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후보는 적어도 추석 즈음까지는 참모그룹을 혁신하고 당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사진제공=문재인 |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단호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한 기자로부터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느냐.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기엔 권력의지가 약하고, 정치를 시작한 뒤로도 마치 누군가의 대리인 같은 언행을 보여주지 않았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받고서다.
문 후보에게 주어진 제1과제는 혁신과 통합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범야권 대통합 운동이 한창일 때 그가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 문성근 전 대표, 김기식·남윤인순 의원 등과 함께 결성했던 단체의 이름이 ‘혁신과 통합’이었다. 1년 전엔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의 여러 세력들이 짠 스크럼의 일원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맨 앞에 서서 진두지휘해야 하는 장수의 자리에 올랐다.
문 후보가 이뤄야 할 혁신은 자기 주변의 혁신과 당 혁신이다. 혁신의 시작점이 ‘친노(친노무현) 프레임’ 극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장 당내에서 ‘친노 참모그룹 백의종군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 온 박영선 의원이 지난 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하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박 의원은 “문 후보에게 핵심 참모그룹 문제가 늘 따라다니지 않느냐”면서 “참모그룹의 백의종군 선언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14일에는 급기야 최고위원회의에서 ‘패권 해체’, ‘주류 혁신’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계파 패권,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쇄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했고, 우상호 최고위원은 “정당 혁신은 사실상 주류 혁신이어야 한다”며 “우리 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큰 세력이 보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그 진정성이 확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식·남윤인순·신경민·유은혜·진성준 등 초선의원 22명도 성명서를 내고 문 후보를 향해 “계파·지역을 뛰어넘어 당내 모든 세력이 대선 승리를 목표로 소통하고 단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선 캠프 구성 때부터 ‘통합형 선대위’를 꾸리는 등 친노 색깔 빼기를 위해 노력해 온 문 후보 역시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비노(비노무현) 진영의 요구 수준이 문 후보의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당 일각에선 친노 참모그룹이 대선 선대위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친노 패권주의’에 상처받은 손학규·김두관 후보 등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문 후보 경선캠프의 한 관계자는 “친노 참모들이 ‘얼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캠프 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문 후보가 믿고 의지하는 참모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곤혹감을 표했다. 문 후보가 믿고 의지하는 참모로는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과 양정철·소문상·김경수·윤건영·정만호 전 비서관 등이 거론된다. 이 중 ‘양철’이라고 불리는 이 전 수석과 양 전 비서관이 특히 비노 진영의 경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 사진제공=문재인 |
하지만 당 지도부가 총사퇴할 경우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 대선을 90여 일 앞둔 시점에서 현실성 없는 얘기다. 또 정기국회가 시작된 마당에 원내대표를 새로 선출한다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대선후보가 전권을 행사하는 선대위 체제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를 명목상 지도부로 격하시키고 문 후보가 전권을 부여받아 당 혁신과 후보단일화 협상 등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일각에서 ‘사무총장 이하 정무직 당직자 총사퇴’ 주장이 제기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초선의원은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명목상 지도부로 격하된다면 이들을 지원하는 당직자 조직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며 “당직을 맡은 사람들이 총사퇴하면 대선후보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뽑아 선대위에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조직 차원의 혁신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결국 새누리당과의 쇄신 경쟁에서의 승리다. 박근혜 후보가 광폭 행보를 보이고 안대희 전 대법관을 중심으로 일련의 정치쇄신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민주당이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본선이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안철수 원장과의 경쟁에 밀리면서 자칫 본선 등판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문 후보로선 하루 빨리 민주당을 국민의 요구에 걸맞은 정당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문 후보는 이미 당내 경선 과정에서 대선후보 재산 등록 강화, 정치자금의 투명한 집행 등의 이슈를 치고나간 바 있다. 그는 대선후보가 재산을 등록할 때 배우자의 직계존속, 본인과 배우자의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혼인한 딸까지 재산총액을 신고토록 해 재산등록 범위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당론으로 정해졌다. 정치자금의 투명한 집행을 위해 문 후보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매주 월요일 경선캠프의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해 왔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들을 풀어내야 할 문 후보에게 최대의 적은 결국 시간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문 후보가 안 원장을 넘어 범야권 단일후보가 되기 위해선 추석연휴(9월29일~10월1일) 이후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어야 3주 안팎인 셈이다. 좌고우면해서도 안 되고, 친노든 비노든 누군가에게 휘둘려 중심을 잃어서도 안 된다. 신사의 품격을 지녔지만 우유부단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문 후보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강단과 추진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