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꽃님 씨가 193일간 성매매를 강요당한 부산시 부전동 변종업소 입구. 최준필 기자choijp85@ilyo.co.kr |
피해 여성은 햇볕 한 점 안 드는 지하방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서야 경찰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일요신문>은 당시 피해 여성이 사투를 벌이던 현장을 방문해 담당 경찰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짜 나쁜 놈이지.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번 사건을 담당한 부산진경찰서 형사과 이병문 팀장이 기자에게 처음 꺼낸 말이다. 사건 담당 경찰마저 혀를 내두르게 한 변종업소 업주 정 아무개 씨(56)의 인권유린 실상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전남 순천 출신의 김꽃님 씨(가명·29)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오랜 기간 객지 생활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 부산으로 향했다. 변변한 기술이 없었던 김 씨가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결국 유흥업계뿐이었다. 그렇다고 몸을 팔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유흥업계 구인구직 사이트(본지 985호 참조)를 통해 한 유사업소를 찾게 된다. 거액의 수익과 휴식을 보장하면서도 키스영업만 하면 된다는 정 씨의 달콤한 광고 글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김 씨는 올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정 씨의 업소에서 일하게 됐다. 부산 부전동에 위치한 정 씨의 업소는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방이었다.
키스영업만 하면 된다는 정 씨의 말은 실상과 전혀 달랐다. 정 씨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김 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김 씨는 곧바로 따졌지만 정 씨는 그에게 뜻밖의 협박을 가했다. 정 씨는 “만약 네가 도망가면 순천 고향집에 네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리겠다. 또 네가 경찰에 신고 해봤자 너도 처벌 대상이다. 맘대로 하라”며 윽박질렀다.
김 씨는 만약 부모님이 자신의 일을 알게 될 경우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 씨의 협박을 감당해나가기로 했다. 김 씨는 그날부터 하루 17시간 이상 성매매에 나섰다. 하루에 그가 받는 손님은 10명 이상에 달했다.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4시에 퇴근했다. 업소 근처에 월세 방을 얻었지만 3~4시간의 새우잠만 자고 매일같이 지하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업주 정 씨의 인권유린 행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김 씨는 193일 동안 딱 3일만 쉬었다. 법정공휴일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 손님이 많으면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새벽 막간의 토끼잠조차 허락받지 못해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변태행위를 강요하는 손님을 받아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업주 정 씨는 성매매에 사용하는 콘돔 값까지 김 씨에게 부담시켰다. 성매매 업계에서도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
▲ 김꽃님 씨는 이 방에서 매일 17시간씩 손님을 받았다. 사진제공=부산진경찰서 |
그러던 어느 날, 업소에 변태성향이 농후한 한 장애인 남성이 김 씨를 찾았다. 그는 상식 밖의 행위를 강요하며 김 씨를 압박했다. 김 씨는 도저히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항의했다. 이에 격분한 성매수 남성은 김 씨를 구타했다. 하지만 업주 정 씨는 도리어 손님에 대들었다는 이유로 김 씨를 나무랐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결국 사건이 있었던 7월 13일 오전, 김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김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193일 만에 지하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구조 당시 김 씨의 상태는 만신창이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팀장은 “워낙 정신적 충격이 컸다. 김 씨에게서 성격장애와 대인기피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진술 자체가 어려운 상태였다. 김 씨를 성매매피해자 지원센터에 인계 후 장기간 안정을 취한 후에야 진술 및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악덕 업주 정 씨를 곧바로 검거할 수 없었다. 이미 성매매와 관련한 증거를 모두 숨긴 상태였다. 결국 경찰은 업소 앞에서 한 달간 잠복에 들어갔다. 이 기간 동안 경찰은 정 씨가 단속 이후에도 계속해서 손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가 건물 외벽 창고에 폐기 콘돔을 버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게 된다.
결국 경찰은 지난 8월 24일 현장을 덮쳤다. 업주 정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된 뒤 구속 처리됐고 장소를 제공한 건물주 김 아무개 씨(69)와 송 아무개 씨(27)등 성매수남 4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현재 경찰은 성매수 혐의를 받고 있는 25명을 대상으로 추가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팀장은 “현장에서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 김 씨의 다이어리가 발견됐다. 다이어리에는 김 씨가 받은 손님과 수익 등이 적혀있었다. 또 몇몇 페이지에는 ‘이제는 벗어나야 하는데’ ‘도망치고 싶다’와 같은 김 씨의 메모가 발견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기자는 김 씨가 손님을 받았던 지하방을 찾아갔다. 굳게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하 계단 근처에서는 역겨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부산=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