광은 ‘법정 부부싸움’ 이후 사실상 해임됐다. 이 전 부지사는 법무법인 해광 측에 계속해서 변론을 맡기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해광은 결국 이 전 부지사 재판에서 빠지게 됐다. 백 씨는 검찰과 기존 변호인단 간 플리바게닝(검찰이 피의자와의 협상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는 대신, 형량을 조정해주는 제도) 의혹을 제기하며 변호인단 교체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 전 부지사는 새로운 변호사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새 변호사 선임 전까지 공백기간엔 국선변호인이 이 전 부지사 변론을 임시로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검찰이 이 대표를 상대로 8월경 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다. 이른바 ‘8월 영장설’이다. 그 바탕엔 이 전 부지사의 진술 번복이 자리 잡고 있다. 법정에서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대북송금과 경기도 사이 연관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그 다음으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백 씨 등장으로 재판 판세가 달라졌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였던 8월은 큰 이벤트 없이 지나갔다. 이 전 부지사는 9월 1일 기준 변호사를 여전히 선임하지 않고 있다. 8월 29일 이 전 부지사는 수원지법 형사 11부에서 열린 제44차 공판기일에 참석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에게 변호사 선임 관련 진행상황을 물었다. 이 전 부지사는 “현재까지는 없고 (선임을)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 전 부지사는 “다음주까지는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많으면 2명 정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차일피일 미뤄지는 변호인 선임 과정이 재판을 고의로 연기하는 취지로 비춰질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공판 지연이 거의 한 달 이상 있었다”면서 “검찰로서는 공판 지연 우려가 많이 된다”고 했다. 아울러 검찰은 “국선변호인을 추가로 보강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또 현재 일주일에 1번 있는 재판 기일을 지난번처럼 주 2회로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검찰 입장에선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 씨로 인해 스텝이 꼬인 양상이다. 재판 지연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또 검찰 인사에도 나비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북송금 수사팀을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이재명 대표 수사를 일단락한 뒤 정기인사를 단행할 계획이었다. 정기 인사는 이미 2022년 대비 두 달 이상 늦어진 상황이다.
검찰 칼날은 백 씨를 향하고 있다. 백 씨는 ‘경기도 대북사업 공문 유출’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백 씨에게 다섯 차례 넘도록 출석을 요구했지만, 백 씨는 건강상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 씨는 이 전 부지사 측근인 신 아무개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에게 2019년 대북사업 관련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뒤 백 씨가 공공문서를 사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백 씨와 민주당 간 커넥션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3일경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 전 부지사 최측근인 이우일 민주당 용인갑 지역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백 씨와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통화 이후인 7월 18일 백 씨가 민주당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탄원서 작성 과정에서 민주당 ‘친명계 인사’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박찬대 최고위원과 천준호 의원 등에 대해 사법 방해 의혹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을 통보했다.
이 전 부지사 아들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월과 5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던 이 전 부지사 아들은 쌍방울 계열사 연예기획사에서 2020년 10월부터 11개월 동안 일하면서 월급 명목으로 2000만여 원으로 받았다. 하지만 출근 횟수가 14차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검찰은 쌍방울이 이 전 부지사 아들에게 지급한 월급이 사실상 이 전 부지사를 보고 준 불법자금으로 본다. 이 전 부지사 아들 역시 입건돼 피의자 신분이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화영 전 부지사 부부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이라면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라고 했다.
죄수의 딜레마는 심리학 용어로 두 사람의 협력적 선택이 둘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에 치중한 선택으로 둘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을 뜻한다. 채 교수는 “이 전 부지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재명 대표 사이 관계를 폭로해서 자신의 형을 줄이려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내 백 씨는 (이 전 부지사에게) 대의를 위해 희생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결국 감옥 안에 있는 이화영 전 부지사와 감옥 밖에 있는 아내 백 씨의 입장 차이가 분명한 것”이라면서 “이 전 부지사 부부 간 죄수의 딜레마로부터 창출되는 제3의 엉뚱한 결과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키포인트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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