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가 익히 알고 있는 국민 가곡 ‘그네’(김말봉 시, 금수현 곡)의 노랫말 중 일부다. 그런데 그네를 타는 어느 처자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 ‘금박물린 저 댕기’란 구절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우리 전통 복식에는 화려하고 품격 있는 금박이 많이 쓰여 전문 장인을 따로 두었는데, 이처럼 얇은 금박을 이용해 직물 위에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기술과 그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일컬어 ‘금박장’(金箔匠)이라 한다.
삼국시대 왕릉이나 분묘에서는 금박을 입힌 유물이 발견되곤 하는데, 이를 통해 금박 장식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당시 금박 기술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일례로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두침(머리 부부의 받침대)과 족좌(발받침 장신구)에는 테두리를 금박으로 두르고 육각형 문양을 금박으로 꾸민 장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금박장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였다. 염색 일을 맡아보던 관서인 도염서에 금박장을 두어 금박 관련 일을 관장하게 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금박 장식은 주로 왕실에서 사용됐으며,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쓸 수 있는 문양도 엄격히 제한됐다. 당시 직물에는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글자나 무늬가 많이 사용됐는데 금박 문양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부귀, 장수, 공명, 평안 등에 대한 기원을 문양에 담아 다양한 형태로 금박 장식이 만들어졌다. 그중 봉황문은 용과 함께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으로 사용됐으며, 복(福)·수(壽)·희(喜)·만(卍) 등 길상 문자를 도안으로 사용하는 문자문과 난초 모란 국화 연꽃 등을 묘사한 화문도 유행했다.

금박장 기술은 사용자에 따라 옷에 어울리는 문양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문양을 조각하는 목공예 기술, 주 재료인 아교와 금박의 물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판에 문양을 제대로 새기려면 십 년 이상의 숙련된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뭇결의 방향과 성질을 살피고 조각칼의 힘을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문양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인이 꼬박 매달려도 문양 하나를 완성하는 데 열흘 이상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기능보유자인 김기호 금박장은 조선 철종 때 고조부 김완형을 시작으로 5대에 걸쳐 왕실 장인 가문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완성도 높은 금박 작품으로 우리 전통기술을 세상에 알렸던 고 김덕환 선생이 그의 선친이자 전임 보유자다. 김기호 금박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산업용 로봇 설계를 맡았던 엔지니어였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과감히 전직해 사반세기 동안 전통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부인 박수영 씨 또한 금박장 이수자로서 부부가 빛나는 금박 인생을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금박 기술을 현대 공예에 접목시키고 조형예술로 확장하는 등 새로운 전통기술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자료협조=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