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교사 투입, SPO 역할 확대 방침…전·현직 경찰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실효성 의문” 입 모아
그러나 경찰은 물론 학부모들의 분위기도 매우 부정적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시스템은 그대로인 까닭이다. 오히려 정책의 실효성을 놓고 역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교사들이 당장은 웃고 있어도 결국엔 경찰·학부모 등과 뒤엉켜 더한 부담을 짊어질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학교에 경찰 개입 확대…‘환영’이라는 교사들
교육부·행정안전부·경찰청은 12월 7일 합동으로 '학교폭력(학폭) 사안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SPO) 역할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학폭 전담 조사관'을 신설해 현재 교사들이 맡고 있는 학폭 사안 조사를 전담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행 학폭 처리는 교내 학폭 담당 교사가 1차 조사를 마치고 각 교육지원청에 학폭 심의를 요청하는 절차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 조사는 경찰·검찰, 교육지원청 심의는 법원으로 비유된다.
이 가운데 학교 조사는 그 성질이 수사와 비슷한 탓에 교사들이 맡기에는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특히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 학부모의 항의 민원이 잇따라 교사의 교육활동을 방해한다는 문제가 자주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학폭 전담 조사관을 신설해 2024년 3월 1일까지 약 2700명을 위촉해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들은 전직 경찰·교사 등으로 구성되며 학폭 발생 시 직접 현장에서 조사를 벌이고 교육청에 심의를 요청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우선 SPO를 현재 1022명에서 약 10%를 늘린다. 이 경우 SPO의 1인당 전담 학교가 기존 12.7개교에서 10곳 정도로 줄어든다고 추산된다. 단 SPO는 원래 가해자와 피해자 상담 등을 도맡았으나, 이제는 학폭 전담 조사관과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이 추가됐다. 사실상 SPO도 학폭 전담 조사관과 '원팀'으로 움직이게 되는 셈이다.
교원단체에서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교사들이 부담을 덜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윤 대통령이 지난 10월 현장 교원과의 대화에서 학폭을 교사들이 담당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지 두 달여 만에 내놓은 개선방안으로 적극 행정이라 할 만하다"고 밝혔다.
#"시스템 그대로인데…"
하지만 교사들 외에는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크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학폭 담당 교사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해 '폭탄 돌리기'로도 묘사돼 왔다. 이번 정책은 폭탄의 주인만 교사에서 전직 경찰·교사 등으로 바뀌었다는 비판부터 나온다.
학폭 피해자의 부모로서 책 '학교폭력 부모 바이블'과 '아빠가 되어줄게' 등을 집필한 이해준 학폭연구소장은 "교사에서 경찰 등으로 사람만 바뀌었을 뿐 시스템은 그대로"라며 "정책 실효성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바라봤다.
이 소장은 "학폭 조사는 그 성격이 수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강제 조사권이 없기에 수사와는 엄연히 다른 절차"라며 "학생 등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쌍방 혐의로 마무리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쌍방 민원을 유발하는 실태가 대세였는데 사람이 바뀐다고 현실까지 뒤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전국의 학폭 피해자 부모들을 상담하고 있다. 그는 상담 사례를 들어 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회의 운영구조 개선이 더 급하다고 강조한다. 위촉직인 심의위원들이 사건 개요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단심제 형태로 처분을 내리는 사례가 많고, 심의위원의 숫자와 전문성 및 활동 횟수 등이 지역별로 워낙 편차가 큰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심의위원들이 내리는 선도 조치들도 구체적 매뉴얼 없이 자의적 판단에 따르고 있다"며 "교육지원청 심의위의 체계 자체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담조사관 제안 오면?…전직 경찰들 "안 하겠다"
이번 정부 조치로 가장 표정이 안 좋은 쪽은 단연 전·현직 경찰들이다. 주요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경찰에 역할을 떠맡기는 습관이 또 도졌다는 불만이 거세다.
현직 경찰관들은 학폭 전담 조사관이 투입돼도 SPO가 상당한 업무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바라본다. 조사관들과의 정보 공유를 SPO 역할에 추가했다는 점이 방증이다. 비록 SPO 인원을 늘린다지만, 이마저 충원이 아니라 다른 부서 인력의 전환이다. 가뜩이나 심한 경찰 인력난 속에 학교로 향해야 할 현직 경찰이 늘었다는 의미다.
학폭 전담 조사관이 될 수 있는 전직 경찰관들의 분위기도 회의적이다. 수년 동안 수사를 맡고 10여 년 SPO로도 일했던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 겸 사회적협동조합 세이프스쿨 이사(61)는 "학교가 미흡하니까 경찰을 개입시킨다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학폭 가해자 선도 등은 처벌보단 교육 활동의 일환인데, 경찰들은 교사보다 교육적 사고와 철학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설령 수사처럼 사건을 대하더라도 조사 대상자의 생활환경과 인간관계 등에 관한 정보가 교사보다 없으므로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내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학폭 전담 조사관 제안이 올 경우 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교사들, 참고인 조사받아야…협조는 해줄까
일각에선 이번 정책이 교사와 경찰, 학교와 학생 모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최악의 전망까지 제시한다. 학폭 조사관이 투입돼도 교사들의 부담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조사 결과 자체는 여전히 교사들에 달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이 대표 말처럼 사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서는 조사 대상자에 관한 정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들이 참고인으로서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단 청소년 문제뿐 아니라 성인들의 범죄를 다룰 때도 기본이 되는 절차다.
또 다른 전직 경찰관은 "가해·피해 학생 특성에 따른 화해 가능성 등을 판단하려면 교사들도 참고인 격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며 "교사들이 어떻게 진술하는지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질 텐데, 학교 입장에선 협조 여부부터 진술 내용까지 무겁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런 구조에서는 학부모 민원이 따를 경우 조사관과 SPO 및 교사들이 일제히 함께 짊어져야 한다"면서 "자칫 그 책임을 놓고 경찰과 교사들이 다투진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솔직한 심경으로는 학폭 선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교육의 한 과정인데, 교사들이 이를 경찰에 맡기게 돼 환영이라는 뜻을 밝힌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런 제도 도입을 저항 없이 수용한 경찰 지휘부에도 유감일 뿐더러, 심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계속 이 같은 식이면 훗날에는 유치원 전담 경찰관까지 생길 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 역시 '학폭 조사관 제안이 올 경우 계획'을 묻는 질문에 "절대 안 한다"고 단언했다.
현업에서 청소년범죄를 주로 연구하는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경감)도 쓴소리를 남겼다. 서 교수는 "학부모 입장에서도 자녀를 선생님 대신 경찰 앞에 앉혀두길 선호할지 의문"이라며 "이 밖에 학교와 교사, 학생 등 모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정책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기왕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으니 일단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며 "성인 범죄 수사와 청소년 선도 조치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교내에서 처리하는 학폭 문제는 수사 관점으로 접근해선 몹시 곤란하다"며 "전담 조사관은 수사 경력보다는 청소년 상담 등 교육 영역의 전문성을 담보할 인원으로 반드시 충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퇴직 경찰과 교원이라면 고령층이 많으므로 청소년 교육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충원 뒤에도 꾸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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