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과 천신일 세중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지난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지기’ 친구이자 고려대 동문인 천신일 세중 회장의 절도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7월 말 성북동 부촌에 위치한 천 회장 자택에 도둑이 들어 부인의 핸드백에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 2개와 10돈짜리 금목걸이 등 약 9억 원에 달하는 귀중품이 사라진 것이다.
천 회장 측은 절도사건 직후 경찰 신고에서 “알려지지 않도록 은밀히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취재 현장을 나갔던 한 방송 기자는 “당사자들은 ‘도둑이 들지 않았다’고 사건 자체를 부인했고 관할인 성북경찰서조차 ‘소설 쓰지 말라’고 딱 잡아뗐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북경찰서 형사계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진전 사항이 없다. 알려진 것과 달리 주변에 확인할 만한 CCTV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의 수사 협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는데 “다이아몬드의 경우 모양이나 크기 등을 알아야 더 수월하게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피해자들이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여권에서는 천 회장의 절도사건이 또 다른 의혹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56)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47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천 회장은 구속된 지 석 달 만에 건강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후 1년 가까이 삼성서울병원 VIP 병동에 입원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9억이 넘는 금품을 도둑 맞고도 경찰 협조에 소극적인 천 회장의 ‘대범함’ 속에는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초조함’이 깔려있는 것이다.
사실 올해 초부터 천 회장이 입원할 정도의 병세는 아니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바깥 출입도 가능할 정도의 상태이며 회사 경영에도 차질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천신일 회장은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직후인 2011년 10월 자신의 회사이름을 세중나모여행에서 세중으로 바꾸고 올 3월 대표이사로 중임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천 회장이 실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중 총무부와 이사진에 연락을 취했지만 “해당 질문에 관해서는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천 회장 상태에 관해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이 병원의 VIP 병동인 20층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고 가족들과 담당의사가 아니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기자는 지난 8월 초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천 회장의 상태에 관해 물었지만 병원 측은 “환자가 정보 비공개 요청을 한 상태라 말씀드릴 수 없다”며 “그 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천 회장은 서울구치소를 벗어나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범털집합소’로 불리는 서울구치소에는 현재 MB 정부의 실세로 평가받는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과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나란히 수감 중이다. 이 가운데 최 전 위원장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보석을 신청해 눈길을 끌었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 5월 담당 검사도 알지 못한 채 구치소에서 나와 삼성서울병원에서 심혈관 질환 수술을 받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최 전 위원장이 구치소 독방에 수감된 지가 110일이 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버틸 수 없는 한계가 왔다”며 보석 신청 이유를 밝혔다. 최 전 위원장은 법정에서 “저 같은 나이에 건강이 한번 꺾이면 회복이 어려운데 (보석 신청이) 받아 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현재 서초동에서는 최 전 위원장처럼 고령에 심장 수술을 받은 뒤 거동까지 불편하다면 구속집행정지나 보석을 허가해 주는 게 맞지만 여론을 크게 의식하고 있는 분위기다. 최 전 위원장을 풀어줄 경우 생길 후폭풍이 현 정권은 물론 이번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한 법조계 출입 기자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나뉘고 있어 풀려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이나 법무부 쪽에서 여론을 많이 의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최 전 위원장의 증세가 심각한 것은 맞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2010년 국감 자료에 의하면 국내의 평균 보석 허가율은 45% 수준이지만 최 전 위원장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은 그보다 낮은 38% 정도다. 앞서의 기자는 “고령의 수감자들에 관한 보석 심사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또 현재 추세가 보석허가율을 높여야 한다는 쪽”이라고 밝혔다.
반면 참여연대 소속 황 아무개 씨는 “최 전 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정치 활동에서 6억은 큰 액수가 아니다’ ‘청탁 대가를 수표로 받았겠나’는 발언을 하며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석을 신청한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구속 기소가 원칙인 만큼 상태를 잘 파악해 결정해야 한다. 최 전 위원장 같은 대통령 최측근이 보석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고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이번 정권에서 얼마나 몰락했는지 보여주는 반증 아닌가. 인생무상이 따로 없다”고 전했다.
서울구치소 총무과 관계자는 “천신일 회장은 구속집행정지로 나간 사람이라 구치소 관할 밖의 영역이다. 판사나 검사에게 물어보라”는 입장이었다. 또 최 전 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관해서는 “수용자의 정보에 관해서는 일체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