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공모전 대상 이어 독점 연재 시작…은퇴한 킬러 마을에 들이닥친 개발바람, 초반 댓글 호평 일색
#웹툰 ‘새동네’ 탄생 비화
평범해 보이는 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작은 공동체 ‘새동네’. 그런데 시장에서 나물을 팔 것같이 생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갑자기 총칼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손쉽게 무장강도를 제압한다. 사실 이들의 정체는 은퇴한 킬러로 모종의 이유로 손을 씻고 새동네에 모여 사는 중이다. 킬러들의 리더 격인 신기우, 독 전문가 자옥, 근접 격투의 달인 강옥, 칼잡이 순옥, 그리고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민기와 공주까지. 문제는 옹기종기 살고 있는 주민들 앞에 신도시 개발이라는 화두와 함께 들이닥친 개발 세력들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버렸다는 것. 웹툰 ‘새동네’의 도입부다.
독자 반응은 무료분부터 유료분까지 호평 일색이다. 베스트 댓글만 살펴봐도 ‘캐릭터 하나하나 만만찮다’ ‘드라마로 만들면 캐스팅이 관건이겠군’ ‘기계로 찍어낸 거 같은 그림체와 스토리의 웹툰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신선하고 독창적인 장르의 웹툰이 나와서 아주 좋다’ ‘이건 이 그림체 아니면 못 살린다’ ‘굉장히 흡입력이 좋다’ ‘무조건 뜬다’ 등 극찬이 이어졌다. 임성훈 작가는 “뻔하고 선한 캐릭터가 아닌 어두운 과거를 지닌 채 힘을 숨기고 있는 강한 노인 캐릭터들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댓글들을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는데 독자 분들이 등장인물인 할머니들을 너무 좋아해주셔서 뭉클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1980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임성훈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좋아하는 ‘만화 마니아’였다.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등 또래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책들을 임 작가도 즐겨 봤다. 자연스레 만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지만 감히 도전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런데 20대 초반에 인생을 바꾼 작품을 만났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 생태 보고서’ 등을 담은 최규석 작가의 단편집이었다. 임 작가는 “당시에는 최규석 작가님이 당신 이야기를 갖고 만화를 주로 만드셨는데 그런 종류의 만화는 처음이었다.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취미로 만화 제작에 몰두하던 임 작가는 20대 후반에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다. 200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에는 웹툰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임 작가는 2012년 휴머니스트출판사에서 만든 ‘사람 사는 이야기 2’라는 다큐멘터리 만화잡지에 단편을 실으며 만화가로 데뷔한다. 데뷔작은 ‘나의 애국보수 집회 답사기’. 역시 공교롭게도 노인들의 얘기를 다뤘다. 회비 7만 원을 내고 김포공항에서부터 제주도의 보수 집회까지 보수단체 회원들과 함께한 하루의 여정을 여행기처럼 그렸다. 임 작가는 살면서 그렇게 많은 노인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이렇다 할 히트작은 내지 못했다. 웹툰 작업에서는 파트너 작가들과 협업하면서 스토리 담당을 도맡았지만 그림 그리는 감각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출판만화도 줄곧 펴냈다. 그러다가 스토리와 그림을 전부 도맡아 연재까지 한 최초의 웹툰이 일요신문 공모전에서도 수상한 ‘여행만담’이었다. 당시 후원사였던 탑툰에서 연재를 했지만 상위권을 차지한 ‘19금’ 만화들 사이에서 다큐멘터리 만화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펀딩을 통해 여행만담을 출판했으나 성적이 시원찮았다. 아직도 절반 넘는 재고가 집에 박스째로 쌓여있다.
출판 만화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임성훈 작가는 만화책 세대였기 때문에 그간 출판에 대한 미련을 놓기 어려웠다. 콘티 역시 출판 만화로 짜는 게 익숙한 상태였다. 임 작가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좀 보고 출판은 아예 생각하지 말고 처음부터 그냥 모바일 뷰어 형식의 웹툰에만 100%로 맞춰 작업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처음으로 적용된 만화가 ‘새동네’다. 휴대폰 화면으로 봤을 때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식을 고심해 연출을 짰다. 스크롤을 최대한 활용했다. 임 작가는 “1화에 새동네 주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웹툰의 세로 스크롤에 맞춰서 드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한 명씩 나오도록 신경을 써서 연출했다”고 말했다.
2019년에 입주한 경남지역 웹툰캠퍼스의 제작 지원 도움도 받았다. 각 지역마다 작가들에게 지역 거점 창작 공간을 마련해주는 웹툰 캠퍼스는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작품에 창작지원금을 지급해주는데 ‘새동네’도 선정작이었다. 임성훈 작가는 “솔직히 경남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다. 저는 10년간 안 팔리는 작가였기 때문에 선정 후에도 ‘이 작품이 좀 먹히나?’ 싶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작 지원을 받아 뽑은 샘플은 앞서 연이 닿았던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 제출했다.
그리고 2022년 일요신문 공모전에서 ‘새동네’로 대상을 수상한다. 임성훈 작가는 대상 수상을 만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으로 꼽았다. 임 작가는 “한창 이 작품이 먹힐까, 내 그림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작가로서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호재는 연이어 찾아왔다. 서울미디어코믹스와 협업하며 연재 준비를 하던 올해 8월 네이버 웹툰에서 정식 연재 제안을 받은 것이다. 네이버 웹툰은 모든 웹툰 작가들이 꿈꾸는 플랫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 작가는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유행하는 장르나 스타일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만화이고, 독특함과 참신함을 높게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연재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네이버 웹툰 연재가 확정되고 이제 작업만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던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다리에 마비증상이 찾아왔다. 병원에 갔더니 허리 디스크가 심하게 터져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주간 연재를 하려면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있어야 하는데 아찔한 일이었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재활을 병행하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임성훈 작가는 “불행 중 다행으로 연재 시작 전에 일이 벌어져 수습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빨리 컨디션이 100% 정상으로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새동네’는 이제 시작이다. 악인들과 호쾌히 싸워나가는 장면들을 비롯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등장인물들 각각의 비화도 적지 않다. 임성훈 작가는 “현실 뉴스들을 보면 갑갑할 때가 참 많은데 만화 속에서라도 악을 응징하는 새동네 주민들을 보면서 독자 분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셨으면 좋겠다”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동네 주민들이 서로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따뜻함도 함께 느끼실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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