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이란·호주 이변 없이 8강 합류…중동 9개국이나 토너먼트 무대 올라
조별리그를 마치고 토너먼트가 진행 중인 시점, 타지키스탄, 요르단 등은 자신들 역사상 최초로 대회 8강에 오르는 등 대회 양상도 재미 요소가 되고 있다. 지난 월드컵에 나섰던 아시아 내 축구 강호 4개국(일본, 이란, 대한민국, 호주)도 모두 8강 무대를 밟으며 흥미를 더한다.
#돌풍의 팀 타지키스탄
이번 대회 돌풍의 팀으로는 단연 타지키스탄이 꼽힌다. 이들의 아시안컵 본선 참가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조 추첨에서는 4포트를 배정 받는 등 당초 기대를 받던 팀이 아니었다. 해외 유명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는 대회 전 타지키스탄의 우승 배당을 201로 책정했다. 이는 본선 참가 24개국 중 공동 18위의 순위였다.
하지만 이들은 첫 경기에서 대회 경험이 많은 중국을 상대로 승점을 따냈고(무승부), 디펜딩 챔피언 카타르를 상대로도 대등하게 싸우며 1골만을 내줬다(0-1 패배). 가장 중요했던 조별리그 3차전, 레바논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 본선에서 토너먼트 진출까지 이뤄낸 것이다. 타지키스탄이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레바논전은 현재까지 이번 대회 가장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한 16강 무대에서도 승리를 낚아챘다. 당초 열세가 예상되던 경기였다. 한국의 전임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UAE는 이전 두 대회 연속 4강에 오른 팀이었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은 선제 득점에 성공한 데 이어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허용했으나 결국 승부차기 끝에 8강으로 향했다.
대회 중계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상윤 해설위원은 타지키스탄에 대해 "아시안컵 전에 정보를 얻으려 '신의 손'으로 불리던 타지키스탄 출신 발레리 사리체프와 통화를 하는데 '잘 못 한다'라고만 하더라.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 다른 팀"이라며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다. 선수들 개개인이 기술도 있고 영리하다. 페타르 세그르트 감독이 팀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이게 만들었다. 전력이 강한 UAE를 상대로도 밀어붙이는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한계 보인 동남아
최근 수년 사이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국내 지도자들의 동남아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신태용 감독이 인도네시아를, 김판곤 감독이 말레이시아를 이끌고 나섰다.
국내를 넘어 세계 축구계 또한 동남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많은 인구, 국가 내 높은 축구 인기 등으로 축구계는 동남아를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을 잇달아 유치하기도 했다(U-20 월드컵은 종교 문제 탓에 아르헨티나로 개최지 변경).
이번 아시안컵 역시 동남아 국가들의 성적이 관심거리였다. 동남아지역에서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4개국이 대회에 나섰다. 이 중 피파랭킹이 가장 높은 베트남은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며 한때 앞서나가는 등 좋은 경기 내용을 보였다. 인도네시아는 사상 첫 16강 무대를 밟았다. 말레이시아는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 연패를 당했으나 최종전 한국을 상대로 3골을 넣어 무승부를 거뒀다.
동남아 국가들은 이처럼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한계도 드러냈다. 기존 동남아 최강으로 꼽히던 태국을 제외하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이번 대회 따낸 승점은 4점에 그친다. 이들 3국의 유일한 승리인 인도네시아의 승점 3점은 같은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으로부터 따낸 것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확실히 동남아 축구가 발전한 것은 맞다. 예전에는 깔끔하지 못한 축구를 했는데 패스가 돌아가는 수준이 나아졌다. 피지컬적인 문제도 귀화, 혼혈 선수들이 합류하며 향상됐다. 박수를 쳐줄 만하다"면서도 "과연 이들이 아시아 중상위권 팀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직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에서 순간 반짝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도 박수받을 성적을 남겼지만 본인도 운이 좋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웃음). 베트남,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1위로 통하는 태국의 수준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회 경험이 많은 태국만큼은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거두며 2위에 올라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밀리지 않은 경기를 보인 끝에 1-2로 석패했다. 태국은 동남아 내 국가들 중에서도 도드라지는 축구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은 자국 프로리그 또한 탄탄한 인프라를 갖춰 이번 시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6강 진출 팀을 배출했다.
#여전한 중동 강세
한국과 일본이 자리한 동아시아와 함께 아시아 축구의 양 축을 이루는 중동은 여전한 강세를 보였다. 이들은 대회 본선 진출 11개 나라 중 9개국이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다. 각 팀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들도 제 몫을 해주고 있다. 대회 개최지가 중동 지역이라는 점도 이들로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다. 지난 1월 31일 한국과 사우디의 16강전은 마치 사우디 홈경기인 듯 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대회 개최국이자 디펜딩 챔피언 카타르는 대회 개막부터 16강까지 가장 균형 잡힌 전력을 자랑하는 팀 중 하나로 꼽힌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과는 달리 아시아 무대에서만큼은 확실한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대회 1골 10도움으로 우승과 함께 도움왕에 올랐던 카타르 공격 핵심 아크람 아피프(알 사드)는 이번 대회에서도 4골 2도움으로 팀을 이끄는 중이다.
또 다른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이란도 조별리그에서 저력을 과시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7골을 넣는 사이 허용한 골은 단 2골이다. 소속팀에서 주춤하는 듯 했던 사다르 아즈문(AS로마)은 대표팀에서는 여전한 경쟁력을 보였다. 다만 16강전에서 아즈문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끄는 메흐디 타레미(FC 포르투)가 퇴장을 당했다는 점은 옥에 티다.
타지키스탄 못지 않게 '요르단 돌풍'도 만만치 않다. 팀 내 유일한 ‘유럽파’ 무사 알 타마리(몽펠리에)가 이끄는 공격진은 이번 대회 4경기 10골을 기록 중이다. 타지키스탄을 만난 8강에서 승리한다면 요르단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컵 4강 무대를 밟게 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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