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초기부터 잡음, 영남 중진 험지 출마 선언 주춤, 유승민·이준석 신당 창당 임박…공천 전권 확보 여부가 관건
하지만 혁신위 출범 초기부터 잡음이 무성하다. 인요한 위원장이 얼굴마담에 그칠 것이란 비판도 그중 하나다. 하태경 의원이 쏘아올린 ‘험지 출마’의 바통을 이어받을 중진들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쇄신 레이스 역시 멈췄다. 친윤 세력과 갈등을 빚어온 유승민·이준석 계열의 헤어질 결심이 임박했다는 전언까지 나오면서 보수 분열 조짐도 본격화하고 있다.
#히딩크냐, 얼굴마담이냐
“기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걱정이 더 크다.”
인요한 위원장을 두고 당 내부에서 나오는 말이다. 혁신위원장 인물난을 겪은 끝에 인 위원장을 겨우 앉힌 것만 봐도 혁신위원장은 권한 없는 자리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보선 패배 후 열흘도 훨씬 더 지난 10월 23일에야 인 위원장 인선을 발표했다. 위기 상황에서 혁신위 출범이 이번처럼 늦어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2022년 당시 이준석 대표는 6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 구성을 결정한 뒤 당일 최재형 위원장을 임명했다. 자유한국당 시절인 2017년 홍준표 대표도 7월 3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혁신위 구성 계획을 밝힌 뒤 일주일 뒤에 류석춘 위원장을 임명했다.
쓴소리를 마다 않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10월 25일 “인요한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혁신위원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히면서 혁신위는 초반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천 위원장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면서 혁신위를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김기현 대표 시간벌기용 허수아비 혁신위원 이런 것은 전혀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기현 대표를 직격한 동시에 혁신위 위상을 깎아내린 것이다.
김기현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줬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천 위원장은 “정말 전권을 준 것이라면 본인이 내려오고 인요한 위원장이 됐어야 실질적인 전권”이라며 “혁신위와 별개로 총선기획단, 인재영입위원회 이런 것 다 따로 만들어 총선기획단도 공천룰 얘기를 하겠다고 하던데 그런 식으로 한다면 혁신위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혁신위의 위상은 공천룰을 건드릴 수 있느냐에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혁신위가 아닌, 총선기획단과 인재영입위원회 등이 따로 등장하면 공천을 놓고 내홍이 불가피하다. 혁신위가 조기에 좌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내에서는 혁신위가 공천룰에 대한 전권을 확보, 최상위 컨트롤타워 위상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 그렇게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더 많이 나오는 실정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0월 2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가 인 위원장과 관련, “이분이 (당에) 들어와서 할 수 있는 행동반경이 얼마나 되겠느냐에 대해선 굉장히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를 총지휘한 김기현 대표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면피용으로 혁신위를 만들어 출발시키는데 혁신위원장 시킬 사람을 이 사람, 저 사람 고민하다가 결국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은 “혁신위 한계는 김기현 대표뿐 아니라 그 위에 대통령까지 있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김 전 위원장 말처럼 ‘인 위원장 위에 더 힘 센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정가의 시선은 혁신위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인 위원장 스스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과 친하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인 위원장 인선이 용산과 관계있다는 말이 꼬리를 물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혁신위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인요한 혁신위 이미지에 상처를 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만 봐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가상자산) 이상 거래 논란 등을 극복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온갖 말썽만 남기면서 금세 문을 닫았다. 국민의힘 역시 과거 최재형 혁신위, 류석춘 혁신위가 모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채 활동을 마쳤다.
성공 사례가 있긴 하다. 2005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시절의 홍준표 혁신위,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때 김상곤 혁신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의 주류가 아닌 중도 성향 인물을 위원장으로 내세워 합격점수를 받았다. 홍준표 혁신위는 2006년 지방선거 압승, 김상곤 혁신위는 2016년 총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혁신위 경험이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인요한 혁신위에 대해 비관적 어조가 다분히 섞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10월 2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대표가 당 운영을 잘못해서 혁신위원회를 발족했는데 당대표가 혁신위 활동을 간섭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모양 갖추기 혁신위로는 자칫하다가 민주당 혁신위처럼 혁신위가 아닌 망신위원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홍 시장은 또 “지금 정치판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은 여야를 통틀어 윤여준, 김종인, 김한길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면서 정치 경험이 없는 인 위원장의 역량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 말이다.
