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신 빛나, 경찰 초등 대처 아쉬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국회 앞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인파들은 김 씨를 피해 주변 가게로 황급히 뛰어들었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큰 대로로 달려갔다. 김 씨는 칼을 든 채 렉싱턴 호텔 맞은편에 있는 한 고급 빵집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에 있던 시민들은 문 앞에 장애물 등을 설치해 이를 막았고, 일부는 빵집 안의 기물들을 김 씨에게 던졌다.
그러자 김 씨는 피를 흘리며 누워있던 여성에게 다가가 다시 칼을 휘둘렀다. 이어 김 씨는 렉싱턴 호텔 앞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여성에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112에 신고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그 여성은 황급히 달아났고, 김 씨는 근처에 있던 행인 두 명을 잇달아 칼로 찔렀다. 불과 10여 분 만에 김 씨는 여의도 대로를 오가며 남녀 시민 네 명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결국 김 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는데 이 과정에서 칼을 자신의 목에 들이대며 자해 소동을 벌였다.
이처럼 끔찍했던 현장에서 그나마 빛이 났던 것은 많은 시민들이 흉기를 들고 있는 김 씨를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장면이다. 한 중년 남성은 뛰어가고 있던 김 씨를 향해 발을 휘둘러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또 경찰이 출동하기 전 이성을 잃은 김 씨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것도 길을 가던 몇몇 남자 시민들이었다. 기자가 밥을 먹고 있던 식당 안에서도 신고를 위해 112에 전화를 거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반면 경찰이 조금만 더 일찍 출동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이 주변은 평소 경찰 인력이 상주해 있는 곳이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 당사가 있기 때문. 또 사건이 벌어진 렉싱턴 호텔 맞은편엔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위원장의 캠프가 있어 경호 인력도 적지 않다. 실제로 당시 많은 시민들은 “바로 저 앞에 경찰들이 있는데 왜 빨리 오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박근혜 캠프 경호 인력을 비롯한 지구대 경찰들은 시민들이 김 씨를 저지하며 대치 상태에 있을 때 도착했다.
김 씨는 검거 후 경찰 조사에서 “회사 합병 과정에서 내가 잘렸다. 자살을 생각했지만 혼자 죽기는 억울해 나를 음해하고 괴롭혔던 두 사람을 해치려 했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처음 흉기를 휘둘렀던 피해자들은 모두 김 씨가 다녔던 한 신용평가사 직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이곳에서 채권 추심업무 일을 하다 2년 전 퇴사했다고 한다. 그 후 김 씨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고 지금은 무직상태다.
이번 사건뿐 아니라 최근 공공장소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언론에서나 봤을법한 일들이 국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8월 18일 오후 한 30대 남성이 승객들에게 공업용 커터 칼을 휘둘러 10분 동안 남녀 8명에게 중경상을 입혔고 21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술집에선 만취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범죄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갈등적, 경쟁적이 되고 소통이 부족해지면서 기물파손, 연쇄방화 등 불특정 다수를 노린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치권은 물론 사법당국에서도 이러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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