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연루 비리에 감찰·정보 무력화 ‘자조’…하위직 극단 선택 이르게 한 과잉 조치와 대조
#'사건 브로커' 뼈아픈 까닭
'사건 브로커' 사건이 경찰을 집어삼키고 있다. 광주·전남의 사업가 성 아무개 씨(62)가 고위 경찰들과의 친분을 활용해 본인 측근들의 범죄 수사를 무마·축소해 왔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11월 15일에는 검찰 수사를 받던 김재규 전 전남경찰청장이 경기 하남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경찰 고위 간부들만 10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성 씨 영향력으로 수사를 무마·축소한 혐의 외에도, 가상자산 사기범에 투자하거나 성 씨로부터 뇌물 등을 받고 인사 청탁을 들어줬다는 등의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다고 전해졌으나 일부 인정한 인사들도 있다고 한다.
경찰로서는 뼈아픈 사건이다. 사안 자체도 중대하지만 이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발각됐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특히 경찰은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부터 권력 집중에 따른 '공룡경찰'을 우려하는 시각에 "자정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번 논란의 쟁점인 '수사권 남용'과 '유착비리'를 콕 집어 근절을 약속했다.
이에 경찰 일각에선 감찰 혹은 정보과 등이 성 씨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광주·전남의 한 중간급 간부 경찰은 "성 씨가 일부 고위급 경찰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던데, 정보과나 감찰 등에서라도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청 정보과 등도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지만, 감찰과 정보과가 그동안 성 씨 사건을 모르고 있었어도 문제고, 알고 있었더라면 더욱 잘못된 일"이라면서 "현장에선 그동안 조용하다 갑자기 이렇게 일이 커져 매우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김진호 부장검사)는 성 씨 의혹에 연루했다고 의심되는 전·현직 경찰관 등 6명을 구속했고, 광주경찰청 수사·정보과와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 등 관계기관 7곳을 압수수색했다. 제 식구 격인 광주지검 목포지청 소속 수사관도 구속했다.
#같은 경찰, 다른 감찰
현장 일선을 뛰는 경찰관들도 이번 사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휘부를 향한 불신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하위직 경찰로서는 상급자에 밉보이면 감찰 등을 동원한 '조직의 쓴맛'을 봐야 하는 현실을 떠올린다. 감찰과 정보과 등이 간부와 하위직을 상대하는 방식을 놓고 "계(界)가 다르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11월 20일, 24일 각각 서울경찰청과 경찰청 앞에서 집회·시위를 신고했다. 먼저 여는 집회는 파출소장의 갑질을 폭로했다가 보복성 감찰로 징계위기에 놓인 서울 성동경찰서 뚝섬치안센터 박인아 경위 사건을 규탄, 두 번째 집회는 성 씨 사건 관련 부패경찰 척결을 촉구하는 성격이다.
실제 해당 사건들에는 경찰의 감찰 및 정보과를 둘러싼 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두 사건 모두 감찰·정보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 탓에 일을 키웠다는 점이 같다. 다만 성 씨 사건은 감찰·정보가 상층부를 견제하지 못해 확산한 반면, 박 경위의 경우 하위직에 대한 '과잉 조치'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박 경위 사건에서 서울청 감찰은 갑질 혐의가 인정된 파출소장의 역진정을 받아들여 피해자까지 징계하기로 했다. 박 경위가 점심 때 사복을 입었다는 등의 이유다. 정확히는 경찰 보급품인 '형사 점퍼'를 입었는데, 이마저도 파출소장의 허락을 받은 사항이었으나 징계 사유에 포함시켰다.
