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연봉 지출 경쟁 막고 구단 간 전력 평준화 목표…리그 규모 성장 억제하는 역기능 우려도
야구는 끝났지만 겨우내 진행되는 스토브리그는 야구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다. 이번 KBO리그의 스토브리그는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번 겨울부터 리그 역사상 최초로 샐러리캡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는 스토브리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샐러리캡이 뭐길래
샐러리캡은 스포츠 리그에서 구단이 지출할 수 있는 연봉 금액을 정해두는 제도다. 과도한 연봉 지출 경쟁을 지양하고 리그 내 전력 평준화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미국 스포츠에서 최초 도입, 메이저리그(MLB), 미국프로농구(NBA), 내셔널풋볼리그(NFL) 등 미국 내 각종 리그에서 이를 운용 중이다. 국내 KBO리그에는 202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린다.
처음 도입되는 KBO리그의 샐러리캡, 최대 지출 가능한 금액은 114억 2638만 원으로 결정됐다. 지난 두 시즌간 팀당 상위 40인 연봉 평균액의 120%를 계산, 이 같은 금액이 결정됐다. 팀당 3명의 외국인 선수는 이 계산에서 제외된다. 외국인선수의 경우 3명 합계 400만 달러의 제한이 별도로 운영된다.
KBO리그 내에서 이뤄지는 FA 계약의 경우 대부분 연봉과 함께 적지 않은 금액의 계약금이 지불된다. 계약금의 경우 계약 기간을 나눠 1년에 지급되는 금액을 팀이 지출하는 '연봉'에 포함한다. 예를 들어 계약기간 4년, 계약금 40억 원에 연봉 10억 원으로 선수와 계약을 맺을 경우 구단이 이 선수에게 지출하는 금액인 1년에 20억 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샐러리캡 상한선 114억 2638만 원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다. KBO리그는 일종의 예외적인 상황을 두는 '소프트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했다. 구단이 최초 1회 상한선을 넘겨 연봉을 지급할 경우 초과분의 50%를 제재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2회 연속 위반 때는 초과분의 100% 제재금과 신인 지명 1라운드 9단계 하락의 제재를 받는다. 3회 이상부터는 제재금이 초과분의 150%로 늘어난다. 윈나우가 절실한 팀, 재정적 여유가 있는 팀이라면 '사치세'로 불리는 제재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소속 선수들에게 많은 연봉을 안길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미국 스포츠 리그의 부자 구단들은 사치세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변화
샐러리캡 탄생에 배경 중 하나는 구단 간 전력 평준화다. 상업화된 현대 프로스포츠에서 돈은 곧 전력을 의미한다. 구단 간 지출 금액이 비슷해진다면 전력 또한 평준화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KBO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구단을 '왕조'라 부른다. 1990년대 해태, 2000년대 현대, 2010년대 삼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장기간 우승권에 근접한 전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샐러리캡 도입 이후, 이 같은 왕조를 보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프로 스포츠에서 우승은 곧 지출 금액의 상승을 의미한다. 좋은 성과를 냈기에 선수들에게는 연봉 인상이라는 '당근'을 줘야한다. 과거엔 제한 없이 물량공세를 할 수 있었지만 샐러리캡 도입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기는 쉽지 않다. 현대와 삼성은 당대 '부자 구단'으로 불리던 이들이다.
당장 이번 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LG 또한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다. 최근 일부 베테랑들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도 '샐러리 줄이기'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통합우승이라는 성과에 팀 내 연봉인상 폭이 높은 선수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에 협조할 뜻을 보이는 것 또한 샐러리캡 여유분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SSG는 이번 겨울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군 구단이기도 하다. 2차 드래프트에서 다수의 주요 베테랑들을 보류명단에서 제외,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야구계 일부에선 이 또한 샐러리캡을 의식한 구단의 선택이라는 평이 나온다. 비록 팬들의 손가락질을 피할 순 없었지만 베테랑들을 떠나보내며 구단은 샐러리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다. SSG는 2022년과 2023년, 리그에서 연봉 지출이 가장 많은 팀이었다.
#부작용도 존재?
샐러리캡은 향후에도 리그 분위기 전체의 변화를 이끌 전망이다. 현지 진행 중인 스토브리그는 '예년에 비해 잠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 전 양의지와 같은 대형 매물이 나오지 않은 탓도 있지만 샐러리캡 도입과도 관련이 있다는 평이 뒤따른다.
이전과 달리 소수의 구단이 FA 시장에서 매물을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이번 겨울 상위 매물로 꼽히던 전준우와 안치홍은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었다. 지속된 하위권 성적, 새로운 사령탑과 단장 부임으로 성적을 내야하는 롯데는 내심 전준우와 안치홍 모두를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샐러리캡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치홍을 최대 6년, 총액 72억 원의 규모로 잡은 한화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더 이상의 중복 투자는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이번 겨울 19명의 FA 명단 중 상당수가 계약 체결을 완료하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과거와 같은 '깜짝 이적'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단마다 지출할 수 있는 금액에 한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 선수단 연봉 지출에 부담이 있거나 이미 투자가 이뤄진 SSG, LG, 두산 등은 더 이상의 대형 계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금액 경쟁을 억제하고 전력 평준화를 목표로 하는 샐러리캡에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는 전력 불균형을 불러올 수 있는 반면, 리그 규모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샐러리캡은 이 같은 성장 기회를 억제할 수 있다.
샐러리캡 제도의 존재가 향후 FA 과열을 막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는 선수들에게는 불만의 요소가 될 수 있다. 타 종목에서는 샐러리캡 상한선을 놓고 스타급 선수와 리그 사무국 측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도입 직후부터 제도 변경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도입 첫해부터 샐러리캡 상한선이 낮게 설정돼 상당수의 구단들이 사치세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 전해지고 있다. 2023시즌 중이 진행 중이던 시점, 일부 구단에서는 샐러리캡 폐지 의견을 물밑에서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각적인 폐지가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제도에 변화가 생길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현장에선 외국인선수에 대한 상한선에 손을 대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3인 합산 400만 달러의 금액으로 외국인 선수 수급이 어려워졌고 소속 선수의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가을야구를 앞두고 일어난 외국인 선수의 이탈이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하기 어려운 현 제도 탓이라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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