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라벤이 북상한 8월 28일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모습. 최준필 기자 |
하지만 단 한 곳, 기상청만은 태풍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태풍의 경로를 조작했다는 의혹에서부터 민간예보보다 못한 기상청이란 평을 받는 등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게다가 잇달아 비리사건에 휘말리면서 어느 때보다 거센 후폭풍을 치르고 있다.
이번에도 기상청의 빗나간 예측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14호 태풍 덴빈이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오고 있음에도 진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 당초 기상청은 덴빈이 30일 오후 7시쯤 태안반도 부근에 상륙해 수도권을 지나 중부지방을 관통할 것으로 예상했다.
▲ 한국기상청이 발표한 볼라벤 진로(맨 오른쪽 선)로 다른 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기상청은 “우리나라 인근 북태평양의 고기압 경계가 예상보다 더 동쪽으로 치우쳐 예측과 달리 움직였다. 또한 소멸이 가까워지거나 소형 태풍일 경우 주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비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지나간’ 태풍 볼라벤의 이동 진로의 진위 여부를 놓고도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에서 기상청의 예측에 끼워 맞추기 위해 볼라벤의 진로를 조작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진 것. 기상청은 “자료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논란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의혹은 지난 28일 실제 볼라벤의 진로를 두고 한국 기상청만 유독 세계 기상 기관들과는 다른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기됐다. 기상청은 “28일 오전 9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9시 볼라벤의 위치(태풍의 중심)가 각각 경도 125.6도 상에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나 일본, 중국 기상청과는 경도 0.8~1.1도(약 90~120㎞) 차이가 있었다.
이를 두고 한 기상 전문가는 “통상 태풍 예측의 경우 진로가 최대 200㎞를 벗어나도 오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발표한 자료가 100㎞ 이상 차이나는 일은 드물다. 세계적으로 기상관측 자료는 공유하는데 기상청이 왜 이런 발표를 했는지 아리송하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태풍의 진로 조작은 불가능하며 중심 위치의 판단은 과학적인 절차 등에 따른 결과다. 미국에서도 허리케인에 대한 중심 위치 오차가 100㎞를 상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내년 초 WMO 태풍위원회에서 관련 국가들이 모여 최선의 경로(best track)를 결정하기 전까진 누가 정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해명했다.
기상청은 앞서 삼성화재 방재연구소와도 태풍을 두고 한판 전쟁을 벌인 바 있다. 지난달 10일 삼성방재연구소는 ‘2012년 여름 기상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달 말부터 내달 중순까지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8월 하순에는 초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해 대규모 피해가 우려된다”고 예보했다.
당시 기상청은 “삼성화재의 기상예보는 뚜렷한 근거도 없고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 달을 앞서 예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기상예보를 하기 위해선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삼성화재는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고려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 ‘볼라벤’과 ‘덴빈’이 연이어 한반도를 찾자 기상청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상청 내부 상황도 ‘폭풍전야’다. 조석준 기상청장(58)이 기상관측장비 납품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 청장은 지난해 기상관측장비인 ‘라이다’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민간 기상장비 업체 ‘케이웨더’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기상청 고위간부마저 조선업체인 ‘고려조선’에 편의를 봐주고 금품을 받은 정확이 포착돼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에게 압수수색 당한 바 있다. 이처럼 안팎으로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기상청. 시민들의 신뢰는 점차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태풍에 대비해 유리문에 테이프를 붙인 모습.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테이프 붙이기, 창틀은 왜 빼?
상륙하는 곳마다 초토화를 시킨 태풍 ‘볼라벤’의 위력을 일찍이 접한 시민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특히 도심지역에서는 창문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돼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따라한 예방법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더 키울 뻔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널리 알려진 ‘테이프 십자 붙이기’의 경우 창틀까지 연결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창문에만 테이프를 붙일 것이 아니라 창틀까지 길게 빼 단단히 고정시켜야 한다. 대각선 모양으로 먼저 테이프를 붙인 뒤 가로세로로 한 번 더 고정시켜 주면 더욱 안전하다”고 말했다. 만약 테이프를 어설프게 붙였다 창문이 깨졌을 경우는 무방비 상태에서 태풍을 맞았을 때보다 더 큰 피해를 불러온다. 창문 전체에 받는 바람의 힘이 달라 유리창이 심하게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장력의 증가로 인해 테이프보다 보다 강한 장력을 이겨낼 수 있는 ‘젖은 신문지’도 마찬가지다. 창문의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신문을 붙여야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이마저도 물기가 사라지는 순간 ‘맨 유리창’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재난방지 전문가들은 신문을 적시기 위해서는 창문에 자주 다가가야 하는데 이 상황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국가재난정보센터 관계자는 “태풍으로 인한 유리창 파손을 막으려면 바람이 불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창문을 꼭 닫고 잠금장치까지 내린 뒤 올바른 방법으로 테이프를 붙이거나 신문지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창문 근처로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