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일 총선에서 안철수 원장과 김미경 교수 부부가 투표를 하는 모습. 김 교수의 집안은 학업이나 재산 수준으로 볼 때 안 원장의 집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사진공동취재단 |
안 원장의 부인 김미경 교수의 부친 김우현 씨는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로 전해진다. 자녀들의 학업이나 재산 수준이 안 원장 집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김 교수 개인의 화려한 프로필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의학과 법학을 넘나든 수재였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김 교수의 남매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김 교수를 포함한 4남매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한 이들도 김 교수를 포함해 3명이나 된다.
김 교수 집안의 학구열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일찍부터 여수에 정착한 김 씨는 양조장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터를 잡았다. 1992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전남 여수시 중앙동에 자리잡은 김 씨는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갖게 하고 어린 김 교수와 남매들을 일찌감치 서울로 유학 보낼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김 교수 부모들의 교육 수준에 대해서는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정도 외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자녀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안 원장의 부모 못지않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부친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아버지가 자영업을 하셨다.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오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 두 살 위 오빠랑 백과사전 넘기면서 봤던 사진, 그림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무슨 사전이 이렇게 멋있나 싶더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도 즐겨 읽었다”고 대답한 바 있다. 대학 도서관에서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질을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개인이 초등학생 자녀들을 위해 구입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1970년경 근로자 월 평균 소득이 1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 백과사전 한글판이 1992년에서야 처음 나왔다는 것만 봐도 부친이 자녀교육에 어느 정도 열성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김 교수의 모친 역시 자녀교육에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들 키우는 것은 화초 키우는 것과 같아서 계속 관찰해야 한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4남매가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는 경우 많았지만 참고 기다려주셨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지금의 김 교수는 부모의 교육열과 훌륭한 뒷받침속에서 이뤄졌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김 교수의 집안이 주목받는 것은 단지 뛰어난 교육열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넉넉했다. 여수는 지역 특성을 살린 업종의 활황으로 그 당시 다른 도시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는 한때 양조장 사업을 하기도 했는데 양조장 사업이 지방독점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볼 때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안랩 창립 당시인 1995년부터 1998년 3월까지 이사를 맡았다. 또 김 씨는 여수 로터리클럽 총재를 두 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로터리클럽은 가입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로운데 총재를 역임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나 영향력면에서 검증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인근 주민은 “외지인이 여수에서 터를 잡고 로터리클럽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면 말할 것도 없다”고 귀띔했다. 김 씨가 김충석 여수시장, 조충훈 순천시장 등 지역 유력인사들과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평당 1000만 원 상당의 여수 중앙동 건물 외에도 김 교수 부모가 소유한 부동산도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교수의 모친 송복자 씨는 2000년 4월 구입한 32평형 아파트를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시세는 지난해보다 약간 떨어진 12억~14억 원 안팎으로 전해진다. 이 아파트는 안 원장이 지난해 11월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드러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부친 김 씨도 평당 2000만 원이 넘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아파트를 소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실제로 한 정치컨설턴트는 “안 원장이 좋은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좋은 스펙을 갖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안철수’를 생각할 때 염려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역경을 딛고 올라섰다든지 가난을 경험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불행히도 두 사람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대기업 사장까지 지낸 이명박 대통령이 가난으로 인해 고생한 것을 강조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가 겪어봤으니 그 절망과 설움을 안다는 것 아니었나. 그런 이 대통령마저 취약층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교수 역시 “대통령이 꼭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물일 이유는 없지만 안 원장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들의 암울한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다”며 “전세살이의 고달픔이나 장인의 태풍피해 발언 해프닝은 어쩌면 안 원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