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서 이기자’는 신원식 유인촌 김행 발탁 두고 ‘인재풀 부족’ 지적 나와…‘MB 없는 MB 내각’ 여권에서도 불만
후보자 면면을 보면 ‘싸이(싸워서 이기자) 개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들을 향해 “여야 스펙트럼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되지 않는다. 전사가 돼 싸워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장선에서 ‘샤이(Shy)’가 아니라 ‘싸이’를 개각에 반영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이명박(MB) 정부 때 장관을 한 유인촌 후보자가 또다시 같은 자리에 가는 것을 두고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MB만 빠진 MB 정부’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면서 개각 효과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고질적 인재풀 부족 탓이라는 반응과 함께 자칫 이런 상황이 내년 총선 인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사실상 경질, ‘싸이’ 모드로
대통령실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개각은 문책성이 다분히 내포돼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렁하다는 평가가 내려진 장관들을 교체, ‘싸이’에 적합한 인물들로 채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8월 22일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방문규 현 국무조정실장을 지명했는데 이 인선 역시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밝혀내고 이에 강도 높은 대응을 하지 못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창양 장관에 대한 경질로 읽혔다.
9월 13일 개각에서도 싸이 모드가 눈으로 확인됐다. 우선 국방부.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과정에서 이종섭 장관이 야당 공세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방 장관 탄핵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장관 장기 공백 사태가 우려됨에 따라 교체가 이뤄졌다.
대통령실은 “이 국방장관은 절대 경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신원식 국방장관 후보자가 이 장관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를 곧이곧대로 보기 힘들다. 신 후보자는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선제적으로 주장하는 등 외교·안보 이슈를 주도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이념 바로 세우기와도 신 후보자는 연결돼있다. 신 후보자는 2016년 전역할 때 전역사에서 자신을 ‘북진 통일자’라고 표현했을 만큼 대북 강경파로 불린다. 신 후보자는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영공을 침범했을 때 “정부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9·19 군사합의와 대북전단금지법을 무효화하되 그 이전에라도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심리전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개각 대상이 된 문체부도 박보균 장관에 대한 여권 안팎의 볼멘소리가 적지 않았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체부 역시 문재인 정부 때의 단체 지원 예산 등에 대한 개혁 작업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으로서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유 후보자가 문체부로 들어가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부처를 장악해 개혁 작업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직을 3년 가까이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당시 야권과 거친 설전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교체, 김행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분명한 경질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부실 운영이 워낙 큰 파장을 불러왔던 만큼 김현숙 장관에게 직접적 책임을 묻는 문책성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김행 후보자는 여권에서 실세로 통하고 있어 한때 존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여가부 위상이 새롭게 올라갈 전망이다.
김행 후보자도 ‘싸이’ 대열에 적극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정진석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대야 공세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여러 방송 출연 과정에서도 투사 기질을 드러냈다. 이를 윤 대통령이 높게 평가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싸이’ 개각에 대해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개각 직후인 9월 13일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전사가 되라고 했다더니 ‘전사 내각’을 만들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권 수석대변인은 신원식 후보자에 대해서는 “몰염치한 개각”이라고 했고, 유인촌 후보자는 “후안무치한 재탕 후보”, 김행 후보자에 대해서는 “김건희 여사와 20년 지기로 사실상 여성가족 정책을 김 여사에게 넘기겠다는 말”이라고 몰아붙였다.
#MB만 빠진 MB 내각
유인촌 후보자가 또 등장하자 여권 일각에서조차 “사람이 이리도 없느냐. 이러니 MB 시즌 2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가뜩이나 MB 정부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에 넘쳐나는데 문체부 장관에 유 후보자를 등용, 새 정부의 신선미를 떨어뜨리고 윤석열 정부에 퇴행적 이미지를 씌우는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만 빠져있는 MB 내각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지금과 같은 직책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MB 때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MB 정부 주미대사였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명박 청와대 통일비서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청와대 안보정책담당관을 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청와대 환경비서관이었고,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등을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명박 청와대의 대외전략기획관이었다.
윤 대통령은 평소 이명박 정부 때의 검찰 생활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해왔다. 이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이런 인선을 낳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 때인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어느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했느냐”는 질의를 받자 “MB 정부 때 중수부 과장으로, 특수부장으로 3년간 특별수사를 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어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 출신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기재부에서 오래 근무한 김 실장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뿐 아니라 통계청장, 문체부 2차관 등을 역임했다. 윤 대통령 정치 입문 과정에서 몇몇 MB맨들이 도움을 준 게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도 뒤를 잇는다.
이처럼 여러 해석이 쏟아지지만 정가에선 인재풀 부족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윤 대통령이 검찰에서만 생활하다 곧장 정치로 들어오다 보니 믿고 맡길 만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인재풀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재탕, 물레방아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개각이 이뤄지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일면서 개각 효과를 키우는데 너무나 낯익은 인물에다 다소 무리하다 싶은 인선까지 이뤄지다 보니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개각도 정치 행위이자 정치 메시지인데 파급력이 너무 낮으면 총선을 치러야 하는 여권 전체 지지율에도 나쁜 영향이 간다”고 털어놨다.
#인재난, 총선에도 영향?
여권에서도 이번 개각에 대해 쓴소리가 적잖은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런 비판 여론을 공론화하는 데 깃발을 들었다. 홍 시장은 직접 윤 대통령 개각에 태클을 걸었다. 그는 개각 직전인 9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MB 대통령 시절 임기 말까지 지킨 인사원칙 중 하나가 국방부, 법무부 장관에는 절대 정당 출신은 임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도의 정치적 중립을 요하는 두 자리에 정당 출신이 가면 반대정당으로부터 공격받아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국방장관 후보로 신원식 의원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래선 안 된다”는 경고를 날린 것으로 해석됐다. 홍 시장은 “군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면서 “좌파들처럼 군과 검찰도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원식 후보자처럼 현역 국회의원이 국방장관에 지명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초대 천용택 국방장관 이후 처음이다. 야권은 물론 홍 시장처럼 여권 일각에서도 군의 특수성을 들어 신 후보자 기용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등 우려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번 개각에서도 적잖은 잡음이 나올 만큼 용산의 인재풀이 가뜩이나 좁은데 ‘싸이’ 내각까지 강조하다 보니 참신한 새 인물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한다.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용산의 목소리가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렇게 되면 총선의 인물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는 권력의 추가 대통령실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과 맞닿는다. 여당이 용산의 부족한 인력풀을 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작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좁은 인재풀이 총선 인재 확보난으로 전이되는 것이 여권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실제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틈만 나면 내년 총선 전략으로 인물을 꼽아왔다. 그는 8월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수도권 선거 전략은 뭐니 뭐니 해도 인물일 것”이라며 “수도권은 인물 선호도가 기본적으로 높아서 괜찮게 일할 사람을 골라주면 지지율이 확실히 나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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