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축소 탓? 그 이상의 부진 보여…‘리얼 블루’ 감독 선임 정책과 외국인 영입 실패 등 비효율적 운영
#명문의 몰락
관중석을 가득 메운 2만 명 이상의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강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선수들이 관중석으로 다가서자 야유로 응답했다. 이물질을 던지거나 그라운드로 뛰어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95년 창단, 1996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수원은 장기간 K리그의 강팀으로 군림해왔다. 창단 직후부터 준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1990년대 말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명문 반열에 올라섰다. 국가대표 사령탑을 지냈던 김호 감독이 이끌고 이운재, 이기형, 샤샤, 데니스, 서정원, 고종수 등이 활약하던 1990년대 후반 수원은 리그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강 전력으로 꼽힌다.
수원은 숱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구단이다. 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경험했다. 현재는 폐지된 리그컵에서도 6개의 트로피를 들었다. 이 같은 승승장구에 한때 수원은 선수들 사이 선망의 대상이 되던 팀이었다.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에 화려한 스타들이 스쿼드를 채웠다. 한 은퇴선수는 구단 전성기 시절 승리 수당이 다른 팀 대비 5배였다고 전했다.
수원은 2010년을 전후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리그 우승은 2008년이다. 2014년과 2015년 연속 준우승, 2017년 3위에 올랐으나 이후 중위권 성적만 기록했다. 2022시즌에는 승강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결국 2023시즌 수원은 충격적인 강등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구단이지만 최소 1년간 1부리그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악의 시즌
수원은 2023시즌 긍정적인 소식이 많지 않았다. 시즌 시작 핵심 공격수 오현규가 이적했다. 공백이 생긴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2022년 최하위로 강등된 성남 FC에서 뛰던 뮬리치를 영입했다.
오현규는 2022시즌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자원이다. 생존 싸움을 벌이던 후반기에만 11골을 몰아쳤다. 이어진 FC 안양과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부차기를 눈앞에 둔 상황, 연장전에서 극적인 골로 팀을 살려냈다. 구단은 오현규를 판매하며 40억 원에 가까운 이적료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시즌을 돌아봤을 때 수원이 아쉬운 결과를 받아 든 큰 원인 중 하나는 오현규 대체자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번 시즌 뮬리치는 4골만 넣었다. 오현규가 살려 놓은 팀인데 오현규가 빠지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생존경쟁에서 한발 앞선 강원은 수원과 상반된 대처를 선보였다.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시점, 여름 이적시장에서 강원은 핵심 공격 자원인 양현준을 오현규가 있는 셀틱으로 보냈다. 이후 강원은 부진하던 외국인 선수 2명과 계약을 해지하고 외국인 선수 4명을 연이어 영입, 적극적인 전력 보강에 나섰다. '패닉 바이'라는 지적이 있기도 했으나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톡톡히 했고 강원은 1부리그 잔류까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됐다.
수원은 이번 시즌을 치르며 4명의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시즌을 함께 시작한 이병근 감독을 7라운드만에 경질했다. 이후 3경기는 최성용 감독 체제가 이어졌다. 이를 두고 '대안 없는 경질'이라는 비판이 따르기도 했다.
11라운드부터는 김병수 감독이 새롭게 팀을 맡았다. 하지만 김 감독도 시즌을 마무리짓지는 못했다. 최하위에 머무르던 수원은 여름 한때 한 계단을 오르기도 했으나 이내 취하위로 떨어졌다. 구단은 리그 종료까지 7경기를 남기고 김병수 감독을 경질, 플레잉코치 신분의 염기훈 감독대행 체제를 밀어붙였다. 염 대행은 지도자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팀 역사상 최대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처지였다.
#조짐 보였던 암흑기
수원의 잦은 사령탑 교체는 최근 수년간 이어지던 모습이다. 과거 수원은 감독과 장기 동행하던 구단이었다. 1, 2대 감독인 김호, 차범근 감독은 각각 8시즌과 7시즌간 팀을 이끌었다. 이후 윤성효 감독은 3시즌으로 길지 않았으나 4대 사령탑 서정원 감독은 5시즌간 팀과 함께 했다.
이후 이어진 이임생·박건하·이병근·김병수 감독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감독은 달라졌으나 짧은 반등 이후 부진은 지속됐다. 잦은 감독 교체에 대행체제가 반복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도 이어졌다.
모기업의 투자 축소가 강등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로 통한다. 투자 축소가 성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수원은 그 이상의 부진을 보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수원은 모기업을 등에 업고 리그 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팀이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투자 규모는 점차 줄었지만 이들의 시즌 예산은 1부리그 중위권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이 리그 10위를 기록한 지난 시즌 지출한 선수 연봉은 약 88억 7500만 원이었다. 리그를 이끌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강등권으로 떨어질 수치도 아니었다. 수원보다 적은 금액을 지출하는 구단이 3개 있었고 이 중 두 팀은 오히려 수원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4위에 올라 챔스 진출권을 따낸 인천은 수원보다 약 400만 원을 더 썼다.
#부진 원인은 운영 방식에
포항은 지난 시즌 연봉 지출 순위 10위(약 77억 3700만 원)에 그치고도 리그 최종 3위에 올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다. K리그2 우승을 차지해 승격한 광주의 지난해 리그 내 지출 순위는 6위에 불과했다. 이들은 적은 예산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효율적인 구단으로 꼽힌다. 이번 시즌 역시 이들의 예산은 높지 않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리그 2, 3위에 올라 호평 속에 시즌을 마쳤다.
결국 팀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의 비효율적인 운영 중 하나로 감독 선임 정책이 꼽힌다. 구단은 차범근 감독 이후 감독 선임에서 과거 수원에 몸 담았던 이들을 선택하는 '리얼 블루' 정책을 이어왔다. 하지만 윤성효-서정원-이임생-박건하 등 구단 출신 지도자들은 모두 초라하게 구단을 떠나 허울뿐인 정책임이 확인됐다. 수원은 리그 순위표 최하단을 찍은 2023시즌에서야 김병수 감독을 선임하며 '리얼 블루'를 버렸으나 반전을 이루지 못했다.
수원은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도 실패를 거듭해왔다. K리그는 외국인 공격수들이 득점 순위 상위권에 대거 이름을 올린다. 예리한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 존재 여부는 팀의 성적을 좌우할 수 있다. 하지만 수원은 2019시즌과 2020시즌 호주 출신 공격수 타가트 이후 두 자릿수 골을 달성한 공격수를 보유하지 못했다. 매 시즌 기대감을 받으며 영입된 자원들은 실망감을 안기기 일쑤였다.
이번 시즌 역시 마찬가지다. 수원은 공격진에만 아코스티, 뮬리치, 바사니, 웨릭 포포 등 외국인 쿼터 4장을 할애했다. 하지만 이들 4인이 기록한 골은 11골이었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 포포는 무득점에 그쳤다. 지난 시즌 덴마크 출신 공격수 그로닝의 14경기 0골 악몽이 되살아났다. 무딘 공격력에 허덕이던 수원은 최악의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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