이 밖에도 '유연근무 출퇴근 미등록' '부적절 언행'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전부 '동료 팀원들의 진술'이 판단 근거다. '파출소장 갑질 사건'을 공론화한 박 경위가 병가로 쉬었던 기간에 정 경감 등과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라 보복 감찰 논란이 일었다(관련기사 [단독] 서울경찰청 '갑질 피해' 박인아 경위 보복감찰 논란).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서울청과 성동서가 2023년 7월 박 경위의 갑질 신고를 애초 '첩보'로 처리한 영향도 작용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신 성과로 처리하려다 상황이 심각해진 셈이다. 그런데도 경찰청은 10월 18일 서울청 대상 감찰에서 "내부비리를 인지한 경우 처리방식에 관한 규정이 없다"며 이를 문제없음으로 결론지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경찰청 감찰조사 결과 갑질 혐의가 인정된 파출소장에 대해 '견책'으로 처분을 마무리 지었다. 전체 징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위의 처벌이다. 게다가 해당 파출소장은 12월 정년퇴임이다. 사실상 서울청이 아무런 의미 없는 결과를 냈다는 의미다.
전국 직협의 한 경찰관은 "고위 간부들은 유착에 인사 청탁 등을 해도 검찰 등 외부 기관에서 간신히 걸리는데, 하위직은 피해자가 제 목소리조차 못 내고 오히려 보복 조치를 당한다"며 "수사권 조정 때 그토록 큰 소리 치던 조직이 후진성을 드러내다 망신을 당한 격으로 매우 부끄럽고 화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찰 흑역사 '데자뷔'
이 같은 모습이 경찰에선 오랜 기간 반복돼 왔다.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한 예다. 용산경찰서가 핼러윈 축제 안전을 우려하는 정보보고서를 삭제했다는 의혹은 잘 알려져 있다. 서울청장과 용산서장 등 지휘부의 '사고 예견 가능성'을 축소시켜주려던 의도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뒤로 경찰 지휘부를 향한 책임론이 전방위 확산했으나 윤희근 경찰청장만큼은 제외됐다. 윤 청장은 참사 당일 전산망에 아무런 입력도 없이 충북 제천으로 휴가를 떠나 술을 마시다 사고 보고까지 놓쳤지만, 감찰 대상에서 유일하게 빠졌다. 김광호 서울청장이 그나마 감찰 조사는 받았지만 수사의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일선에선 하위직 경찰관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장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감찰의 과잉 조치로 피해를 입은 일선 경찰관들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23년 4월 광주광역시 북부경찰서에서는 허위 병가 등의 의심을 받던 여경이 감찰 조사마저 건너뛴 채 수사를 받고서야 무혐의로 억울함을 벗은 사건이 있었다.
특히 이 여경은 무혐의를 받았음에도 다시 소속 경찰서에서 감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목적으로 도입된 '시간선택제'와 관련해 상급기관인 광주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하다 곤욕을 겪게 됐다(관련기사 [단독] '시간선택제 문제제기 하자…' 여경, 소속 경찰서와 법적다툼 준비 내막).
과거로 돌아가 보면 2020년 강원 고성경찰서 소속의 한 경위가 음주운전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가 사망한 뒤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실은 "진상조사 결과 본청 감찰은 음주운전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해서도 별건 감찰 또는 먼지털이식 감찰로 보이는 점검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충북 충주경찰서 소속 고 피진아 경사 사건도 일선 경찰관들의 가슴 아픈 기억이다. 피 경사는 정체불명의 투서로 충북경찰청의 감찰을 받다 2017년 10월 26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불과 3년 전에는 '자랑스러운 충주 경찰상'을 수상할 만큼 유능한 여경이었지만, 익명의 민원으로 고강도 감찰을 받다 숨지며 순직을 인정받았다.
경기 동두천경찰서의 고 최혜성 순경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 음주운전 적발 후 고강도 감찰 조사를 받고 나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최 순경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029%로 도로교통법상 기준인 0.05%에는 못 미쳤다. 당시의 '경찰의 비위 적발 때 경찰서 평가 점수가 좋다'는 기준이 동료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시각이 여전하다.
주동희 전국 직협 조직국장은 "실력보다 인사 청탁 등 처세로 승승장구하게 된 인사들이 갑질 등으로 조직의 분란을 일으키고 동료 인권 등을 도외시하는 관행을 끊을 때가 진즉에 지났다"며 "감찰 등의 자정 기능이 중요하지만 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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