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면접보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결과 나와…총선 앞둔 예민한 시기 ‘규제’ 나섰다 비판 받을 수도
전화면접과 ARS 조사 방식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여론조사기관과 협회마다 입장이 다르고, 정당들의 셈법도 분주한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려 묘한 해석도 고개를 들었다.
한국조사협회(KORA)는 10월 22일 ‘정치·선거 전화여론조사 기준’을 공개했다. 한국조사협회는 정치·선거 여론조사에서 자동응답서비스(ARS) 방식을 없애고, 사람(조사원)이 진행하는 전화면접 조사만 시행하기로 했다. 응답률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기준상 전국 단위 조사에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할 경우 10% 이상, RDD(전화번호 임의걸기)를 이용할 경우 7% 이상 달성하도록 규정했다.
부재중이거나 통화 중인 조사 대상자에게는 3회 이상 재접촉하고, 조사 결과는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한 정수로 제시하기로 했다.
한국조사협회 측은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 전송해 녹음된 목소리 또는 기계음을 통해 조사하는 ARS는 과학적인 조사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통신 환경마저 훼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자체적으로 개선안을 마련해 모든 회원사가 준수할 것을 약속한 이번 기준이 정치·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협회가 마련한 이 기준이 모든 여론조사기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조사협회는 한국갤럽·넥스트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34곳이 정회원사로 가입돼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은 2022년 말 기준 91개다.
실제 또 다른 여론조사협회인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는 기존의 ARS 여론조사 발표를 이어가기로 했다. 한국정치조사협회는 리얼미터·조원씨앤아이·한길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19곳이 속해있다.
한국정치조사협회 측은 “미국 갤럽이나 유럽의 여론조사기관들도 전화면접 조사 외에 ARS 방식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현재 여의도연구원(국민의힘)·민주연구원(더불어민주당) 등 각 정당의 싱크탱크들도 ARS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ARS 여론조사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방식을 둔 협회·기관 사이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여론조사업계 한 관계자는 “20년 가까이 된 싸움이다. 2000년대 중반에도 ARS 조사에 대해 ‘비용이 저렴하지만 응답률이 낮아 학계나 국제규약에서 과학적 조사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조사방법론적 공방이나 학술적 논쟁보다 양쪽 업계의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한국조사협회에서는 여론조사 시장 규모가 1조 원까지 갈 수 있는데 ARS 조사 때문에 1000억 원에 머물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전화면접에 비해 ARS 조사 비용이 훨씬 저렴하니까 의뢰자들이 다 ARS 조사로 몰린다는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전화면접 조사를 하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자기들 나름의 ‘ARS 조사 믿지마, 전화면접 조사가 정확해’라고 경고를 날렸다”고 설명했다.
한국조사협회의 ARS 조사에 대한 비판에 대해 민주당에선 의문부호를 단다. 여론조사 분석을 전문으로 한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정확성은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벌어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예로 들 수 있다. 보선 직전과 당일(10월 9일~10일)까지 전화면접 조사로 진행된 전국지표조사(NBS)의 정당지지도 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국민의힘이 31%로, 23%의 민주당을 8%포인트(p)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반면 비슷한 시기(10월 8일~9일) 미디어토마토가 ARS 조사로 실시한 여론조사의 정당지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민주당이 45.7%, 국민의힘 33.9%로, 11.8%p 두 자릿수 격차를 보였다. 실제 선거 결과도 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를 17.15%p 차이로 이겼다.” 서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수치와, 서울 강서구로 한정한 선거 수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ARS 조사가 선거 결과에 더 가까웠다는 취지다.
ARS 조사가 응답률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앞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전화번호에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성별과 나이, 생활수준 등의 정보가 담겨있다. 따라서 응답률을 높여 특정 집단의 정치적 입장을 확보하는 게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한국의 여론조사는 가상번호를 받아도 무작위다. 모수가 작다고 중도·보수·진보 세팅이 정확하게 되는 게 아니다. 응답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신뢰할 수 있다는 건 통계를 부정하는 말이다”라고 반박했다.
여론조사기관 사이에 이어진 해묵은 논쟁이 정치권에서 이슈로 부각되는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ARS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는 주로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나오고 있다. 전화면접방식의 대표적 여론조사인 한국갤럽·NBS 등에서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살짝 높거나,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반면 ARS방식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10%p 이상 두 자릿수 격차를 보이며 앞서고 있다. 일부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지지율 50%에 육박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는 두 조사 방식 모두 긍정이 30%대 초중반에 머무르고 있지만, ARS방식이 조금 더 낮은 경향성을 보인다. 특히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의 경우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10월 3주차(14~15일)와 4주차(21일~22일) 각각 29.2%와 28.3%를 보여, 2주 연속 20%대를 기록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한 전직 의원은 “정치권에서 ARS 여론조사는 정치 고관여층이 응답을 많이 해 선행지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여론조사 수치가 계속 발표되면, 중도층도 여론조사 결과가 민심이라고 생각해 쫓아가는 밴드왜건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여당에서도 나선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 역시 “이번 한국조사협회의 기준 발표 중 축이 된 곳이 케이스탯리서치 등으로 알고 있다. 케이스탯리서치는 현재 용산 대통령실의 여론조사 담당 기관이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의혹이 더 무게를 싣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이 여론조사기관들의 자체 기준에 발맞춰 입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 ARS 여론조사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여당에서는 이미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에 나섰다. 앞서 지난 2022년 11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응답률 5% 미만’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조해진 의원 등도 지난 5월 여론조사 관리·감독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여론조사 관리·감독위원회를 만들어 여론조사 실시·공표·보도사항을 관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총선을 6개월밖에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발의한 여론조사 관련 법안에 대해 이미 선관위와 인권위에서 제동을 건 바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예민한 시기에 여론조사기관에 대해 규제에 나서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조사협회의 한 정회원사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는 가장 과학적이고 신뢰성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기준을 내부적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와 NBS 여론조사 정당지지도 수치가 큰 차이를 보인 데 대해 “두 수치의 차이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며 “강서구의 경우 전체 여론과 비교하기에 다른 특수성이 있었다. 우리도 내부적으로 강서구만 조사했을 때 17%p 가까운 큰 격차를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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