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편법 행위에 악용 우려…“공정위 부당 지원 해석 기준 넓혀야” 지적도
TRS는 기초자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총수익을 교환하는 신용파생상품이다. 기초자산은 선물이나 옵션 등 파생금융상품에서 거래 대상이 되는 자산으로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 통화, 일반상품이 이에 해당한다.
TRS는 통상적으로 증권사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 총수익 매도자가 된다. 총수익 매도자는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손익 등 현금 흐름 전부를 총수익 매입자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이전한다. 기초자산 소유자는 총수익 매도자이지만, 모든 이익과 손실은 총수익 매입자가 갖게 된다.
TRS는 기초자산에 내재한 신용위험을 기초자산과 분리해 위험을 이전하는 거래인 셈이다. 대신 총수익 매입자는 기초자산을 소유하지 않고도 총수익 매도자에게 일종의 수수료만 내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TRS는 파생상품 개념을 넘어 기업의 재무적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자산 총액이 10조 원을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 10곳의 소속 회사 18개가 총 54건을 TRS로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액은 6조 원에 달했다. 이 중에서 계열사 간 거래금액은 3조 5333억 원으로 전체 비중에 약 58%(20건)를 차지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TRS는 기업이 자금조달, 자본 확충, 기업 인수, 순환출자 해소 등 여러 가지 목적에 맞게 활용 가능하다. 가령 A 계열사가 전환사채(CB)·교환사채(EB)를 발행해 총수익 매도자 등에 차입을 할 때 이 채권을 기초로 B 계열사(총수익 매입자)가 총수익 매도자와 TRS를 체결하는 행위가 보편적이다.
TRS는 실물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도 향후 해당 기업의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전략적 관점에서는 부채로 인식되지 않고서도 자금을 조달하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투자수단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TRS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상출집단이 계열사에 대해 행하는 채무보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TRS는 원리금에 비해 해당 채권의 매각 가격이 떨어질 경우 총수익 매입자가 차액을 대신 정산하기 때문에 채무보증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즉 TRS가 기업들에 대출처럼 활용되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효성그룹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효성그룹은 2014년 8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개인 회사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의 재무 상태가 악화하자 전환사채(CB)를 발행하고, 하나증권 측의 SPC에 넘겼다. 해당 SPC는 효성투자개발과 TRS를 체결했다. 공정위는 이를 사실상 무상 지급 보증으로 보고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한 변칙적·우회적 지원 행위로 판단했다. 사실상 효성투자개발이 우회적으로 GE를 지원한 효과가 발생해서다.
2017년에는 한국투자증권이 1670억 원의 발행어음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설립한 SPC가 SK실트론 지분 19.4%를 사들인 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TRS 계약을 맺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해당 발행어음이 개인에게 부당하게 대출된 것으로 판단해 제재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형식적으로는 SPC에 대출한 것이지만, 그 자금이 결과적으로 주식 형태로 최태원 개인에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TRS가 대주주 양도차익 과세 회피, 증여세 회피 목적 등 조세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주주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0~25%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TRS를 활용하면 기초주식에 대한 소유 주체가 드러나지 않아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경감할 수 있다”며 “또 거래 상대방을 자녀로 한 후 TRS 방식으로 주식을 넘기면 법적으로는 증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증여세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때 주식 가격을 현 주가보다 낮게 잡으면 수익은 덤이다. 물론 자녀가 기초자산 소유자는 아니기 때문에 배당·의결권은 SPC가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다만 TRS 계약이 사실상 금융소비자(기업)와 금융서비스 제공자(증권사) 간 맺어지기 때문에 증권사의 SPC가 자유롭게 의결권을 행사할지 의문이 남는다. 공시의무를 회피할 수 있고 의결권을 보유하지 않고도 기업의 주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등 변칙적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회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한 자는 지분 보유 및 변동 상황, 보유 목적 등의 변경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이를 이유로 공정위는 상출집단 소속 계열사 간 TRS가 대부분 공시되고 있어 최소한의 시장 감시는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효섭 선임연구위원은 “TRS 자체가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고,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TRS의 원 주문 주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불법 거래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TRS 관련 보고 범위의 확대 등 한국거래소(KRX) 거래정보저장소 보고 체계 강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TRS에 대한 부당 지원 해석 기준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앞선 공정위 조사에서 집계된 계열사 간 TRS 계약 20건 중 채무보증 범주에 해당할 수 있는 사례는 8건으로, 채권 인수 주체는 증권사와 SPC가 각 4곳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8건 모두 채무보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채권 인수 주체가 SPC인 경우 금융기관이 아니기에 채무보증이 아니며, 금융기관이라도 계열사 간 보증계약이 아닌 TRS 계약이기 때문에 ‘보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위의 해석대로라면 SPC를 활용할 경우 채무보증제한제도의 규정을 회피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공정거래법이 계열사 채무보증을 금지하는데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공정위는 보증의 범위를 좁게 해석함으로써 규제의 사각지대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정위가 CJ그룹에 대한 TRS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이목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9월 4일 CJ지주회사와 CGV, CJ푸드빌 등에 기업집단감시국 소속 조사관 10여 명을 보내 현장 조사를 벌였다. CJ그룹은 2015년 CJ 푸드빌과 CJ 건설(현재 CJ 대한통운 합병)을 위해 각각 500억 원의 TRS 계약을 체결했다. CJ CGV 역시 같은 해 시뮬라인(현재 CJ 포디플렉스 합병)의 자금 조달을 위해 150억 원의 TRS 계약을 맺었다.
이 사건은 국회도 주목했다. 국회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당초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이번 국감에 부를 생각이었다. TRS 형태의 지원 의혹 및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의 올리브영을 통한 지분 승계 의혹 질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 증인 신청에는 실패했고, 이선정 대표을 증인 명단에 포함 올렸다. 다만 CJ그룹 측에서 “증인과 증인 신청이유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국회쪽에서 증인 신청을 취소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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