“홍준표·김상곤 혁신위의 성공은 당내 주류에 과감히 혁신안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 등장했고 당 지도부도 권한을 혁신위에 과감히 부여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용산이나 김기현 대표가 과연 얼마나 많은 권한 내려놓기를 하고 있는지 바깥에서 봐도 의문이다.”
10월 26일 발표된 혁신위원 12명의 면면도 “한방이 부족한 것 아니냐”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성과 젊은층 발탁을 강조했지만 혁신위원들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쓴소리 할 사람도 없고 현실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란 이유에서였다.
#하태경 바통, 누가 잇나
국민의힘 텃밭이라 불리는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하태경 의원이 내년 총선 서울 출마를 선언하면서 중진들의 험지 출마 문이 열렸다. 탄력을 받는 듯싶었지만 이내 중단됐다.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여겨졌던 중진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다. 실제 하 의원 뒤를 이을 것으로 거론됐던 일부 의원들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험지 출마 뜻을 접은 것으로 파악됐다.
움직이지 않는 중진들을 겨냥해 당내 신진 세력의 비판 공세가 개시되면서 국민의힘은 어수선한 모양새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10월 24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험지 출마 이야기하는 분들이 아쉽다”며 “이제 국민적 관심을 받기 시작한 우리 당의 기대주나 우리 정부의 소위 말하는 보물들에게 험지 프레임을 강요하기보다 중진들이 먼저 내가 험지에 나가겠다 하는 게 감동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는 “왜 영남에서 3선, 4선 하신 분들은 험지 못 나가는 거냐”고 반문했다.
‘영남 의원들, 중진들 험지 나가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이들이 결단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당내 인사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수도권 험지 출마는 낙선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여기기에 최대한 버틴다는 것이다.
혁신을 기치로 들고 나온 인 위원장이 앞장서 험지 출마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지만 인 위원장은 멈칫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자신의 언론 인터뷰 발언 내용이 영남 물갈이론으로 해석되는 데 대해 10월 25일 기자들을 만나 “낙동강 하류는 6·25 때 너무 소중했고 우리를 지킨 곳이다. 그 후에 그곳에서 많은 대통령이 나왔다. 좀 더 다양성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농담도 못하나”라고 말했다.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인 위원장은 10월 26일 국회에서 혁신위원 인선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도 소위 ‘낙동강 발언’에 대해 “농담으로 이야기한 것이지 낙동강을 비하한 건 아니다”라고 거듭 해명했다. 연거푸 나온 해명성 발언을 두고 인 위원장이 영남 물갈이·험지 출마 등의 당 안팎 요구를 이뤄내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보수 분열, 상수로 격상
여권 주류와 날카롭게 각을 세워온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은 신당 창당 뜻을 공공연히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헤어질 결심을 굳히면서 이제 보수 분열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격상했다. 국민의힘 한 핵심 전략가는 “유승민 신당, 이준석 탈당 등을 염두에 둔 총선 플랜을 수립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10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신당 가능성은 당연히 배제하지 않고 간다”고 밝혔다. 신당 형태에 대해 그는 “신당을 고민하고 있지 않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비례 신당 같은 것은 할 생각이 없다”며 자신의 국회 입성을 위해 비례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일각의 추측엔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는 “정의당처럼 이념 정당을 할 것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다수당이 되기 위한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미 창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10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12월쯤 나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선택할 것)”이라며 “떠나는 것, 신당을 한다는 것은 늘 열려 있는 선택지이고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이어 “12월까지 당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 내 역할, 목소리를 다 낼 것”이라며 “발전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던지는 것, 늘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탈당은 물론 신당 창당을 결행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준석 전 대표 시절 상근부대변인을 지낸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정바세) 대표가 10월 25일 국민의힘 탈당을 선언한 것도 신당 창당이 무르익고 있다는 해석에 힘을 실었다. 신 변호사는 이준석 대표 때인 2021년 제1회 국민의힘 토론배틀 ‘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나는 국대다)’를 통해 당 대변인단에 합류해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여당 내에서는 유승민·이준석 계열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강해 인 위원장이 포용을 주장하더라도 함께 가진 못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윤 대통령이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것도 보수 총집결 시도를 통해 곁가지는 과감히 쳐내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정가 일각에선 TK(대구·경북)를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높은 유승민·이준석 신당을 염두에 뒀다는 말도 나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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