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부활 차단하고 유승민 이준석 계열 배제 계획 가동…인재 영입 여부 최대 변수
#“친박은 없다” 앓던 이 ‘쏙’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출마를 준비하던 친박 인사들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년 설은 총선이 임박해 출마를 생각한다면 이번 추석부터 움직여야 했지만 친박계 정치인들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친박계의 재기 그룹 선두에 설 것으로 보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도만 출마를 위한 ‘액션’을 나타냈다. 그러나 최 전 부총리 역시 “출마를 하겠다”는 구체적 답을 공개적으로 내놓지는 않아 출마 의사를 언제든 접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최 전 부총리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7일 여러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추석 인사 수준으로 다른 내용은 담지 않았지만 대량의 문자가 발송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출마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 전 부총리는 9월 27일 매일신문 취재에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최종 결심을 하지 않은 상태다. 전체적인 정국의 흐름이나 총선 스케줄이 있으니까 그 흐름을 지켜보면서 최종 결정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적극적인 출마 의지는 드러내지 않은 셈이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산에서 4선을 한 최 전 부총리는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출마 확실 인사로 파악됐다. 하지만 추석 직전 나왔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박 없다” 발언이 그의 의지를 꺾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6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오는 친박계 인사들을 향해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것(출마)이 저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고 저와 연관된 것이란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과거 인연은 과거 인연으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내년 총선에 별 계획이 없다. ‘정치적으로 친박은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면서 “과거에 정치를 했던 분이 다시 정치를 시작하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내가 언급할 일이 못 된다”고 했다. 출마는 자유지만 친박 간판을 달고 나오는 것은 ‘가짜 상표’라고 확실하게 못 박은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발언한 이상 과거 친박 그룹이 독자적으로 출마를 감행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이들은 보수 지지세가 높은 대구·경북에서 출마를 준비해왔는데, 박 전 대통령의 언급으로 인해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친박 그룹에 표를 줄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친박 그룹 일부가 자신과 윤석열 대통령의 사이를 갈라놓은 뒤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시도 역시 강하게 차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국정농단 특검팀 수사팀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진영 대선후보로 정권교체를 한 데 대해 “좌파 정권이 연장되지 않고 보수 정권으로 교체된 것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비록 자신의 사건 수사에 관여하는 위치가 됐던 사실이 있지만 자신과 윤 대통령은 보수 수호를 위한 동역자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발신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고향인 경북 영주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이번 추석에서 이렇다 할 행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이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얘기다. 올 상반기만 해도 복수 여론조사에서 그가 의미 있는 지지율을 보였다는 분석이 나돌고 언론 인터뷰까지 하는 모습이 나타나자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사격이 없을 경우, 출마가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옛 친박계로 분류되는 원유철(경기 평택갑)·이우현(경기 용인갑) 전 의원 등도 재기를 노린다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이들 모두 독자적인 힘으론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예측이다. 대구·경북 등 영남권 출마는 박 전 대통령의 “친박 없다” 선언으로 가능성이 사라졌고, 수도권 출마 역시 친박에 대한 정서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통시장에 가거나 회고록을 내놓는 등 정치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점도 친박 그룹의 제약 요인이다. “친박 없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이 일회성 빈말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친박 그룹 출마가 완전히 봉쇄된 것으로 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하나 된 보수의 힘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낸 만큼 친박 그룹이 공천 받을 가능성도 없어졌고 무소속으로 나간다 한들 명분도 사라졌다.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 정도만 지역구가 아닌 비례 순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구·경북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렇게 해석했다.
#‘유·이’와 거리두기
국민의힘이 중앙당 차원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에 수도권 인지도가 높은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 등은 투입됐다. 하지만 안 의원이나 나 전 의원 못지않게 수도권에서 얼굴이 잘 알려진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설 곳이 없었다.
이 장면만 놓고 봐도 친윤계의 유승민 이준석 계열에 대한 배제 전략은 확실히 가동된 것으로 여권에서는 본다. 지난 3·8 전당대회 과정에서 얼굴을 붉혔던 안 의원, 나 전 의원은 포용한 반면, 유·이 계열은 사활을 건 선거 유세가 벌어지고 있지만 당 지도부가 끝내 끌어안지 않은 것이다.
이에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는 당 주류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으면서 존재감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지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투만 거칠어지고 다음 전략은 보이지 않는 ‘정치적 빈곤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는 유 전 의원과 달리, 이준석 전 대표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이기기 힘들다는 전망까지 내놓는 등 완전히 당과 갈라선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10월 2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망과 관련, “18%포인트 차로 질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또 보궐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당 지도부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내에서는 발끈하면서 배제 전략을 공식화하고 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3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 전 대표의 발언과 관련, “(선거에서 지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라며 이 대표를 비판했다. 열심히 유세에 동참하고 있는 당원들을 무시한 채 이 전 대표가 여당의 선거 패배를 바라고 있다는 취지로 일침을 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아 친윤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박수영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 추종자들을 ‘준빠’로 칭하며 대깨문(문재인 전 대통령 강성 지지자), 대깨명(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과 같은 취급을 했다. 그는 10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북 미러링 계정을 새로 하나 만들었다”고 알린 뒤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을 바라기에 막말러·대깨문·대깨명·준빠는 사양한다”며 준빠와 말을 섞기 싫다는 뜻을 드러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이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여당 내 야당 계열’이 여당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봤다. 그는 10월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이 전 대표에 대해 “아직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쯤은 자기 나름대로의 결심을 해야 할 단계”라며 “당 대표를 징계해 활동 못 하게 만든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당을 떠나야 할지에 대해 묻자 그는 “혼자 하든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하든지,무소속 출마 혹은 신당행 등은 이 전 대표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답변, 배제된 이상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공고한 여야 양자 대결 구도 하에서 제3지대 신당 주목도가 사실상 바닥인 점을 감안할 때 유·이 계열의 새로운 정치 세력화는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여권 주류 압박을 통한 배제 전략이 통했고 이들의 정치적 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빼고 나서 무얼 채우나
앓던 이를 빼고 감량을 마친 여권은 새로운 근육을 채워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예상됐던 것처럼 용산 주도의 민생 드라이브를 거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압박하는 검찰 수사 정국이 국민들에게 적잖은 피로감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다양한 현장 방문을 통해 민생 경제 대책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여권의 가장 큰 고민은 인재 영입이다.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수도권에서의 인재난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의 현역 의원에 맞서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수도권 지역구가 인물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도권 위기론의 근거”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실 참모, 검찰 출신 등 낙하산 공천 가능성을 놓게 본다. 이러한 기류가 인재 영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추석 때 국민의힘 지지세가 압도적인 대구·경북에서는 낙하산 전망이 반영된 듯 현수막 등을 통한 정치 신인들의 신고식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당내에선 ‘영남에서야 반발이 있다고 한들 낙하산 공천은 최종적으로 통하겠지만 이 소식이 북진할 경우 충청권과 수도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진박 공천이 이뤄졌던) 2016년 과거 패배의 기억이 이를 증명한다’는 경계심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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